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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방식으로 권력 잡고 행사하다[br]꼭 닮은 방식으로 살해당한 수양제

기자명 이병두

‘수양제:전쟁과 대운하에 미친 중국 최악의 폭군’/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전혜선 옮김/역사비평사

▲ ‘수양제: 전쟁과 대운하에 미친 중국 최악의 폭군’
포악한 군주가 숱하게 많았던 중국, 그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수양제(隋煬帝)는 천성이 포악했을까?

저자가 보기에 수양제는 “아주 평범하면서도 동시에 여러 가지 약점을 지닌 인간이었다. 그를 둘러싼 시대 환경은 사회 자체에 아무런 이상도 존재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이 각자 다투면서 권력을 숭배하고 추구하며 남용하는 세상이었다. 이런 까닭에 이 시기에는 음란하고 포학한 천자가 수양제 외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등장했다. 말하자면 난폭한 천자의 예사스런 등장이 시대 풍조였다. 수양제는 그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했다. 실로 무서운 세상이었다.”

양제의 아버지 문제(文帝)도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자 제위에 오르기도 전부터 북주(北周) 왕조 일족에 대해 박해를 가했다.” 그러면서도 문제와 그의 정실 독고황후는 금슬이 좋아서 당시로서는 “드물게 일부일처로 슬하에 딸 다섯, 아들 다섯을 두었다.” 그리고 이 “가정생활에는 영원히 평화가 계속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재벌가문에서 잘 보여주듯이, “자기 친척이나 형제들과 서로 미워하며 싸우는 부모가 정작 자식들한테는 사이좋게 지내라고 한다면 대체 어느 자식이 그 말을 듣겠는가.”

그래도 문제에게는 좋은 점이 많았다. 그러나 형제들을 거의 모두 죽이고 아버지를 이어 즉위한 양제는 문제의 좋지 않은 점만 물려받아 그것을 확대재생산하고, 그래서 ‘중국 역사 최악의 황제’라는 악명을 얻게 된다. 여기에 과대망상증까지 더해져 광대한 중국 대륙을 남북으로 잇는 운하 개통과 고구려 침략전쟁에 집착하여 선대에 튼실하게 해놓은 국고를 바닥내고 백성들에게 고통을 가중시켜 결국 반란 분위기를 조성하게 된다. “아무리 순종적인 백성이라도 참는 데 한계가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양제가 계속 무모한 전쟁에 나선 이유는 또 무엇인가? 전쟁이란 “마치 투기나 도박과 같아서 한 번 이기면 다음에도 꼭 이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졌을 때는 다음번에야말로 이겨서 본전을 되찾으려고 벼르며 다시 시도하게 되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양제를 몰락시키고 수 왕조를 멸망시킨 양현감의 반란에는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 “이 시대에 천자는 처음부터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될 수만 있다면 누가 천자가 되더라도 상관없었다. … 이런 시대에 양소의 아들 양현감이 모반을 계획했다고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양제가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그의 ‘비뚤어진 개인 성격’이라는 근본 이유가 있었다. 그는 “본인의 유흥을 위해서라면 물 쓰듯 아끼지 않고 비용을 써댔지만 신하에 대해서는 몹시 인색한 구두쇠였다. 전쟁에서 공을 세운 무장에게조차 막상 상을 줄 때가 되면 갑자기 아까운 생각이 들어 포상을 관두는 성격”이었다. 게다가 그는 “조정 대신과 장군을 거의 소모품처럼 여겨 마치 물건을 대하듯 오래된 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으로 바꾸기 일쑤였다. 때문에 수양제에게는 진정으로 신뢰할 만한 신하가 없었다.” 그러니 어려운 순간이 다가오자 그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고, 마지막 죽음마저도 외롭게 맞이하였던 것이다.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왜 제왕의 이야기를 썼을까? 그는 “인간관계의 방식이 어떻게 변천되어왔는지를 살펴보는 작업은 역사학의 중요한 문제”이고 따라서 “그 한 종류로서 제왕을 다루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며, 회피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믿었으며, 그의 생각에 ‘역사학자의 본분’은 “단순히 사료를 겉핥기보다는 적어도 한 꺼풀 벗겨 관찰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낡은 방식으로 권력을 잡고, 낡은 방식으로 그 권력을 쥐고 흔들었으며, 마지막에는 낡은 방식으로 살해”당한 수양제, 자꾸 누군가의 얼굴이 겹쳐진다.

이병두 대한불교진흥원 사무국장

  [1323호 / 2015년 12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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