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보살들의 회향
노 보살들의 회향
  • 김형규 기자
  • 승인 2015.12.21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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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해의 끝자락에 서면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게 된다. 시간은 시작과 끝이 없이 다만 흘러갈 뿐이다. 그럼에도 시작과 끝을 나누는 것은 지나 온 삶을 반추해 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마지막은 항상 아쉽다. 인생이든 한해든 마찬가지다. 그래도 끝을 아름답게 회향하려는 마음이 이는 것을 보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불성이 깃들어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평생 걸쳐 어렵게 모은 정재
인재양성에 써 달라며 기탁

해 끝자락서 후회 내려놓고
성불 향할 자비심 일으켜야


연말연시를 맞아 불우이웃을 돕거나 가난한 이웃의 삶을 돌아보는 일들이 잦아지고 있다. 춥고 배고픈 겨울이 주는 계절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남다른 무게감이 아닐까 싶다. 연탄을 기부하고, 김장을 나눠주며 아픈 이들을 무료로 치료해주는 훈훈한 이야기들이 주변에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유독 눈길을 끄는 사연이 있다. 평생을 공양주로 살았던 여든의 노 보살과 앞을 못 보는 일흔 노 보살의 아름다운 회향이다. 12월 초 평생 절에서 공양주로 기도하며 지내던 여든의 노 보살이 조계종립대학인 동국대에 1억 원을 기탁했다. 출가를 원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해 절에서 기도하며 살 것을 서원했고 인생을 회향하기에 앞서 평생에 걸쳐 꼬깃꼬깃 모은 1억 원의 정재를 기부했다고 한다. 10년 전 시력을 잃어 앞을 못 보는 일흔의 노 보살 사연도 뭉클하다.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은 노 보살 또한  동국대에 1억 원을 보내왔다. 스스로를 인왕보살이라고 밝히며 매일 동국대와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한다. 두 노 보살 모두 기부금을 인재양성에 써달라고 당부했다. 동국대는 이들 노 보살의 뜻에 따라 장학회를 만들어 가난한 학생들에게 회향할 계획이다. 두 노 보살에게 유독 마음이 가는 것은 이들의 보살행에 빈자일등(貧者一燈)과 같은 의미가 느껴져서이다. 공양주로, 시각장애인으로 힘들게 살았을 이들이 황혼의 삶을 아름답게 회향하는 모습은 감동을 넘어 불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작은 일깨움을 주고 있다.

법보신문은 올해 창간 27년, 독립 10주년을 맞았다. 법보신문 구성원들이 스스로 주인이 돼 경영을 해온 지 꼭 10년이다. 독자들이 보내주는 구독료와 광고수입만으로 일궈온 독립언론의 역사이기에 더욱 뿌듯했다. 그러나 지난 10년, 가장 보람 있는 일들을 돌이켜보면 아마도 불교언론으로서 보살의 마음을 잃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법보신문은 독립 이후 공익적 가치 구현을 위해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 돕기에 앞장섰다. 일하다 다쳐 사경을 헤매거나 불법체류자로 치료조차 변변히 받지 못했던 이들을 매달 한명씩 찾아 독자들이 십시일반 전해 온 후원금을 전달했다. 벼랑 끝에 몰린 다문화가족의 아픔에도 고개 돌리지 않았다. 또 교구본사들과 함께 각 지역의 소외이웃들에게 라면과 후원금을 전달하고 해외사찰에는 불서를 기증했다. 캄보디아 학교에는 화장실과 전기시설을 놓아주기도 했다. 특히 올해에는 지진피해를 입은 네팔에 5500만원 상당의 물품을 지원하기도 했다. 법보신문이 독립 이후 이렇게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과 나눈 금액이 10억 원에 달한다. 아픈 사연에 함께 눈물을 흘리며 묵묵히 후원금을 보내 준 자비로운 독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런 독자들의 마음을 알기에 새해에는 공익법인을 설립해 좀 더 밀도 있는 보살행을 펼쳐볼 계획이다.

▲ 김형규 부장
올해 불교계는 어느 해보다 시끄러웠다. 험한 말과 행동이 일상으로 벌어졌다. 세상이 험하면 언론 또한 거칠어진다. 그럼에도 법보신문 구성원들이 불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것은 낮은 곳을 바라보며 보살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한 해가 저문다. 마지막이라는 단어에는 애틋함과 따스함이 배어있다. 돌이켜보면 항상 뿌듯함보다 후회가 더 많다. 이제 한 해의 끝자락에서 나빴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보살의 마음을 일으켜보자.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 가난한 중생을 만나 일으킨 그 자비심이 결국 성불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억한다면 말이다.

김형규 kimh@beopbo.com

 [1324호 / 2015년 12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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