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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석도흥(釋道興)

기자명 성재헌

수나라 말엽 당나라 초기에 도흥 스님이란 분이 계셨다. 어려서부터 그는 남달랐다. 겨우 글을 익히고 생각할 나이인 여덟살 무렵, 흙장난이나 전쟁놀이로 여념 없는 또래와 달리 그는 늘 스님들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그에게는 스님들이 동무였고, 마을 인근의 대광사(大光寺)가 놀이터였다. 열아홉이 되던 해, 그는 결국 대광사로 출가하였다. 눈물 짓는 부모님께 도흥은 맹세하였다.

나와 이웃 행복 발원하며
열아홉 나이 대광사 출가
살해 위협에도 계율 지켜
만인 존경받는 스승되다

“부처님 가르침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였다. 당시는 곳곳에 도적떼가 횡행하고 죽은 사람의 시체가 산처럼 쌓이던 시절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도적들에게 잡혀갔다는 소식이 대광사에 전해졌다. 도흥은 홀몸으로 도적들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성에서 60리 떨어진 곳에서 도적들에게 끌려가는 상처투성이 어머니를 발견하였다. 도흥이 다가서자 두목이 칼로 막아섰다. 그 칼날 앞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도흥이 호소하였다.

“살생은 크나큰 과보를 낳습니다. 부디 자비를 베푸십시오.”

두목은 비웃었다.

“이 여자는 당신과 무슨 사이요?”
“저의 어머니이십니다.”
“부모형제 다 버리고 출가한 사람이 무슨….”

“출가한다고 부모를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중한 은혜를 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출가한 까닭은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스스로 행복하고 남들도 행복하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불법을 배운 공덕이 부모님께 돌아가지 못한다면 불법을 배운들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에 감동한 두목은 그의 어머니를 풀어주었다. 도흥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 성으로 돌아왔고, 그 광경을 목격한 성안 사람들이 효자라며 다들 감탄하였다.

전란은 멈추지 않았고, 다들 피난을 떠나기 시작했다. 도흥도 촉천(蜀川)으로 길을 나섰다. 흉흉한 인심에 제대로 걸식을 할 수가 없었다. 풀뿌리와 시냇가 물로 주린 배를 채우던 도흥은 길에서 우연히 한 노스님을 만났다. 도흥의 강직한 성품을 엿본 노스님이 자신의 보따리를 내밀며 말했다.

“이 짐 속에 황금 열 냥이 들어있네. 나는 힘이 없어 지키기가 힘들어. 자네가 안전하게 운반해주면 반을 주지.” 

믿을 건 돈뿐인 시절이었다. 하지만 도흥은 단호히 거절하였다.

“부처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물건입니다.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중히 타일렀다.

“스님, 비구는 옷과 발우 외에 어떤 것도 지니지 않는 게 부처님의 계율입니다. 또한 부처님께서 황금을 재앙이라 하셨습니다. 그 황금으로 인해 스님이 해를 입을까 염려되는군요.”

노스님은 그런 도흥을 비웃었다. 도흥은 바르지 못한 벗과 함께 길을 갈 수 없다며 노스님과 헤어졌다. 그리고 촉천에 도착했을 때, 금을 가지고 있던 그 노스님이 삼천현(三泉縣)에서 도적을 만나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촉천에 도착한 도흥은 지순(智舜) 율사를 만나 부처님의 계율을 세밀히 탐구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지순 율사의 뒤를 이어 율원의 도유나(都維那)가 되었다. 이어지는 전란을 피해 사방에서 스님들이 촉천으로 몰려들었다. 관청에서는 객승들이 머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혹여 그 틈에 간첩이 섞였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흥은 찾아든 객승들을 모두 받아들이고 그들을 위로하였다. 주지가 달려와 고함을 쳤다.

“관청에서 단속을 나오면 어쩌려고 이러나. 젊은 사람이 제멋대로구만.”

도흥은 합장하고 조용히 말하였다.

“이분들은 삼보(三寶)입니다. 불제자가 삼보를 공경하지 않으면 누가 삼보를 공경하겠습니까. 문제가 생기면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삼보를 보호하다 죽는다면 큰 보람이라 여기겠습니다.”

다행히 곧 전란은 수습되었고, 도흥은 만인의 존경을 받다가 67세의 나이로 복승사(福勝寺)에서 생을 마쳤다.

성재헌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tjdwogjs@hanmail.net
 

  [1323호 / 2015년 12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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