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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사찰림을 위한 제언〈끝〉

사찰 숲은 불교의 새로운 동력, 승가 관심이 절실

▲ 서설이 내린 부안 내소사 들머리 전나무 숲길을 걷는 연인들.

사찰림은 산지관리법상 ‘임업생산과 함께 재해방지·수원보호·자연생태계보전·자연경관보전·국민보건휴양증진 등의 공익기능을 위하여 필요한 산지’로 분류되어 있다. 따라서 사찰림은 공익적 기능과 함께 산림의 경제적 기능(임산물 생산)도 함께 중시해야만 한다. 그러나 사찰림의 종교적 기능이나 경제적 기능은 점차 축소되는 반면 공익적 기능만 강조되는 것이 요즈음의 실정이다.

정부의 일방적 주도에
불교계와 갈등 깊어져

종단 차원의 비전 제시
담당할 직제 구축 중요

모델 사찰림 운영하고
기관·시민과 협업 구축

인공적 불사 못지않게
숲보전 노력 회자될 것

사찰림의 실정이 이렇다보니 다양한 문제들이 파생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생태적 가치를 누리려는 국립공원 이용객과 종교적 목적으로 사찰림을 활용하려는 사찰 사이의 갈등이다. 사찰림이 직면한 또 다른 문제는 사찰림의 존립 근거가 되는 풍치 존엄을 상징하는 경관의 유지나 가람축조 및 수리에 필요한 목재의 비축기지로서 산림의 고유기능이 잊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사찰 숲 이야기의 마지막 주제는 사찰림의 종교적 기능 증진과 보호 및 육성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9가지 제안이다.

첫 번째 제안은 사찰림에 대한 비전과 구상의 수립이다. 사찰림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이나 현안은 사찰림의 육성과 활용에 대한 종단의 무대책에 책임이 있다. 사찰림에 대한 종단의 무대책은 사찰림의 중장기 정책 부재로 이어지고, 현안이 발생해도 그때그때 임기응변식 처방만으로 대처할 뿐이다. 결국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은 사찰림에 대한 비전과 기본 구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찰림을 육성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찰림에 대한 종단의 정책 의지나 목표 정립이 선행되어야 하고, 그 정책 목표에 따라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여 실행에 옮길 방안을 찾아야 한다.

두 번째 제안은 사찰림을 담당할 직제 구축이다. 사찰림에 대한 비전과 장기 구상은 의지 표명만으로 구체화할 수 없다. 구체화할 수 있는 조직체계와 전문 인력의 확충이 필요하다. 조직체계는 우선 나라 전체 사찰림에 대한 종단의 비전과 장기계획을 수립하는 종단 차원의 ‘사찰림 위원회’, 교구본사의 사찰 산림을 운영하는 교구본사 ‘사찰산림위원회’의 구성을 생각할 수 있다. 전문 인력의 확충은 인력 충원에 따른 경제적 제도적 난제들이 있겠지만 전문성 확충으로 얻을 수 있는 부수 효과가 훨씬 더 크기 때문에 그 시행이 빠르면 빠를수록 더 좋다.

세 번째 제안은 사찰림에 대한 정보 공개이다. 종단은 물론이고, 교구본사나 개별 사찰이 소유하고 있는 사찰림의 면적이 얼마나 되며, 어디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쉬 알 수 없다. 산림학 전공자조차 이런 정보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니 신도나 사찰림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은 더 어려울 것이다. 산림청이 종단에 제공한 63,000여 헥터의 사찰임야현황도와 사찰임야임상도는 교구본사에서 방치되고 있다. 산림청이 종단에 제공한 이들 디지털 정보를 종단에서 공개하면, 개별 사찰이 소유한 사찰림 필지를 누구나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사찰림의 개별 필지 정보는 한국임업진흥원의 종합산림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마스터키이고, 토지정보(주소, 면적, 위치, 토지이용), 임업환경정보(나무, 토양, 지형, 기후), 임업경영정보(적정재배임산물, 적정조림수종, 임지생산능력) 등의 종합산림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다. 사찰림 정보공개는 사찰림 활성화의 지름길임을 기억하자.

네 번째 제안은 산림전문 인력 양성이다. 종단에 소속된 몇몇 전문 인력만으로 나라 전역의 사찰림을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사찰림의 가치와 중요성을 학습할 수 있는 적절한 승가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할 필요가 있다. 산림에 대한 기본적 이해와 관리 교육을 한 사례는 승려 연수교육의 하나로 2014년 8월 전등사에서 개설한 ‘숲 해설교육 과정’이다. 2박 3일 동안 총 22시간(이론 14시간, 실습 8시간) 과정으로 진행된 이 교육은, 1991년 이후 출가한 스님이 승가고시를 응시하기 위해 반드시 연수교육을 이수해야 하는 종단의 제도에 편입되어 종단에서 시행하고 있는 연수교육과 동등한 자격을 부여받았다. 이러한 종류의 산림교육은 승가고시 응시에 필요한 연수교육뿐만 아니라 종단의 주지 자격 취득에 필요한 교육이나 ‘사찰경영지도자과정’에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 번째 제안은 모델 사찰림 운영이다. 일제강점기에 사찰마다 경영계획(시업안)에 따라 사찰림을 벌채하고, 그 벌채지에 다시 나무를 심었던 다양한 경험은 60년대와 70년대 산판 사업 이후로 대부분 사라졌다. 그래서 오늘날 개개 사찰은 사찰림 경영에 백지상태가 되었다. 사찰림을 다목적으로 이용하거나 경영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 사찰은 손을 놓고 있다. 사찰림 면적이 상대적으로 넓은 몇몇 사찰만이라도 산림청이나 산림조합 등과 협업체계를 구축하여 모델이 될 만한 사찰림을 경영하는 것은 사찰림 경영 경험을 학습·전수하거나 공유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섯 번째 제안은 산림 관련 다양한 주체와 협업체계 구축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공익을 위한 다영역(정부, 기업, 시민사회 등)간의 동반관계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사찰림의 보호와 이용을 위한 다영역간 동반관계는 사찰림 경영 모델을 구축하거나 풍치 존엄의 경관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 사찰은 이미 솔잎혹파리나 소나무 재선충의 피해를 막고, 산불을 방지하고자 산림관련 기관(산림청, 문화재청, 산림조합)과 방제활동을 전개해 왔다. 산림에 전문성을 가졌거나 산림에 관심이 있는 불자들과 함께 산림 관련 기관과 사찰이 힘을 합쳐 다영역간 협업체계를 구축할 방안을 모색하자. 다영역간의 협업체계는 헌수 및 조림 운동 전개, 경관 관리 참여, 병해충 방제 활동에 다양한 이바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곱 번째 제안은 사찰림 지원조직 및 모임 결성이다. 사찰림은 사찰이 소유하고 있는 사유재산이지만 공공재로서 시민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다. 그래서 종교를 불문하고 누구나 사찰림에서 휴양과 명상과 치유와 같은 사찰림의 공익적 기능을 누리고 있다. 사찰림의 공공적 특성을 고려하여 불교계는 사찰림 체험, 휴양, 치유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사찰림 사업단’, 사찰림의 보호와 육성에 동참할 ‘사찰림 자원봉사단’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또 사찰림 조성에 필요한 묘목을 기증받거나 조달하고, 시민 참여를 통해 숲 가꾸기나 사찰림 경영에 자문해줄 ‘사찰림 운영지원단’을 구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여덟 번째 제안은 사찰림 연구소 설립이다. 사찰림 연구소(가칭)를 종단 산하에 설립하거나 관련 기관의 부설 연구소 형태로 설립하자. 사찰림 연구소는 사찰림이 감당하고 있는 공익적 기능에 상응하는 정부의 지원책이나 정책적 보완책을 끌어낼 수 있는 연구는 물론이고, 지구온난화로 파생될 사찰림의 임상 변화를 예측하고, 풍치 존엄의 유지를 위한 대비책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대비를 지금부터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미구에 우리 후손은 숲이 사라진 사찰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아홉 번째 제안은 사찰림에 대한 승가의 관심이다. 지난 100년 사이에 사찰 숲은 어떻게 변했을까? 앞으로 올 100년 동안은 또 어떻게 변할까? 우리 앞에 있는 사찰림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사찰림의 현재 건강상태는, 쇠퇴 위험은 없는가? 안타깝게도 그 숲에 기대어 사는 승가의 누구도 사찰림의 현 상태에 관심 두는 이가 별로 없다.

개국 이래 가장 번영을 누리고 있는 오늘의 시대에 불가라고 해서 초연하게 비켜 서 있을 순 없다. 그래도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수많은 불사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소회는 복잡하다. 왜 사찰 운영을 책임진 주지스님들은 인공적 불사 못지않게 사찰을 사찰답게, 불교를 불교답게 규정하는 사찰림에 대해서 한결같이 무관심할까? 단언컨대 가람을 중건·증축하며, 차량통행로를 개설한 업적보다 사찰림을 더 잘 지켜낸 승가의 노력이 오히려 먼 훗날 두고두고 회자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불사보다 그 당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자연유산에 관심을 둔 선견지명은 시대정신을 읽는 승직자만이 가질 수 있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사찰림의 형성 유래와 이용 실태를 밝히고 정리할 시간을 가진 것은 정년을 앞둔 학문 생활에 찾아든 호사였다. 이런 멋진 행운은 아름다운 시절 인연과 함께 귀한 지면을 제공해 준 법보신문과 졸렬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 덕분이다.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전영우 국민대 산림환경시스템학과 교수  ychun@kookmin.ac.kr

  [1323호 / 2015년 12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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