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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스님의 재가불자를 위한 우바새계경 강설] 1. 집회품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5.12.28 16:48
  • 수정 2016.01.08 10:20
  • 댓글 0

바른 불자로 살기 위한 첫 번째 실천 지침은 ‘보시바라밀’

 
‘우바새계경’은 재가불자들을 위한 부처님 가르침을 집대성한 경전으로 이란 출신의 동인도 삼장 담무참 스님이 번역했다. 법안 스님은 2013년 ‘우바새계경’에 역주를 달아 단행본으로 출간한데 이어, 2016년 새해부터 법보신문 지면을 통해 한국 최초의 ‘우바새계경’ 강설을 격주로 이어갈 예정이다.  편집자주

출·재가 정체성 다르기에
재가자 위한 가르침이 필요
‘우바새계경’이 중요한 이유
세속 삶 위한 실천지침 담겨

반갑습니다. 올 한해 법보신문 지면에서 ‘우바새계경’ 강설을 연재하게 된 법안입니다.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을 담은 수많은 경전 가운데 재가불자들이 소의경전으로 삼을 만한 경전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대다수 불교교양대학과 사찰들이 재가불자 교육을 위한 기초교재로 ‘초발심 자경문’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이 경전은 출가자를 위한 가르침이지, 세간에서 살아가는 재가불자들을 위한 경전은 아닙니다. 물론 그 내용은 재가 불자들이 읽어도 훌륭하지요. 허나 출가자와 재가자의 정체성은 분명 다르며 그 발심 또한 같지 않습니다. 승속의 구분이 모호한 가운데 그 가르침조차 삶과 괴리되어 있을 때 불자들은 혼란을 느낍니다. 세속적인 여건에 의해 삶이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재가자에게는 본디 그 자리, 즉 세간에서 깨달음을 줄 부처님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바새계경’이 소중합니다. 한국불교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바새계경’은 재가불자를 위한 부처님 가르침을 집대성한 경전입니다. 재가불자들이 지금 현재 자리한 삶 속에서 불자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바새계경’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바로 ‘위불교 위중생(불교를 위하고 중생을 위한다)’입니다. 보편화된 경전이 아니라 시중에서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2013년 안심정사에서 법보시용으로 단행본을 출간한 것이 아마도 유일할 듯합니다.

‘우바새계경’은 철저하게 재가불자를 위한 경전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배우고 실천하는 우바새·우바이가, 그 가르침에 따라 지켜야 할 실천적 계율이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다르게 말하면 재가불자들이 삶 속에서 지켜야 할 행동 지침입니다. 이 계율은 억압이나 규제, 통제가 아닙니다. 부처님 제자로 보다 행복하고 지혜롭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삶의 표준이자 기준점으로 이해하면 무방합니다. 재가불자를 위한 부처님 가르침의 집대성이자, 언제 어디서든 재가불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실천지침이 가득한 경전이기에 이 한권만을 소의경전으로 삼아 숙지하고 실천해도 좋습니다.

‘우바새계’경은 모두 28품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결코 쉬운 경전은 아닙니다. 제1품인 집회품은 육바라밀부터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익숙한 삼귀의는 20품에 가서야 나옵니다. 이 구성에는 엮은이인 담무참 스님의 안목과 식견이 담겨있습니다. 다음은 ‘우바새계경’ 집회품 첫 문장입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기수급고독원에서 대비구승 일천이백오십명과 오백명의 비구니와 일천명의 우바새와 오백명의 걸식하는 아이들과 함께 머물고 계셨다. 그때 장자의 아들 ‘선생’이라는 사람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시작부터 사부중의 하나로 우바새가 정확히 명시돼 있지요? 질문의 주체 역시 장자의 아들, 즉 우바새입니다.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은 기원정사입니다. 중인도 코살라국의 수도 사위성(舍衛城, 슈라바스티)의 제타 동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수달타 장자가 부처님께 공양올린 절로, 부처님의 45년 교화기간 중 가장 오랜 기간 머물며 설법하신 유적지이기도 하죠. 이를 통해 수다타는 ‘급고독장자’, 즉 고독한 이들에게 보시를 많이 한 부자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도를 하시고서 제일 먼저 포교대상으로 삼았던 게 사회 지도층이었다는 것은 모두 알고 계시지요? 기원정사가 바로 그 시대 권력과 재력을 가진 사람들을 교화한 대표적인 장소예요.

당시 수다타 장자는 인도에서 손꼽는 대부호로, 극심한 인생의 회의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풍족함의 정점에서 허무함과 맞닥뜨렸다고나 할까요? 누군가가 “새벽에 공동묘지를 가보라”는 조언을 합니다. 그곳에서 만난 분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입니다. 수다타 장자는 부처님을 뵙고 깊이 감화되어 “사위성으로 돌아가면 절을 지어 모시겠다”고 약속을 하게 되지요.

부처님을 모실 장소를 찾다보니 당시 사위성의 기타태자(祇陀太子, 제타태자) 소유의 땅이 가장 적합합니다. 당시에도 권력가와 재력가 사이의 자존심 대결이 있었으니 팔라고 한들 흔쾌히 팔리가 있겠습니까? 장자가 “돈은 얼마든지 주겠다”고 하자, 태자는 “금화를 깔아 덮인 만큼 팔겠다”고 응수하죠. 가진 금화를 넓은 땅에 하나하나 깔아보니 그야말로 어림도 없는 거예요. 전 재산을 전부 팔아도 사방 100미터도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인도 최고의 재벌이었던 장자는 그렇게 하루 아침에 거지로 전락하고 맙니다. 돈이 없어 3일 내내 굶었을 지라도, 장자는 부처님 법을 모시기 위한 드높은 원력만은 잃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거리에 깡통을 들고 앉아 구걸에 나섭니다. 이 소식을 들은 태자가 친히 장자를 찾아가 조롱의 뜻으로 금화 한 닢을 깡통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지켜보니 금화를 받은 장자가 태자의 숲으로 달려가 땅 위에 금화 한닢 올려두고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까? 배고픔이나 재산을 잃은 고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행복한 모습이었겠지요.

그 원력에 드디어 태자도 감복합니다. 공짜로 땅을 제공하기로 하죠. 그렇게 시작된 대불사의 결과물이 바로 기타태자의 숲에 급고독장자가 지은 정사, 기수급고독원(기원정사)입니다. 재계와 정계의 화합이니, 이를 계기로 수많은 사회지도자들이 불사에 동참합니다. 부처님은 기원정사에서 재가불자들을 위해 ‘우바새계경’을 설하셨습니다. 만물이 유한하고 때가 되면 사라지지만 법과 진리는 영원하니, 기원정사 또한 지금은 비록 황량한 터만 남았을지라도 그곳에서 설해진 가르침으로서 우리들 마음 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곳 기원정사에서 장자의 아들이 부처님께 다시 묻습니다.

세존이시여, 육사외도들이 중생을 가르치며 법을 설하여 말하기를 ’이른 새벽에 여섯 방향에 예경(六方禮)하면 수명과 재물을 늘릴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재석에게 속한 동방의 땅을 공양하면 석제환인이 보호하고 도우며 염라왕에게 속한 남방의 땅에 공양하면 염라왕이 보호하고 도우며…풍천이 속한 상방의 땅에 공양하는 자는 풍천이 또한 보고하고 돕기 때문입니다’라고 합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이와 같이 육방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부처님 재세 당시 갠지스강 중류에서 세력을 떨친 여섯 명의 사문을 육사외도라고 합니다. 이들은 불교가 아닌 가르침을 통해 여섯 방위에 공양 올리는 공덕을 알렸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동서남북 천지신명께 소원을 비는 취지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부처님은 이 육방에 대한 질문의 답으로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설합니다.

선남자여 나의 가르침에도 육방이 있으니 이른바 육바라밀이 그것입니다. 동쪽은 단바라밀입니다. 가장 먼저 지혜의 빛을 내는 인연이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동쪽은 중생의 마음에 속하는데, 중생이 단바라밀에 공양하면 수명과 재산을 늘릴 수 있습니다.…

‘육방예경’에도 자세하게 나오는 대목입니다. 단바라밀은 ‘보시’의 산스크리트어가 ‘다나’이니 즉 보시바라밀입니다. 보시는 널리 베푼다는 의미입니다. 부처님은 언제든지 가장 중요한 것을 앞에다 내세우셨으니, 육바라밀도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 순입니다.

한국 불교의 안타까운 풍토 가운데 하나가 반야, 지혜를 우선하고 중히 여기는 인식입니다. 지혜는 실천행이 선행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현우경’의 일화에 비추어 설명하겠습니다. 한 어리석지만 부유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웃의 3층 집을 보고 더 멋진 집을 짓기 위해 대목장을 고용합니다. 그런데 이 대목장이 지으라는 집은 안 짓고 땅을 파기 시작하는 게 아닙니까. “왜 땅을 파고 있냐”고 묻자 기초를 다져야 한답니다. 안달이 난 부자가 말합니다. 나는 기초도 필요 없고 1, 2층도 필요 없으니 3층만 멋지게 지어달라고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가능할까요? 집은 지어지기 전에는 형상이 없기에 기초를 다지는 이유는 믿음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육바라밀에서는 보시바라밀이 바로 믿음의 근거인 셈이지요. 때문에 부처님께서도 ‘가장 먼저 지혜의 빛을 내는 인연이 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바라밀 실천에 있어 보시를 제외한다면 기초가 없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엔 바라밀 실천의 주체를 살펴봅시다.

“이러한 육방을 누가 공양할 수 있습니까?” “선남자여, 오직 보살만이 공양할 수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의미에서 보살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하며 보리의 성품을 가졌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합니다.”

‘금강경’의 ‘여래(如來) 위발대승자설(爲發大乘者說) 위발최상승자설(爲發最上乘者說)’과 상통하는 구절입니다. 부처님은 가장 앞선 가르침을 구하려는 대승자와 가장 뛰어난 가르침을 구하려는 최상승자를 위해서 이 법을 설한다는 것이지요. 부처님이 설하신 바에 따르면 육바라밀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자가 곧 대승자, 최상승자이며 보살입니다. 대승자와 최상승자 역시 보시바라밀에서 출발합니다.

기원정사는 ‘위발대승자설 위발최상승자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대승자과 최상승자는 바로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불자이니, 육바라밀 수행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최상승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보살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빠른 직행코스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선구세 종구심(先求世 從救心)’ 먼저 세상을 구한 뒤 깨닫는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대승과 최상승의 법문입니다. ‘자미득도 선도타(自未得度 先度他)’라는 표현도 있지요. 내가 깨달음을 얻은 뒤 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것은 대승도 아니고 최상승도 아니예요. 이것을 분명히 인지해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우바새계경’에 나타난 재가불자의 첫 번째 실천지침이 바로 육바라밀인 것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라밀은 곧 지혜의 완성이니, 그 첫 번째인 보시바라밀은 보시를 통한 지혜의 완성입니다. 보시의 실천을 통해 먼저 세상을 구하고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대승불교에 정확히 부합하는 가르침입니다. 보시바라밀은 세간에 속한 재가불자가 삶 속에서 행하는 실천이지만, 전세금 빼서 불사하라는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착각하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재가불자로서 삶에 충실하여 보시바라밀을 실천할 수 있는 부자가 되라는 의미입니다. 부자가 되어 불사도 하고 어려운 이웃과 나누며 이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보시바라밀을 실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요.

진정한 부자가 되는 법은 내 마음자리에 있습니다. 마음의 의식 수준이 열리는 순간, 지금 내가 있는 위치에서 부자가 되어 보시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얼마를 가졌는지, 또 가질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물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으로 모든 것을 회향하는 순간, 진정한 보시바라밀의 실천이자 삶 자체가 극락이 되는 거예요. 이것이 ‘우바새계경’의 첫 번째가 육바라밀, 그중에서도 보시바라밀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지요. 다음은 집회품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출가한 사람이 보리심을 내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재가자가 보리심을 내는 것은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재가자는 많은 나쁜 인연에 얽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재가자가 보리심을 발할 때는 사천왕으로부터 아가니타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천신들이 모두 크게 놀라고 기뻐하며 이러한 말을 합니다. “우리가 이제 인간과 하늘의 스승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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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스님은

논산 안심정사 회주. 1984년 일화 스님을 은사로 공주 원효사에서 출가, 논산 안심정사를 창건해 20년간 약사기도에 매진했다. 고려대 정경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원광대 대학원에서 약사신앙 연구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태고종 11대 중앙종회의원, 총무원 기획부장, 교무부장, 교육부장을 역임했다. 공주교도소 교정위원회 불교분과 위원장, 원광대 및 건양대 사회교육원 강사, 육군탄약지원사령부 및 육군부사관학교 지도법사로 활발한 포교 및 재가불자 양성에 진력하고 있다.


[1325호 / 2016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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