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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계룡산(2) 갑사-천진보탑-등운암-연천봉

땅 하늘 잇는 봉우리, 등운·월명 오누이 인연도 잇다

▲ 누군가 설원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삼불봉서 얻은 마음, 천진불탑서 얻은 환희심을 지어 나르는 저 사람은 누구인가!

“단아한 천관산 보탑
위용의 계룡산 보탑
두 탑 중 아소카 탑은?”

갑사(甲寺)! 천간 첫 째가 ‘갑’이니 세상서 으뜸가는 절이다. 국보 1점에 보물5점, 그리고 도지정 유형문화재 8점도 소장하고 있으니 문화재 보유 측면서도 ‘최고의 절’답다. 갑사 하면 철당간 지주와 동종을 떠올리는데 실은 더 멋진 보물이 있다. 그 하나가 삼신불괘불탱화(국보 298호). 효종 원년(1650년)에 조성된 이 탱화 길이는 12.47m고 폭은 9.48m다. 초대형 괘불이기에 걸기도 녹록치 않아 갑사도 대웅전에 모셔만 둘 뿐 이다. 아주 간혹, 개산대재나 사월초파일 때 공개한다 하니 이 소식 듣는다면 한 걸음에 달려가 볼 일이다.

▲ 한 겨울 갑사는 고즈넉하면서도 담백해 좋다.

월인석보 판목(月印釋譜 板木) 또한 세상에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려지는 보물.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의 합본이라 할 수 있는 ‘월인석보’를 책으로 찍어내려 나무에 판각(보물 제582호)한 것인데 임진왜란 이전에 판각된 것으로는 갑사 판목이 유일하다. 아직 성보전시관을 마련하지 못한 갑사로서는 훼손될 우려가 있기에 선뜻 내보일 수 없다.

갑사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도 배출했다. 갑사서 출가해 서산 휴정의 제자가 된 영규대사!

▲ 신흥암 천진보탑. 머리 부분서 광채가 번득일 때가 있다고 한다.

임진년, 왜구는 청주까지 들어와 우리의 땅을 능멸하고 있었다. 청주가 그들 손에 떨어졌으니 이웃동네 공주는 바람 앞 촛불. 이 때 영규대사는 승려 1000명을 일으켜 청주 전장으로 향했고, 옥천서 의병을 일으킨 조헌이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합세 했다. 영규대사와 조헌의 의병 앞에 왜군은 대패했고 청주는 다시 조선인 손으로 들어왔다. 이러한 역사 사실에 비춰보면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처음으로 일으킨 인물은 영규대사다. 그가 아니었다면 삼신불괘불탱화와 월인석보 판목도 사라질 운명에 처했을 것이라고 표충원은 대변하고 있다.

▲ 자연성릉을 만나면 자연스레 ‘조고각하(照顧脚下)’ 한다. 저 난간 잘 잡고 발밑 살펴야 넘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표충원서 나와 관음전 옆 산길에 들어서니 두 갈래 길이 나 있다. 왼쪽 갑사구곡 쪽으로 들어서면 용문폭포를 지나 금잔디 고개에 닿고, 오른쪽 원효대 계곡으로 틀면 대자암을 지나 연천봉 고개에 닿는다. 대나무 숲 우거진 갑사구곡으로 들어서니 10m 낙수의 위용을 자랑하는 용문폭포가 나그네 등에 흘러내린 땀을 식혀준다. 굳이 이 길을 택한 건 신흥암 천진보탑을 친견하기 위함이다.

인도 마우리아왕조의 제3대 왕 아소카는 쿠시나가라 사리탑서 석가의 진신사리 8곡(斛) 4두(斗)를 발견한다. 그는 사리를 나눠 신비한 힘을 가진 천신에게 맡겨 8만 4천개의 탑에 봉안했다고 전해지는 데 이를 일러 ‘아소카 탑’이라 한다.

▲ 수직으로 뻗어 올라 간 400여개의 계단을 디뎌야만 관음봉에 닿을 수 있다.

지금의 경북 구미 태조산에 도리사를 세운 아도화상은 고구려 땅으로 돌아가는 길에 계룡산에 이르렀다. 산쟁이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계룡산은 ‘지리산서 뻗어 나온 한 갈래의 산줄기가 덕유산서 다시 갈라져 300리를 거슬러 올라 와 공주 동쪽서 반달 모양으로 휘감아 돈 형세’라 한다. 누군가는 ‘반달 모양으로 휘감아 돈 형세’를 놓고 용 한 마리가 승천하기 위해 꿈틀대는 형세라 하는데, 헬기 타고 이 산 돌아 본 사람들은 이 말에 공감한다고 한다.

아도화상도 분명 범상치 않은 계룡산 유심히 보았을 터. 그 때, 한 줄기의 신비로운 빛이 하늘이라도 뚫을 듯 쭉 뻗어 올랐다. 그 빛 좇아 가 확인해 보니 그 서기는 자연석탑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안치됐기에 가능하다 판단한 아도화상은 그 ‘탑 바위’ 길이길이 공경하고자 절을 세웠으니 그 절이 갑사요, 탑 바위가 신흥암 천진보탑이다. 신흥암 천진보탑은 8만4천 ‘아소카 탑’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아쉽게도 천진보탑에 서린 이야기는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을 뿐 이를 뒷받침 하는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천진보탑은 신흥암 대웅전 뒤편 산에 우뚝 서 있었다. 합장한 후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예사롭지 않은 위용이 느껴진다. 아, 그러고 보니 장흥 땅 천등산에도 아소카 탑 우뚝 서 있었다. 천등산 아소카 탑이 단아하다면 계룡산 아소카 탑은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서 이 산을 호령할 듯 한 힘이 배여 있다.

▲ 연천봉 아래 등운암. 10여년 불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전기는 들어오지 못했다.

‘석보상절’에 근거하면 아소카 탑은 중국에 19기가 있고 우리나라에 2기가 있는데 그 하나는 전라도 천관산에 있고, 또 다른 하나는 강원도 금강산에 있다고 했다. 역설하면 계룡산에 아소카 탑은 없었다. 누군가 계룡산 천진보탑 이야기를 지어 낸 것일까? 단정할 수 없다. 석보상절이  역사지리서도 아니고 또한 이 책을 편찬한 사람이 ‘계룡산 아소카 탑’을 본의 아니게 깜빡해 빼 누락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아이러니 한 사실이 있다. 근현대에 이르러서도 계룡산 천진보탑 발광을 목격했다는 사람들이 있다. 신흥암에 가면 그 사진 지금도 볼 수 있다. 허나, 천관산 아소카 탑이 서기를 내뿜었다는 기록도, 보았다는 사람도 예나 지금이나 없다. 어느 보탑이 진짜일까? 두 탑 모두 아소카 탑 일수도 있다. ‘갑사 월인석보 판각’은 이 미스터리를 풀어줄까?

 ▲ 계룡 저수지가 보이는 공주시 전경.


아, 관음봉은 오늘도 쉽게 길을 내 주지 않는다. 수직에 가까운 400여개의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올라야만 관음보살 품에 든 계룡산 줄기를 마음껏 음미할 수 있다. 저 봉우리 올라야 하는 이유 또 있다. 부설거사의 아들 ‘등운’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인도에 유마 거사, 중국에 방 거사가 있다면 한국엔 부설거사가 있는데 등운(登雲)은 그의 아들이다. 오뉘탑 주인공 상원 스님은 자신을 사랑한 여인과 오누이 연 맺고는 비구, 비구니의 길을 걸었다. 반면 다섯 살에 불국사로 출가한 부설(浮雪) 스님은 묘화 여인의 뜻 받아 들여 부부 인연을 맺었다. 계를 파괴했으니 스님은 아니라는 듯 그는 스스로 ‘거사’라 했다. 슬하에 딸 월명과 아들 등운을 두었다.

부설거사는 김해 망해사서, 부인 묘화는 장흥 보림사서, 딸 월명은 변산 월명암서, 아들 등운은 등운사서 정진해 갔다. 부설거사가 적멸에 들자 등운은 변산을 떠나 계룡산 자락에 들어 와 초암 하나 짓고 정진했는데 그 암자 등운암이 저 연천봉 아래 있다. 관음봉 넘어서야만 연천봉에 닿을 수 있으니 ‘관세음보살’ 염송하며 계단을 오른다.

 ▲ 계룡산에 노을이 드니 또 하나의 산이 섰다.
등운암은 연천봉을 병풍 삼은 채 천황봉을 마주 하고 서 있었다. 천황봉 넘어 황해로 떨어져 가는 해가 하루의 마지막 숨결 뿌려 놓으니 등운암은 순식간에 노을에 젖어가며 동화 속 암자로 나툰다. 뒷짐 진 채 서 있는 등운이 보인다. 황혼 빛에 반사된 눈물도 보인다. 지는 해 좇아 연천봉에 올라서는 그 사람 또 묵묵히 서 있다. 해가 토해 낸 붉은 빛에 물든 저 너머 어디쯤 변산 월명암 있지 않나? 구름 올라 탄 그 사람 그 곳으로 날아간다. 누이 만나 법담 나누겠지!

땅과 하늘을 잇는 산 봉우리 연천봉(連天峰)은 등운과 월명의 오누이 인연도 소중하다며 오늘도 이어주고 있었다.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도움말]

 

길라잡이

들머리는 갑사 주차장.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까지 걸리는 시간은 10분. 관음전 옆 산길에 들어서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 갑사구곡 쪽으로 들어서면 용문폭포를 지나 금잔디 고개에 닿고, 오른쪽 원효대 계곡으로 틀면 대자암을 지나 연천봉 고개에 닿는다. 용문폭포를 지나면 곧 천진보탑이 있는 신흥암에 이른다. 여기서 20여분 오르면 금잔디 고개. 동학사, 남매탑으로 향할 경우 삼불봉을 넘어야만 자연성릉 초입에 이른다. 금잔디 고개(벤치) 맞은 편 산기슭 중앙에 난 작은 산길을 따라 20여분 정도 오르면 삼불봉과 자연성릉으로 갈리는 분기점에 닿는다. 자연성릉 1.6km구간을 지나면 곧 바로 연천봉 오르는 400여개의 계단을 만난다. 연천봉 고개서 등운암까지는 10여분 거리고, 등운암서 연천봉까지 역시 10분이면 충분하다. 연천봉 고개로 다시 내려 와 갑사 방향으로 하산하면 대자암과 원효대계곡을 지나 갑사에 이른다. 갑사는 동학사·신원사와 달리 북쪽에 자리하므로 겨울철 하산길이 매우 미끄럽다. 여름철이라면 5시간 정도로 충분하겠지만 겨울 종주시간은 6시간 잡는 게 좋다.

이것만은 꼭!

 
철당간과 지주: 통일신라시대 당간으로는 유일하다. 네 면에 구름무늬를 새긴 기단(基壇) 위로 철당간을 높게 세우고 양 옆에 당간지주를 세워 지탱하게 했다. 철당간은 지름 50cm의 철통 28개를 연결하였던 것이나, 고종 35년(1899) 폭풍우에 벼락을 맞아 4절이 부러졌다고 하며 현재는 24절만 남아있다. 보물 제256호.

 

 

 

 
갑사 표충원: 승병장(僧兵將) 휴정(休靜) 서산대사(西山大師), 유정(惟政) 사명대사(四溟大師), 기허당(騎虛堂) 영규대사(靈圭大師)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보물 제52호.

 

 

 
동종: 조선 초기 종으로 국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며, 갑사에 봉안하기 위하여 선조 17년(1584)에 조성됐다. 일제시대 때 ‘헌납’이라는 명목으로 공출해 갔다가, 광복 후 반출 대기  중이던 것을 찾아 갑사로 옮겨왔다. 민족과 수난을 같이 한 동종(銅鐘)이다.

 

 

 

 

 [1326호 / 2016년 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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