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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뀌고 세상을 바꾸는 발원] 4. 옛 불자 황산곡의 발원문

기자명 성재헌
  • 새해특집
  • 입력 2015.12.29 10:35
  • 수정 2016.01.08 10:24
  • 댓글 0

진솔하고 다부진 발원만이 아교처럼 눌어붙은 악습 떨쳐내

▲ 송나라 때 화승인 석각의 ‘호계삼소도(虎溪三笑圖)’. 여산의 고승 혜원 스님이 유학자인 도연명과 도사인 육수정을 배웅하다 이야기에 몰두해 호계를 넘고 말았다는 고사를 그린 그림이다. 호계삼소 고사는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수많은 화가들의 소재로 사랑받았다.

달력이 바뀐다고 새로운 해일까? 12월31일에 양화대교로 건너는 것도 ‘한강’이고 1월1일에 양화대교로 건너는 것도 ‘한강’이니, 달력이 바뀐다고 새로운 세상이 척! 하고 펼쳐질 일은 없다. 또, ‘새롭다’는 말을 꼭 붙여야겠다면 어찌 365일 중 단 하루에만 그 특별함을 부여하는가? 쉼 없이 흐르는 ‘강물’에 주목한다면 순간순간 새롭지 않은 때란 없다.

푸짐한 고기 안주에 술 마시며
애절한 사랑 시를 짓던 황산곡
법수 선사 호통에 크게 깨닫고
탐닉을 반성하며 발원문 지어

자신의 맹세 저버리지 않고
남은 생 참선하다 세상 떠나

이런 사정을 사람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2015와 2016이란 숫자를 붙여 한밤에 종을 치고 세상이 정말 바뀌기라도 하는 양 요란을 떠는 것은 왜일까? 그건 아마도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겠노라는 다부진 결심 때문일 것이다. 태양이 어찌 동해에만 뜨고, 부처님이 어찌 법당에만 계시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갈한 차림새로 멀리까지 찾아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으는 것은 왜일까? 그건 아마도 어제와 다른 오늘을 희망하는 간절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어제의 잘못을 돌아보고 오늘을 새롭게 살아가며 아름다운 내일을 기약하는 것, 그것을 불교에서는 발원(發願)이라 한다. 발원에 어찌 때와 장소를 가림이 있겠냐마는 짬 없이 내달리는 우리네 삶에서 제야(除夜)와 신단(新旦)의 언저리는 돌아보기 좋은 시절이 되고, 동녘의 태양과 법당의 부처님은 다짐하기 좋은 인연이 되지 싶다. 그러니, 새해를 맞아 부처님 전에 찾아가 발원문(發願文)을 한 장씩 올린다면, 더 없이 좋은 절집 풍속이 될 것이다.

발원문, 어떻게 써야할까? 각자 뉘우치는 바가 다르고 고대하는 바가 다르니, 다짐하는 바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뉘우치건, 무엇을 바라건, 무엇을 다짐하건, 진솔하고 다부져야 한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보현보살(普賢菩薩)처럼 “인간은 물론이고 새와 짐승, 풀과 나무에 이르기까지 드넓은 우주의 모든 생명체들을 부모님처럼 섬기며 공경하겠노라”고 다짐하지 않아도 좋다. 이산 혜연(怡山惠然) 선사처럼 “내 모양을 보는 이나 내 이름을 듣는 이는 모두 보리의 마음을 내어 윤회의 고통을 벗어나게 하소서” 하고 소망하지 않아도 좋다. 그 뉘우침이 진솔하고 그 맹세가 다부지기만 하다면 부처님 전의 발원으로 충분하다. 좋은 실례가 황산곡(黃山谷)의 발원문이다.

산곡(山谷)은 중국 북송의 시인이었던 황정견(黃庭堅, 1045년~1105년)의 호이다. 그는 소식(蘇軾) 문하 제1제자로 손꼽혔던 당대의 문호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불교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에게 있어 불교는 풍부한 교양이자 색다른 취미 정도였다. 그래서 절집을 자주 드나들긴 했지만 푸짐한 고기 안주에 술을 마시면서 애절한 사랑의 시를 짓던 버릇은 여전했다.

멋들어진 그의 시에 세상이 환호하던 시절, 하루는 원통 법수(圓通法秀) 선사를 만나게 되었다. 법수 선사는 철면(鐵面)이란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그 성품이 냉엄하고 직설적인 분이었다. 선사가 대뜸 산곡을 꾸짖었다.

“대장부가 그 좋은 글 솜씨를 겨우 이렇게 쓴단 말이오.”

산곡이 씽긋이 웃으며 말했다. 

“저까지 말 뱃속에 집어넣으시려고요?”

당시 말을 잘 그려 거의 입신의 경지에 이른 이백시(李伯時)란 사람이 있었다. 법수 선사가 그에게 생각 따라 움직이는 삶의 원리를 설명하고 “말 뱃속에 들어갈 날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고 꾸짖은 일이 있었다. 이백시는 이 일로 뉘우친 바가 있어 그 후로는 관세음보살상을 그렸다고 한다. 산곡이 이에 빗대어 법수 선사의 꾸지람을 농으로 받아친 것이다. 그러자 법수 선사가 정색하며 말했다.

“당신은 달콤한 말로 온 세상 사람의 음탕한 마음을 부추겼습니다. 말 뱃속에 들어가는 정도로 그치지 않고 지옥에 떨어질까 정말 두렵소.”

▲ 황산곡 초상.

이 말씀에 모골이 송연해진 황산곡은 연애시를 짓던 붓을 당장에 꺾어버렸다. 그리고 술과 고기와 여자에 탐닉했던 자신을 통렬히 반성하며 발원문을 한편 지었다.

“그 옛날 사자왕께서는 맑고 깨끗한 법을 몸으로 삼고 최상의 진리인 공(空)의 골짜기에서 갈기를 휘날리며 포효하셨습니다. 정념(正念)의 활, 삼명(三明)의 예리한 화살, 사랑과 연민의 갑옷을 입고서 인욕의 힘으로 동요하지 않으며 마왕의 군대를 곧장 격파하셨습니다. 항상 삼매를 즐기며 감로를 맛있는 밥으로 삼고 해탈의 맛을 국으로 삼아 삼승(三乘)에 노니셨고, 일체지(一切智)에 편안히 머물며 위없는 법륜을 굴리셨습니다.

제가 이제 그 성품에 맞는 참된 말씀을 널리 찬양하고, 몸과 입과 뜻으로 헤아리고 관찰하면서 사실대로 참회합니다. 저는 지난날 어리석음으로 인해 애욕을 품었고, 술 마시고 고기 먹으며 애욕의 갈증을 더하였고, 삿된 견해의 숲으로 들어가 해탈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부처님을 마주해 크게 맹세하고 소원합니다.
오늘부터 미래세가 다하도록 다시는 음욕을 부리지 않겠습니다.
오늘부터 미래세가 다하도록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오늘부터 미래세가 다하도록 다시는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

만약 다시 음욕을 부린다면 마땅히 지옥에 떨어져 불구덩이 속에서 한량없는 세월을 보낼 것이며, 일체 중생이 음란한 짓을 한 과보로 받아야 할 고통까지 제가 다 대신 받겠습니다. 만약 다시 술을 마신다면 마땅히 지옥에 떨어져 철철 넘치는 구리 쇳물을 마시며 한량없는 세월을 보낼 것이며, 일체 중생이 술에 취한 과보로 받아야 할 고통까지 제가 다 대신 받겠습니다. 만약 다시 고기를 먹는다면 마땅히 지옥에 떨어져 뜨거운 쇳덩이를 삼키며 한량없는 세월을 보낼 것이며, 일체 중생이 고기를 먹은 과보로 받아야 할 고통까지 제가 다 대신 받겠습니다.

원하옵니다. 제가 이렇게 미래가 다하도록 참고 견디겠노라 맹세하였으니, 육근(六根)과 육진(六塵)이 청정하여 십인(十忍)을 빠짐없이 갖추게 하시며, 남의 가르침 없이도 일체지에 들어가게 하시며, 여래를 따라 다함없는 중생계에서 불사를 드러내게 하소서.

삼가 생각하오니, 시방세계를 훤히 꿰뚫고 만 가지 덕으로 장엄하신 불보살님이시여, 티끌처럼 수많은 세계에서 저를 위해 증명해 주소서. 만약 다음 생에 태어나 이 사실을 잊어버리거든 부디 가피를 드리워 저의 미혹의 구름을 걷어 주소서.

허공 같은 법신께 한결같은 마음으로 간절히 예배합니다.”

그렇게 진심으로 불법에 귀의한 황산곡은 회당 조심(晦堂祖心) 선사를 만나 불법의 진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후 세상 사람들은 그의 새로운 시들을 더욱 사랑해 스승인 소식과 더불어 황소문(黃蘇門)이라 칭하며 계수나무 꽃처럼 맑고 향기롭다 찬탄하였고, 당대를 호령하던 영원 유청(靈源惟淸) 선사와 사심 오신(死心悟新) 선사도 그를 막역한 벗으로 대접하였다. 황산곡은 평생 자신의 맹세를 저버리지 않고 아침에 나물죽 한 그릇 점심에 나물밥 한 그릇만 먹으면서 참선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황산곡이 세간과 출세간에서 고루 칭송받는 인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술 먹고 고기 먹던 자신을 진솔하게 반성한 한 편의 발원문 덕분이었다. 발원(發願), 그것은 지난 허물에 대한 참회의 채찍이요, 나아갈 길을 표방하는 맹세의 깃발이다. 깃발이 없다면 구곡양장의 세상길에서 어디로 나아갈 것이며, 채찍이 없다면 나태한 자신을 무엇으로 다그치겠는가? 새로운 삶을 기대한다면 반드시 발원한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 발원은 황산곡처럼 진솔하고 다부져야 할 것이다. 진솔하지 않은 참회는 낭창낭창한 버드나무 회초리이고, 다부지지 않은 맹세는 너덜너덜한 종이 깃발이다. 그런 채찍으로는 아교처럼 눌어붙은 나쁜 습관을 떨칠 수 없고, 그런 깃발로는 인생사 모진 풍파를 헤쳐 나아갈 수 없다.

2016년 1월1일, 새해를 맞아 다함께 발원문 한편 지어보자.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황산곡처럼 술 먹지 않고 고기 먹지 않겠노라고 맹세해 보자. 불자라면 당연히 지킬 오계(五戒)를 오늘부터라도 꼭 지키겠노라 맹세해 보자.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던 자신을 뉘우치고, 당연한 일을 당연히 실천하겠노라 새삼 다짐해 보자.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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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헌 번역위원은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해군 군종법사를 역임했다. ‘스승과 제자 함께 걷다’ 등의 저서와 ‘자비도량참법집해’ 등의 역서가 있다. 현재 한국불교전서 번역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325호 / 2016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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