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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법운 스님의 도선사 국수

부처님께 백미 올리는 오래된 관행 타파한 청담 스님의 파격

▲ 일러스트=강병호 작가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 동국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사회정의 실현과 사회복지 구현이라는 당찬 포부로 시작한 도전이었지만 이내 다른 공부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그것은 부전공으로 선택한 불교학이었다. 이종익 박사 등 당대 내로라하는 석학들의 강의를 들으며 대자유인의 꿈을 키웠다. 그리고 1968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찾아간 곳은 서슬 퍼런 청담 스님이 계신 도선사였다.

국민 혼분식 하던 가난한 시절
청담 스님 혁신적 공양법 제시

청빈의 상징, 소금 절인 짠무
여름철 맹물 넣으면 냉채 돼

남은 누룽지 넣은 누룽지 된장
도선사 대표하는 별미 중 별미

콩가루 냉이국·콩가루 쑥국도
스님들 입맛 적시던 사찰음식

1902년 경남 진주에서 출생한 청담 스님은 그저 산중에서 일신의 득도만을 구하는 소극적인 수행자가 아니었다. 승단과 속세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의 진리를 온몸으로 체화하셨던 시대의 행동가요, 사상가였다. 특히 스님은 일제강점기의 잔재로 남아있던 대처승 문제를 간과하지 않고 한국불교의 전통이 비구종단에 있음을 알리고 그 폐해를 척결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1966년 도선사에 터를 잡은 청담 스님은 호국참의원 건립에 착수하며 한국불교 정화운동에 앞장섰다. 사미 법운이 청담 스님을 뵌 것도 이 무렵이다.

“청담 스님은 당시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되어 있던 가난과 무지, 편견을 타파해 모두가 자유롭고 풍족한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때문에 당시 정부에서 장려하던 혼분식장려운동에도 앞장서 동참하셨어요. 모자란 쌀을 밀가루로 대치하지 않고서는 온 국민이 배부르게 먹을 방도가 없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청담 스님은 사시마지로 국수를 올리라 명했다. 커다란 놋쇠그릇에 삶은 국수를 가득 담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모습은 파격 그 자체였다. 사람은 굶어도 부처님께는 쌀밥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 절집 정서였다. 함께 대중생활을 했던 법정 스님조차도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청담 스님은 단호했다. 모든 격식과 계율도 ‘사람’에 의해 정해지고 만들어진다는 것이었다. 또 사람이 아닌 격식에 의해 삶이 휘둘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굳이 정부시책이 아니더라도 편견과 무지, 아집과 독선이야말로 깨달음을 방해하는 가장 위험한 내적 요소임을 꿰뚫었던 청담 스님은 전통이라고 믿고 따르는 것조차 바꿀 수 있다는 마음을 내야 한국불교의 혁신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어찌되었던 도선사 외에 부처님 마지로 국수를 올린 경우가 또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매일 사시 때마다 국수를 올렸던 도선사의 마지공양은 아마도 우리나라 현대사찰 공양법에 있어 혁신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청담 스님은 아침에 꼭 죽을 먹도록 했다. 근검절약과 소식을 실천했던 청담 스님은 대중들에게도 반드시 청빈하게 생활할 것을 명했다. 점심공양은 부처님께 올린 마지를 대중이 함께 공양했는데 반찬은 김치 하나였다. 도선사 김치는 짜기로 유명했다. 이 역시 절집 대중은 청빈해야 한다는 청담 스님의 명에 따른 것이다. 만드는 비법은 아주 짜게 절인 배추에 무채와 고춧가루, 미나리와 갓 등을 양념해 버무리는 것이다. 김치 한 조각만 있어도 다른 반찬 하나 없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울 수 있을 정도였다.

‘짠무’ 역시 뺄 수 없는 도선사의 별미였다. 소금에 절인 짠무는 여름철 곱게 썰어 맹물에 넣기만 하면 냉채가 됐다. 때에 따라서는 물에 담가 짠기를 빼 고춧가루에 무쳐 먹기도 했다. 참기름이나 깨소금 등을 넣으면 더 좋았겠지만 당시는 스님의 불호령이 무서워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누룽지를 넣어 만드는 ‘누룽지된장’이라는 특별한 된장도 있었다. 평소 누룽지를 잘 긁어 모아두었다가 말린 다음 가루를 내어 된장과 함께 섞어 익히면 구수하고 맛있는 된장이 된다. 공양시간에 누룽지된장을 넣어 끓인 된장국이 나오는 날이면 그나마 맛있게 공양을 하는 날이었다.

그렇다고 도선사에 특별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중에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면 맛볼 수 있는 특별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다. 어른스님들이 즐기던 음식 중에는 ‘연근강정’과 ‘도라지강정’이 있었다. 가끔 어디선가 연근과 도라지 보시가 들어오면 먹지 않고 강정으로 만들어 어른스님들 상에만 아껴 올리곤 했다. 행자시절 몰래 훔쳐 먹던 그 달착지근한 맛은 지금도 잊지 못 할 추억이다.

봄에만 맛볼 수 있는 ‘참죽나물 부각’ 역시 아주 특별한 음식이었다. 봄이 되면 거사, 행자, 스님 가릴 것 없이 모두 산에 가서 참죽나물을 캐왔다. 도선사 근처 산은 대개 돌산이라 나물도 귀해 웬만한 채소는 텃밭에서 길러 먹어야 했다. 그만큼 나물이 귀했으니 캐온 참죽나물은 부각으로 만들어 중요한 행사 때에만 조금씩 꺼내 썼다. 당시는 식용유가 귀했기에 튀김음식 자체만으로 이미 고급 중의 고급 음식이었다. ‘콩가루 냉이국’과 ‘콩가루 쑥국’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도선사 음식이다. 봄철 향기로운 나물을 뜯어다가 콩가루에 묻혀 누룽지된장으로 끓인 냉이국과 쑥국은 생각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인다. 콩가루를 넣은 봄국은 당시 별미로 일 년에 한 두 번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사찰에서 음식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간소화해 건강을 해치면 안되겠지만, 요즘 사찰음식을 보면 너무 화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리 가능하고, 간편하면서도 현대적인 사찰음식이 더 많이 개발돼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중생과 함께 하지 않는 진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사찰음식 하나에도 확고한 사명감과 철학을 갖고 혁신과 개혁, 동반을 강조한 청담 스님의 시대정신을 본받아야 합니다.”

정리=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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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운 스님은

1968년 도선사로 출가해 1970년 청담 스님을 은사로 계를 받았다. 어린이·청소년포교와 교정교화활동에 매진해 왔으며, 현재까지 청소년교화연합회 서울지부장, 상임이사 등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1325호 / 2016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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