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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표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미래 불교의 역할-상"

기자명 법보신문

타종교에 내포된 진정성 발견해 인류 발전 위한 창의력 키워야

 
미래사회의 인류문명은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며 그 속에서 종교문화는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까요. 우리는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대 속으로 들어서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미래 학자인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주저인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에서 “우리 생활 속에는 지금 새로운 문명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예언했습니다. 인류는 역사상 최대의 사회변혁과 구조개편을 초래할 혁명적인 문명의 전환점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야스퍼스가 말한 ‘축의 시대’는
성현들이 우주적 자비 가르친
기원전 800~200년 시기 지칭

황금률과 참된 자아 각성 통해
인류는 실존적 가치 실현 가능
세계종교들은 축의 시대 소산물
종교별 분리된 인류정신 종합해
다가올 2차 축의 시대 준비해야

20세기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미래문명론은 학자마다 그 개념과 성격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미래사회를 특징짓는 용어도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는데,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paradigm) 변화를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말로 ‘포스트모던시대(post-modern age)’라는 용어가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는 원래 서구문명의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이른바 근대주의(modernism)적 가치관에 대한 비판이론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나 최근에는 서구적 근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근대 이후의 새로운 문명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용어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던 운동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가치 다원주의’ 이념의 부활을 가져왔습니다. 절대 이념에 고정되는 것을 거부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획일적이고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나 열린 정신세계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번 강연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종교문화의 패러다임 변화와 이에 대한 불교의 과제와 비전을 살펴보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미래사회에서 종교 간의 지평융합과 대화를 위한 불교의 과제와 역할에 대해 탐색해 보고자 합니다.

현재,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의 모든 전쟁의 바탕에는 종교 간의 갈등과 대립의 역사적 유산이 있으며, 이데올로기와 민족문제가 복잡하게 교차되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종교 분쟁은 ‘정의의 전쟁론’이나 근본주의적 경전해석에 기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종교 분쟁은 21세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미래사회는 새뮤얼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의 주장대로 ‘문명 간의 충돌’과 종교전쟁으로 인한 불행한 사회로 전락하게 될까요? 아니면 문명 간의 지평융합과 화해로 진정한 평화의 시대가 될까요? 이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인류의 종교문명사를 거시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는 이른바 ‘축의 시대(axial age, Achsenzeit)’라는 종교문명사관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축의 시대’란 B.C.E 800년에서 B.C.E 200년 사이에 조로아스터, 붓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피타고라스, 헤라크레이토스, 호머, 공자·노자·묵자, 열자, 장자, 엘리야·예레미야, 이사야 등 위대한 성인이 나타나서 종족 이기주의에만 빠져 있던 인류에게 우주적 사랑과 보편적인 지혜를 가르친 인류정신사의 혁명적 전환의 시기를 말합니다. 이 시기에 불교, 유교, 도교, 우파니샤드, 자이나교, 그리스 철학, 조로아스터교, 유대의 유일신교 등 인류의 정신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종교와 철학이 발생했습니다. 축의 시기 이전에는 집단적·종족적·신화적·의례적인 의식 형태가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축의 시대에 와서 인류는 비로소 자기 발견과 정신적 각성으로 우주적 자비정신을 일깨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야스퍼스의 축의 시기의 개념을 재해석한 카렌 암스트롱은 축의 시대의 영적 혁명이 발생한 중국, 인도, 그리스, 유대 등 4대 지역은 시기는 다소 달랐지만 대부분 급격한 도시화와 전쟁, 이주, 인구 증가 등 사회경제적 변화와 혼란으로 도덕성이 피폐한 상황이었다고 진단합니다. 그러므로 축의 시대의 현자들은 인류에게 이기심을 버리고 자비와 영성의 계발을 중요한 가르침으로 삼았습니다. 그 이유는 ‘종교의 본질은 곧 자비’였기 때문입니다. 축의 시대 현자들의 공통된 가르침은 이른바 황금률(Golden Rule)로 알려진 “네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慾 勿施於人)”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황금률은 모든 고등종교의 가르침에 나타나는 덕목으로 현대 지구윤리 운동의 핵심 윤리강령으로 채택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황금률의 윤리정신은 이기적 삶을 이타주의적 삶으로 승화하려는 데 그 근본정신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축의 시기’의 현자들이 가르쳐 준 또 다른 교훈은 ‘참된 자아에 대한 각성’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화두였던 “너 자신을 바로 알라”라는 가르침, 우파니샤드의 신적 자아(A-tman)의 자각, 붓다의 무아의 깨달음, 유대 예언자의 윤리적 가르침 등은 지금까지 위대한 세계종교의 기본적인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축의 시대의 성인들의 가르침으로 인류는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실존적 가치를 발견하고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축의 시대 이후 인류는 자신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윤리적인 실천을 위한 도덕적 용기를 실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축의 시대라는 개념의 발견을 통하여 야스퍼스는 인류정신사를 통찰하는 역사의 통일적 구조를 발견하였고, 인류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핵심적 가치를 찾아내었습니다.

야스퍼스는 인류는 선사시대인 프로테우스 시기에서 불과 도구를 사용하면서 축의 시대에 이르렀으며, 이 축의 시대를 거쳐 새로운 인간의 미래가 출현하는 제2의 축의 시대에 이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축의 시대론의 해석가인 카렌 암스트롱은 현대인들은 축의 시대의 윤리를 다시 발견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야스퍼스의 역사관은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통합적으로 조망하는 통찰력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철학에 바탕하여 한스 큉(Hans Kueng)은 ‘거시적 패러다임 전이(Macro-Paradigm-Shift)’라는 개념을 제시하였으며, 에베르트 코우신스(Ewert Cousins)의 ‘제2차 축의 시대(Second Axial Period)’ 이론도 뒤따라 나오게 되었습니다.

인류 종교사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에 의해 혁명적 종교문화의 변화가 이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서양종교사에서는 유대교에서 그리스 문명과 헤브라이즘의 결합, 가톨릭 신학에서 개신교의 종교개혁, 제2차 가톨릭공의회와 에큐메니칼 운동 등의 패러다임 전환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불교의 역사에서도 근본불교에서 부파분열, 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운동, 대승에서 금강승의 성립, 불교의 중국화와 선불교, 유불도 삼교의 합일 운동, 서구의 불교운동 등으로 이어지는 패러다임 대전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처음에는 어렵고 더디게 일어나지만 어느 변곡점을 지나면 급속도로 빨리 진행됩니다.

동양의 종교사상에는 갈등과 대립으로 가득한 상극(相剋)의 ‘선천(先天)시대’에서 조화와 화해로 서로 회통 상생(相生)하는 ‘후천(後天)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문명 사관이 있습니다. 서양에서도 서양력의 ‘물고기자리’에서 황도(黃道)의 제11궁인 ‘물병자리 시대’로의 전이에 따른 새 시대의 도래를 예언하는 이가 늘어났습니다. 이른바 ‘뉴 에이지(new age)’라는 유사종교 운동이 1970년대부터 성행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새로운 종교문명관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에베르트 코우신스의 ‘제2차 축의 시대론’은 야스퍼스의 연장 이론입니다. 그 핵심이 되는 내용은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는 축의 시대 이후 종교별로 분열되었던 인류의 정신이 다시 하나로 종합되는 이른바 ‘대화로의 전환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코우신스의 ‘제2의 축의 시대론’의 특징은 ‘제1차 축의 시대’에서 강조되었던 개인중심적 가치 개념이 범지구적인 가치 의식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인류는 종족과 민족 단위로 공동체를 형성하여 문화를 분화 발전시켰으나, 교통 통신의 발전과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분화되었던 여러 문화들은 다시 하나의 지구촌 문화로 통합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구공동체로의 문화 집합현상은 ‘지구적 의식’을 요구하며 미래의 문화는 이러한 진화의 원리에 따라 전개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삐에르 샤르딘(Pierre Teilhard de Chardin)에 의하면 지구적 의식에도 민족문화의 다양성은 그대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창의적 연합에 의해 복합적 의식과 결합의 다양화는 더 다양한 창조적 결합을 유발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는 자기동일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타자를 자기 자신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코우신스의 이러한 종교문화에 대한 새 비전은 진화론 원리에서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우주적 원리를 찾고자 합니다. 인류는 제1차 축의 시기에서 배운 이성적 사고와 자비정신을 견지하면서도 축 이전의 시기의 우주적인 의식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인류는 본래 유기적인 단일한 종족으로 인식하는 범지구적 통일성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코우신스의 비전은 종교인이 서로 대화를 통하여 세계종교의 공동기반을 다시 찾아내야 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코우신스의 제안은 유기적이며 생태적인 지구적 종교다원주의의 제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널드 스위들러(Leonard Swidler)는 에베르트 코우신스와 삐에르 샤르딘의 지구화 의식 이론에 동조하면서 ‘독백의 시대에서 지구적 대화의 시대에로의 전환’이라는 대화철학을 제시하습니다. 미래의 인류는 의식의 혁명적 반전을 통하여, 대화를 통하여 새로운 진리 인식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종교들은 제1 축의 시기에 생긴 분리세력의 소산물입니다. 비록 기원전 1000년 동안 공통된 의식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 변화는 이미 상이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여러 지역에서도 일어났습니다. 각 종교는 본래적인 다양화에 의해 형성되었고 서로 다른 방침에 따라 발전해왔습니다. 이것은 수승한 지혜, 정신적 힘과 이 유산을 표현하고, 보존하고 전달하는 종교적·문화적 형식의 풍부함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분리의 힘은 통합으로 전이했기 때문에 종교들은 서로 중심적 결합의 중앙에서 만나야 하고 각 종교는 다른 종교가 내포하는 진정함을 발견하면서 종교 의식은 보다 복합한 형태를 지향하는 창의적 힘을 발휘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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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2015년 12월14일 동국대 다향관 세미나실에서 개최된 ‘수월 김용표 교수 정년퇴임 회향강연회’를 요약한 것입니다.


김용표 교수는

김용표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는 동국대 불교대학 불교학과와 동 대학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교 종교학과에서 문학 석사 및 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종교교육학회 회장, 한국불교학회 회장,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 공동위원장, 문화체육관광부 종교차별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아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1326호 / 2016년 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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