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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씨앗 파종 하는 원빈 스님

꽃 같은 얼굴에 예쁜 말씨 나누는 삶이 최상의 행복

▲ 원빈 스님은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아낌없이 주는데서 행복은 시작된다”며 나누는 삶을 당부했다.

저 아세요? 법명이 원빈입니다. ‘둥글 원’자에 ‘빛날 빈’자. 빛이 나는지는 모르겠는데 둥그렇죠. 제가 사실은 지금 좌불안석이에요. 전날 혜민 스님, 다음날 정목 스님 다음날 서광 스님 제가 한참 막내거든요. 그래서 부담스러운 이 상황에서 오늘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며 경전을 한참 뒤졌어요. 어젯밤까지 경전을 보는데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있었어요. 부처님이 머무셨던 제따와나 사원에서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사부중들은 항상 궁금해 합니다. 행복이라는 게 뭘까? 그래서 이들끼리 논쟁이 일어납니다. 서로서로 이것이 행복이다. 저것이 행복이다 하면서요. 우리 오늘 힐링법회잖아요. 그러면 보살님들도 행복이 무엇인지 찾는 이들과 같은 심정일 것 같아요.

마하망갈라경 속에 나타난
행복키워드 스승·서원·나눔
세 가지 있을때 행복도 최고

지푸라기부터 주는 연습이
인색한 마음 없앨 수 있어


작은 성의로 나누는 삶이
한 생명 살리는 큰 보시행

어느 날 제석천왕이 부처님께 와서 “제 마음이 불안한데 어떻게 하면 행복해 질수 있을지 이야기 해주십시오” 하고 질문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이 질문에 답을 하신 게 바로 ‘마하망갈라경’에 있습니다. 망갈라는 축복 혹은 행복이라고 번역해요. 그러니까 행복경, 축복경이 되는 거죠. 12개의 게송으로 돼있는데 여기에서 기억해 가셨으면 하는 게송에 대해서 말씀 드릴게요.

부처님께서 제석천왕에게 제일 먼저 말하신 행복의 요소는 좋은 친구를 가까이 하고 나쁜 친구를 멀리하는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는데요. 존경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최상의 행복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바로 스승을 말합니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니까 대중 앞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 같죠. 사실은 대인기피증 심하게 온 때가 있었어요. 저는 절을 다녀본 적이 없는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문득 절에 가서 공부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천안 광덕사에서 한달을 지냈습니다. 청솔모 뛰어다니는 것 구경하고 바람소리 들어가면서 ‘수학의 정석’을 들고 공부를 했죠. 어느 날 젊은 스님들 두 분이 오셨어요. 그런데 이 스님들은 뭔가 달랐어요. 그동안 제가 생각하던 스님의 이미지와 전혀 달랐어요. 잘 웃고 활발하고. 그런데 갑자기 두 분이 부처님한테 인사를 드려야한다고 대웅전에 들어갔다 나오시더니 한 시간 동안 좌선을 하시는 거예요. 절 전체가 고요해지는 것 같았어요. 저한텐 충격적인 일이었어요. 이렇게 고요할 수 있구나. 나는 그렇지 못한데. 스님들에게 궁금한 게 많았지만 제가 대인기피증이 있잖아요. 언제쯤 나를 불러주실까 하고 기다렸어요. 보름정도 지나자 “법우님 수박같이 먹어요”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그러면 스님들이 이야기를 하셔야 하잖아요. 수박 한쪽을 주시고는 5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는 거예요. 저는 그 5분이 굉장히 낯설었어요. 그런데 그 고요한 순간에 스님이 저한테 질문을 하시는 거예요.

“법우님하고 나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오늘 왜 만났는지 알아요?”

전 알 리가 없죠. 멀뚱히 있었어요.

“법우님하고 나하고 전생에 도반이었는데 오늘 이 자리, 이런 상황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었는데 기억나요?”

번개 맞은 것처럼 등줄기가 찌릿했어요. 그리고 그 순간 스님과 저는 도반이 됐어요. 한순간에 이런 경험을 줄 수 있는 스승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생은 180도가 아니라 쓸 수 있다면 1800도 바뀝니다. 그리고 스승이 생기는 순간 모든 번뇌도 잠재워 집니다.

나의 생각과 달라도 그 생각에 의지할 만큼 믿는 스승이 있는가. 없으시다면 당장 만드셔야 합니다. 지금 생각나는 그분께 연락드리고 가서 인사드리세요. 그리고 그렇게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를 돈독히 하셔야 합니다. 그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망갈라경에 첫 번째로 나오는 행복입니다.

망갈라경에 또 다른 행복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올바른 서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두 번째 최상의 축복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해인사에서 출가 했는데, 출가를 결심하면 제일 먼저 서류를 작성해요. 왜 출가를 했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서류입니다. 저는 그냥 솔직하게 썼어요. 그냥 ‘그냥’이라고. 스승님이 날짜를 정해주셨어요. 불교에 대해 전혀 몰랐었고 가라니까 간 거예요. 그런데 다른 분들 사연을 들어보니까 그냥이 당연한 게 아니더라구요. 어느 날은 행자님들이 대방에 모여 앉아 자신의 출가 이야기를 했어요. 한 스님은 고등학교 때까지 싸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쉽게 말해 공부를 하지 않던 스님이었어요. 그런데 문득 자신의 마음에 대학을 가야겠다는 서원이 생기더래요. 대학 입시까지 1년 정도 밖에 남지 않았지만 발심을 했으니까, 남자는 결심을 하면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엉덩이에 진물이나 살이 옷에 붙을 때까지 공부 했답니다. 그리고 대학에 갔습니다. 대학에 갔으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데 1년 동안 정말 열심히 놀았대요. 그러던 어느 날 이 스님이 친구들을 모아놓고 출가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한 거예요. 주변에서 절대 믿지 않죠. 그런데 스님이 한마디만 했대요.

“내가 보물지도 하나를 발견했는데 솔직히 가보지 않아서 보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가보고 정말 보물이 있으면 돌아와 보물을 나눠줄게. 기다리고 있어.”

다음날 해인사로 출가하기위해 가야산 자락에 갔죠. 발심을 단단히 하고자 꼭대기까지 맨발로 넘어가는데 눈물이 너무 나더랍니다. 자기가 왜 우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눈물이 펑펑 나는 거예요. 꼭대기까지 딱 올라가보니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해인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바로 선택의 순간입니다. 돌리려면 이제 마지막이죠. 그런데 마음의 결심을 하고 내려가기 시작할 때 그렇게 웃음이 나더라는 겁니다. 자기가 웃으려고 웃는 게 아니고 울려고 우는 게 아닌데 올라갈 때 울음이 내려올 땐 웃음이 나더라는 거예요. 올라갈 땐 솔직히 좀 아까웠대요. 자기가 누리던 그 쾌락을 버리고 출가를 해야 한다는 게 좀 아까운거였죠. 이 길이 올바른 길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럼에도 지금까지 누렸던 쾌락들이 있잖아요. 젊음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올라갈 때는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마음이 왔다 갔다 한 거예요. 올라갈 때까지는 환희의 눈물이 아니라 아쉬움과 후회의 눈물 그리고 두려움의 눈물 이런 것들이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올라가서 내려가기 시작하면 그냥 끝이에요. 결정을 내리고 나니까 눈물이 한순간에 쑥 사그라들면서 환희로움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거죠. 내려갈 때 느꼈던 환희로움이라는 건 본인이 본인의 인생을 결정하는 힘, 이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꾼 것이거든요. 보물지도를 찾았다는 건 여기가 좋다라는 얘기를 들은 거예요. 그것과 내가 그 길을 가야겠다고 결정하는 건 다른 거예요. 그리고 내가 그 길을 좋아한다는 것도 다른 거예요. 이 두 가지가 합쳐졌을 때 환희로움이 일어나고 최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 대중들은 서로 마주서서 “성불하십시오. 저의 오랜 도반이여”라 말하며 밝게 웃었다.

제가 앞서 두 가지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 했죠. 첫 번째는 좋은 스승이 있는가? 없다면 당장 찾으세요. 주지스님께 당장 가셔서 “차 한 잔 주세요”하고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그것만으로도 최상의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자신의 삶에 올바른 서원이 있는가.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사람은 그 사람이 원하는 그것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마음에 있는 그 서원이 여러분 마음의 나침반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물이 나오지 않는 곳은 파봐야 안나옵니다. 절대 나오지 않아요. 나오는 곳에서 파야 물이 나오는 거예요. 올바른 서원이라고 하는 건 우리 모두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고통 벗어나고 싶으니까, 고통을 벗어나서 행복해질 수 있는 거기에 닿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것이 올바른 서원입니다. 어떻게, 올바른 서원이 있으신 것 같으신가요?

이제 부처님이 말씀하신 세 번째 행복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부처님은 베푸는 삶을 살고 정의로운 행동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정의롭게 산다는 건 사실 도덕시간에 우리 모두가 배운 이야기입니다. 일화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젊은 미혼모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백혈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아들에게 만약 스무살까지 산다면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었어요. 아이는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무작정 소방서에 찾아가 소방대장을 만났어요. 사정이야기를 하고 아이를 소방차에 한번만 태워달라고 부탁합니다. 소방대장은 아이에게 딱 맞는 소방복을 입혀주고 하루 동안 현장에 데리고 다니면서 소방대원이 되고 싶다던 소년의 소원을 들어줍니다. 아이는 한 달 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이후 3개월 정도를 더 살았습니다. 어느덧 정말 마지막을 준비해야할 날이 왔어요. 병원 간호사는 꼬마 소방대원의 마지막을 위해 소방대장에게 소방대원 한명만이라도 와서 임종을 함께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사실 귀찮을 수 있죠.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30분 후에 사이렌 소리가 울립니다. 전 대원이 정복을 입고 찾아왔어요. 아이가 누워있는 침대 앞에 기립해 다 같이 거수경례를 올립니다. 꼬마 소방대원이 물었어요.

“대장님 저 소방대원 맞죠?”

그러니까 소방대장이 손을 꼭 잡고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동료입니다”라고 전했답니다. 우리는 정의라고 하면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누구나 주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거기엔 크고 작음의 차이가 있을 순 있으나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니면 정의가 아니구나, 정말 큰 일이 아니면 무애보시가 아니구나, 정말 으리으리한 일이 아니면 법보시가 아니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부처님께서 보시바라밀이라는 것을 언급하실 때 제일 먼저 지푸라기부터 주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지푸라기를 주면 그다음은 짚신, 짚신을 주면 그다음은 뭐 이렇게 연습하면 마지막엔 자기 목숨을 주는데도 지푸라기처럼 인색한 마음 없이 줄 수 있다고 입보살행론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안되요. 무조건 큰 것 이어야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꽃 같은 얼굴로 예쁜 말을 하는 것 그리고 작은 성의라도 보이고 나누는 삶과 정의로운 삶을 살 때 그것이 최상의 행복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 원빈 스님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는 참석자.

제가 오늘 무슨 강연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아무래도 부처님 말씀에 의지하는 게 가장 좋겠다는 생각에 마하망갈라경에서 세 가지 이야기를 뽑아봤습니다. 첫 번째는 스승이 있는가. 법회로만 끝나면 안되고 없으면 당장 만드셔야 합니다. 두 번째는 올바른 서원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은 내 인생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 남은 인생을 어디다 투자할 것인가. 올바른 서원이 있어야 해요. 그다음 세 번째는 정의로운 삶,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그 사소한 일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꿉니다. 우리 스승님이 저에게 수박을 먹으라고 불러주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백수로 살고 있을지도 몰라요. 10여년 만에 이렇게 인생이 변했습니다. 앞으로 10년 뒤 그리고 또 10년 뒤엔 어떨까요. 이렇게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걸 아끼지 마시고 주변에 있는 분들에게 좋은 영향, 정의로운 영향을 끼치실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좋은 스승을 찾고 좋은 서원 갖고 그리고 베푸는 삶, 정의로운 삶을 산다면 세세생생 번영과 축복이 있고 이것이 바로 최고의 행복이라고 마지막 게송에서 말씀을 하십니다. 법회 후에 마하망갈라경을 한번 찾아보시고 또 오늘 말한 세 가지는 분명히 기억하셔서 이번 생에 우리가 또 만나게 되었을 땐 더 환희로운 얼굴로, 더 기쁜 얼굴로, 더 멋진 자리에서 만나 뵀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마무리 때 함께하는 인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 같이 마주서서 인사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합장을 하고 제가 하는 말을 따라하시면 됩니다.

“열 개의 손가락을 하나로 모으듯 흩어진 마음 하나로 모아 거룩하고 존귀하신, 예배 받아 마땅한 당신께 예를 갖춥니다.”

저희 스승님이 저한테 해주신 이 말을 저는 항상 마지막에 하는 걸 좋아해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저의 도반이실 거예요. 그러니까 다같이 “성불하십시오. 저의 오랜 도반이여” 이렇게 해볼까요. 오늘 기쁜 자리에서 좋은 법석 마련해주신 봉은사 주지스님과 법보신문에게 감사드리면서 마지막으로 박수치며 끝내겠습니다.

정리=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1293호 / 2015년 5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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