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푸티상사의 지상법문] 25. 행복의 운명학(2)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5.12.08 14:01
  • 수정 2016.01.05 16:03
  • 댓글 0

내려 놓는 법 알아야 운명 바꿀수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원만하고 상서로운 인생을 누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운명을 고칠 수 있을까요?

여기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원인과 결과가 얽히고설켜 서로서로 영향을 주며 인생을 만들고 있습니다.

행동·심성은 노력으로 바꾸고
운명은 선업·공덕으로 바꿔

가장 효과 큰 참회 방법은 
과거에 대한 집착 놓는 것

버리지 못하게 막는 탐심이
인생 실패자로 만드는 원인

운명을 바꾸는 열쇠 이해하기
우리의 인생에는 노력을 통해 스스로 구체적으로 장악하거나 바꿀 수 있는 일들이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노력으로도 바꿀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우리는 이를 운명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그대는 머리가 좋고 능력도 뛰어나며 그대가 지닌 조건도 훌륭하여 사업도 순조롭게 잘 이루어지고 있어서 그대의 인생이 매우 순조롭다고 합시다. 하지만 그대의 아이들까지 그대처럼 반드시 순탄한 인생을 살 것이라고는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운명의 문제에 속한 것으로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말하기를, 운명의 절반 정도는 스스로 장악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책을 많이 읽어 지식을 쌓을 수도 있고,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도 있으며, 많은 친구를 사귀어 즐겁고 좋은 인연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스스로 장악해 갈 수 있는 인생의 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운명을 완전히 바꾸거나 상서롭고 부귀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중국의 고대철학에서는 ‘생명은 음양(陰陽)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부모로부터 온 것으로 부모는 바로 음양을 나타냅니다. 부(父)는 남자이고 모(母)는 여자로, 양(陽)과 음(陰)을 나타냅니다. 옛 사람들이 말했던 이런 ‘음양의 이치’를 빌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고치는데 응용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음양의 개념, 즉 음과 양이라는 두 개의 개념을 가지고 운명을 고치는 방법은 이렀습니다. ‘양’은 예견할 수 있고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운동, 독서, 사교, 오락, 연애, 가정, 자녀양육, 부모공경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이런 행동들은 심성과 지성을 통해 장악하게 되는데, 이것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부분적으로 고칠 수는 있지만 완벽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근본적으로는 고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남녀가 만나서 결혼하면 자연히 아이를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만일 오랜 기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면 병원을 찾는 등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게 됩니다. 하지만 노력을 해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음’의 문제인데, 이들은 근본적으로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선업과 공덕을 쌓아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따라서 철저하게 자신의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스스로 최선을 다해 절반은 노력하는 양의 행동을 해야 하고, 나머지 절반은 착한 마음을 가지고 많은 선한 일을 즐기며 베풀기를 좋아하는 음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음덕(陰德:숨은 덕행)을 쌓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양과 음으로 운명을 바꾸는 음양개명법(陰陽改命法)’ 가운데 ‘음’의 부분에 속하며 근본적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마음도 선량하며 운명도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간혹 그다지 총명하지는 않지만 복을 아주 많이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총명하지 않지만 좋은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은 ‘복(福)의 과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복의 과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그것은 대대손손 베풀어 온 선행이 쌓여 현재에 나타난 것으로 하나의 ‘유전적인 근본원인’이라고 볼 수 있으며, 불교에서는 ‘업(業)이라고 합니다.

그럼 ‘업’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작은 행동과 직업과 사업을 통틀어 의미합니다. 이렇게 업을 드러내는 작용을 ‘업력(業力)’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종의 에너지가 표현되는 것입니다. 이런 업력은 크게 선업(善業)과 악업(惡業) 그리고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업인 무기업(無記業)으로 나누어집니다. 이 모든 업력들은 아주 강한 작용력을 만들어 낼 수 있어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좋고 나쁜 운명을 만드는 기초를 이룹니다. 이른바 착한 일을 할 때마다 공덕의 탑은 한 층 한 층 쌓이게 될 것이고 마치 공적(功績)을 기록하는 공덕부에 하나씩 기록되는 것과 같아서, 결국 모두 복으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항상 “늘 보시하고, 공양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얻은 재산인데, 왜 다른 사람을 도와줘야 하지?”
“난 큰 부자도 아닌데 어떻게 남을 도울 수 있겠어. 아직은 나도 먹고 살기 바빠.”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도와줘야 하는 이유를 정확하고 확실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善)을 심어야 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남을 도와야 비로소 근본적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참회는 형체 없는 죄업을 소멸시켜

많은 사람은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나면, 과거의 여러 가지 다치게 하고 해를 입힌 것 그리고 옳지 않았던 행동에 대한 과보를 받지 않을까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마음속에 ‘인과응보’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면, 그대는 이미 참회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만약에 진정으로 참회하지 못한다면 과거에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해를 입혔던 잘못들이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괴롭힌다. 하지만 진정으로 부끄러워하면서 참회의 마음을 갖는다면, 이는 곧 운명을 바꾸는데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왜 그러할까요? 비록 과거에 발생해 만들어진 일이지만,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다치게 하거나 해를 입혔던 일은 하나의 상처로 흔적으로 남았니다. 하지만 이 상처의 흔적은 단지 그대의 마음에 남아 있을 뿐이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친다면 마음속 상처의 흔적은 곧 아물어가고 치유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하나의 커다란 그물과 같다는 것입니다. 물질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물질불멸의 법칙’에 따라서 본다면, 과거에 우리가 다치게 하거나 해를 입혔던 그 생명들의 존재를 우리는 깨달을 수 있어야 하며 진심으로 참회해야 합니다. 그러면 과거에 그대로 인해 상처 입은 그 생명들이 지금 어느 곳에 있든지 간에, 우리가 진심으로 참회하는 마음을 느끼고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용서하고 다시는 원망하거나 한스러워 하지 않고 그대를 옭아매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에서 그만큼의 장애가 줄어들게 되어, 뜻한 것을 이룰 수 있는 순조로운 인생으로 바뀌게 됩니다.

참회 가운데 가장 힘 있는 참회는 과거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과거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과거에 집착해 과거를 내려놓지 못하고 더 나아가 이런 상처를 붙잡고만 있으면, 속박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과거의 그림자 속에 갇혀 살게 됩니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아껴야 하고 매 순간순간 마음을 다스리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진심으로 참회한다는 것은 과거의 고통을 잘라 버리는 것과 같아서 자주 뒤돌아봐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때때로 스스로 저질렀던 그 과오의 길을 다시 밟지 않도록 깨우쳐주면 고통은 연장되지 않습니다.

버리면 버릴수록 얻을 수 있다.

사람은 버릴 수 있어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른바 ‘버리지 않으면 얻지 못하고, 많이 버리면 많이 얻는다.’라는 말입니다. 휴식시간을 버리고, 문란한 영화 보는 시간을 버리고, 한가하게 연속극을 보는 시간을 버려야 합니다. 짧은 인생에서 이렇게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을 버리고,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야 비로소 생명에서 나오는 광채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이것은 바로 인간의 탐심 때문인데, 이 탐심은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르는데서 생기며 또 우리를 영원히 만족할 수 없게 합니다. 이런 마음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도의를 못 본 척하거나, 심지어는 수단과 방법을 기리지 않고 갈취하려고 하는데, 이런 마음상태가 바로 ‘탐집(貪執), 탐욕의 집착’입니다. 탐하는 마음이 한번 일어나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면 더욱더 탐하는 마음이 일어나 우리를 더욱 쉽게 좌절하게 하며, 중간에 포기하게 하여 결국 우리를 실패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어떤 사람이 열심히 노력을 해서 인생의 첫 번째 목표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두 번째, 세 번째 목표를 정하고 다시 이루겠다고 생각하고 여기에서 만족할 줄 모르고 또 다른 목표를 세운다면 결국 그는 늘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탐심을 가진 사람은 끝없이 더욱 많은 것을 얻으려고 목표를 계속해서 바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얕은 술수로 잔재주를 피워 투기하거나 남을 속이면서 자신의 터럭 하나도 뽑아 주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동업자와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것도 절대로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결국 주위에서 자신을 돕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차츰 곁을 떠나게 되어 혹시 회사에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그를 도와주려는 사람이 없게 되고 결국 실패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버려야지만 얻을 수 있고, 먼저 마음을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 내려놓는 법을 알아야 다시 얻을 수 있듯이 그렇게 해야 비로소 현재 나의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진푸티상사 저서 “깨달은 눈으로 본 인생”에서 발췌 / 번역=권중달
제공 : 보리선수 약사선원 (Tel.1661-0803)

[1322호 / 2015년 12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