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해를 돌아보는 몇 가지 성찰

기자명 재마 스님
  • 법보시론
  • 입력 2015.12.21 18:07
  • 수정 2016.01.11 17:54
  • 댓글 1

예부터 동짓날이 되면 백성들은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기고, 일가친척이나 이웃끼리 서로 화합하면서 어려운 일을 풀고 해결하였다고 한다. 또한 동지에는 새해의 달력을 나누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은 한 해 동안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새해는 보다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지혜로운 관습으로 보인다.

이즈음은 큰스님들과 굵직한 직함을 가진 어른들이 불우한 이웃을 위해 얼마의 성금을 냈다고 신문과 언론을 장식하는 때이기도 하다. 이런 나눔도 사회를 밝고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지만, 현대사회의 복잡한 구조와 인드라망 속에서 모두가 평화롭고, 안전하게 화합을 할 수 있으려면 어떤 지혜와 자비가 필요할까 다시 묻게 된다.

사건이 일어난 지 2년이 다가오지만 세월호 유가족들은 아무런 진실도 규명하지 못한 채, 오히려 ‘불가촉유가족’ 취급을 받으면서 여전히 여러 서명을 요청하고 있다. 416연대에서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방해사주 해수부문건 작성실행 경위 규명, 책임자처벌 요구’를 위한 국민서명에 나섰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소속 여당의원들의 계속적인 문제제기로 진실을 규명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였던 이들에게서, 이들에게 구체적인 행동요령을 지시한 해양수산부장관의 문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관련 현안 대응방안’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가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는 “아직도 노란리본을 달고 다니느냐”고 묻는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고,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뿐인데 말이다. 세월호 사건이 이렇게 지난한 상황을 지속하는 것은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한 때문이다. 언론이 권력과 자본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유롭게 생명을 살리고 정의와 진실을 밝히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올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비정규직 확산을 양산하는 노동법개악에 맞선 민중총궐기 대회가 두 차례 있었다. 1차 민중총궐기대회에서 시위하던 백남기 농민이 경찰이 쏜 물대포에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도 경찰당국의 사과 한마디 들을 수 없었다. 또한 민주노총이라는 노동자들의 최상급연합단체인 합법기구의 의장을 집회시위를 주동했다는 이유로, 일반도로교통법 위반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던 한상균 위원장을 25일간 숨겨주었던 조계사와 불교는 세간의 관심과 지탄을 동시에 받았고, 결국 한 위원장 스스로 검찰에 출두해서 구속된 상태이다. 내가 속한 종단에서 ‘화쟁’이라는 이름 아래 한 위원장을 내줄 수밖에 없었던 아쉬운 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화쟁위원회가 제2차 민중 총궐기대회를 평화적으로 이끌어낸 종단의 활동은 반가웠다. 늦었어도 백남기 농민의 병상을 찾아가 위로하고 기도했던 것도 붓다의 자비를 실천한 것이다. 우리 모두는 추위와 눈보라를 마주하면서 이겨낼 우리의 불성, 내면의 교사를 갖고 있다. 그 지혜의 소리는 언제 어떻게 들을 것인가?

우리시대의 양심가인 신영복 선생은 수인 시절에 보냈던 엽서를 모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한 해의 마지막 즈음이 되면 사고(思考)의 서랍을 엎어 쏟아내면서 지독한 지식의 사유욕과 어설픈 관념의 야적을 과감히 버리고 섭갹담등(躡屩擔簦-집신 한 켤레와 우산 한 자루)으로 언제 어디로든 가뜬히 떠날 수 있는 최소한의 소지품만 남기고는 정리하였다”고 했다. 이는 어느 노스님이 시자에게 “내일 길을 떠날 테니 깨끗하게 빤 옷 한 벌과 지팡이 하나를 준비하라”고 말씀 하시곤, 다음날 그렇게 준비된 옷과 신발로 행장을 꾸리고 문 밖을 나서 지팡이를 짚고 길 떠나는 자세로 입적했다는 일화를 되새기면서 본받고자 했던 것이다.

법정 스님은 겨울을 ‘뿌리로 돌아가는 계절’로 ‘우리 안에 무언가 죽어야 할 것을 예감하는’ 계절이라고 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면서 넘치도록 가진 물질뿐만 아니라,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에 기대어 쌓아두었던 묵은 감정들과 온갖 상념들을 정리하고 내려놓아야 맑고 명징한 지혜의 등불이 켜지지 않을까?

재마 스님 중앙승가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jeama3@naver.com
 

 [1324호 / 2015년 12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