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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석명도(釋明導)〈끝〉

기자명 성재헌

삶의 원칙이 분명하고, 그 원칙에 충실한 사람은 세상에 드물다. 설령 그 원칙이 다소 이기적이고 편향적이라 해도, 혹 그런 사람이 있다면 ‘대단하다’는 평을 들을 만하다. 하물며 그 원칙이 자타를 아우르는 공익을 목표로 삼고, 지극히 보편타당한 사유를 기반으로 한 경우라면 어떨까! 그런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 앞에서 목숨마저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실로 그가 성자라 하겠다.

도교 숭상했던  당나라 고종
거대한 노자상 망산에 설치
“승려들 깃발 들고 앞장” 명령
목숨건 반대로 사죄 받아내

수나라 말엽 당나라 초기에 명도(明導) 스님이란 분이 계셨다. 머리가 영특하고 행실이 반듯했던 그는 명망이 높았다. 그에게는 남다른 묘한 힘이 있었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그 틈에서 그가 중재에 나서면 문제가 척척 해결됐다. 여러 해를 끌어오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던 복잡한 송사(訟事)도 막상 명도 스님이 찾아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면, 신기하게도 당사자들이 뻗대던 심사를 꺾고 다들 그의 말을 따랐다. 그 신통함에 놀라워하며 주위에서 비결을 물으면 명도 스님은 늘 이렇게 대답했다.

“저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지만 대중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건 타인의 삶에 대해서건 사사로운 감정을 추호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 공명정대함이 명명백백했기에 어느 누구도 그의 판결을 거역하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역사에서 불교가 가장 치성했던 시기로 당나라를 꼽지만 사실 당나라는 건국 초기부터 도교를 국교로 삼았다. 그래서 누차에 걸쳐 노장을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정책을 암암리에 시행했다. 당나라 고종 인덕(麟德) 원년(664)에도 그와 관련된 사건이 있었다.

거대한 노자상(老子像)을 새롭게 조성한 황제는 이를 망산(芒山)에 안치하라 명하고, 낙양(洛陽)에서 가장 화려한 물품들로 그곳을 치장하게 했다. 이 임무를 담당한 장사(長史) 한효위(韓孝威)가 황제의 위세를 등에 업고 낙양 22현(縣)의 스님들을 모두 집합시켰다. 그는 스님들에게 노자상을 환영하는 깃발을 들고 망산까지 앞장서도록 명했다. 이때 명도 스님이 대중 가운데서 말했다.

“불교와 도교는 본래 하늘과 땅만큼 다릅니다. 궁극으로 삼는 바도 다르고, 궁극에 도달하는 길도 다르고, 받드는 사람도 다릅니다. 승려들이 도교의 상을 받들어 배웅한다는 것은 이치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불러다놓고 노자상을 끌라 해서야 되겠습니까?”

“네가 나라의 명령을 거역하겠다는 것인가?”
명도 스님은 물러서지 않았다. “당신의 명령입니까, 황제의 명령입니까?
한효위는 비웃었다. “당장 저자의 옷을 벗기고 옥에 감금하라.”

병졸들이 달려들자 명도 스님이 뿌리치며 항변했다. “이 가사는 부처님의 혜명을 잇겠노라 맹세하고 제 손으로 입은 것이지, 당신이 준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 가사는 황제의 허락을 받고 입은 것입니다. 당신이 뭐라고 함부로 벗기는 것입니까?”

한효위는 단상에서 굳은 얼굴로 엄포했다.

“여러분 가운데 천존(天尊)을 받들어 배웅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앞으로 나오라. 국법의 지엄함을 보이리라.”

명도 스님이 뛰어나가 홀로 당당히 그 앞에 섰다. 그러자 그 자리에 참석했던 스님들이 우르르 뒤를 따랐다.

한효위는 진노했다. “지금 반역하겠다는 것인가?”

말이 떨어지자마자 명도 스님이 한효위 곁의 6조(曹) 관리들에게 외쳤다. “황제의 명을 사칭하고 멋대로 법률을 범했으니, 우리가 아니라 장사(長史)가 반역자요. 반드시 이 사실을 어사(御史)께 고발하겠소.”

수천 명의 스님들이 일시에 앞으로 나서자 한효위는 크게 당황했다. 결국 이 사건은 한효위가 계단에서 내려와 허리를 굽혀 사죄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당나라에서 불교가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까닭은 명도 스님처럼 진실 앞에서 물러설 줄 몰랐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성재헌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tjdwogjs@hanmail.net

 [1324호 / 2015년 12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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