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인은 왜 역사관이 희박하나
인도인은 왜 역사관이 희박하나
  • 이재형 기자
  • 승인 2016.01.11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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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들 시간관념 희박
깨달음은 내면적인 사건
수행이 불보살 친견 방법

요 며칠 추위가 매섭다. 이런 날에 나들이는 어렵지만 인도로 성지 순례를 떠나기에는 적격이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7~8월의 혹독한 무더위와 우기로 인한 눅눅함을 빗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를 다니다보면 생소한 상황과 자주 마주한다. 우주선을 쏘아올릴 정도로 첨단과학이 발달했으면서도 수천 년 전의 옛 문화가 그대로 재현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적지에서 만나는 인도의 시간관도 이방인을 곤혹스럽게 하는 것 중 하나다.

문명이 발달한 국가 중에서 인도만큼 시간이나 역사 관념이 희박한 나라도 드물다. 가까운 중국만 해도 과거에 대한 기록과 역사관이 투철하다. 예를 들어 개황 20년(600년) 수나라 서울인 장안에 지진과 폭설이 일어났으며, 그해 9월24일에는 지광(智曠)이라는 스님이 75세에 입적했는데 방안에 향기가 가득했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이나 고승의 전기를 다룬 기록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말라야를 사이에 두고 갈라진 인도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불교사의 흐름을 바꿨던 위대한 사상가인 용수나 세친 보살의 탄생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심지어 1956년 네팔에서 개최된 제4차 세계불교도대회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입멸 연대를 2500년으로 통일하기 전까지는 나라에 따라 수백 년의 격차가 있었다. 중국에서는 수나라 초기에 사망산(四望山)이라는 외진 곳에 살았던 스님의 입적 날짜까지 알 수 있지만 인도에서는 불교의 개조인 부처님의 생몰연대까지 모호한 것이다.

이는 불교경전에서도 마찬가지다. 비록 장소는 언급되지만 시기는 그저 ‘한때(一時)’라고 언급된다. 이러다보니 인도 역사를 연구할 때 결정적 자료로 활용되는 것이 인도 자체 문헌보다 법현, 현장, 의정, 혜초 스님 등 동아시아 구법승들이 남긴 인도 순례기다.

수많은 학파가 활동하고, 논리학, 수학, 문학 등 고도의 학문이 발달한 인도에서 역사는 왜 외면 받았던 걸까? 이는 동아시아인들과 인도인들이 응시하는 곳이 다르기 때문일 수 있다. 역사는 집단화된 사회 속에서 효용성이 크다. 반면 신화는 내면이나 명상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훨씬 효율적이다. “궁극적인 진리를 가장 근접해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면 그것은 신화의 언어다”라는 어느 인도인 철학자의 말처럼 깨달음도 신화로 표현할 때 더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

인도는 신화의 나라다. 부처님은 인간의 길을 걷고, 단지 길을 일러주는 분이라 스스로 천명했지만 후대인들은 부처님을 신화적 인물로 바꿔갔다. 초기경전이나 대승경전을 막론하고 범천을 비롯한 수많은 신들이 귀의하고 숱한 기이한 현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도인들이 그러했듯 후대 불교인들도 그것이 부처님과 만나는 길이고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 이재형 국장
명상이나 기도로 내면의 깊은 곳에 이르렀을 때 부처님은 더 이상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내면의 세계에서 나와 마주하는 실존인물인 것이다. 훗날 대승불교의 개척자들도 부처님을 만나 ‘나는 이렇게 들었다(如是我聞)’로 시작되는 경전을 찬술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독특한 인도의 시간관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불경에 나타나는 ‘한때(一時)’는 역사적 의미가 아니다. 인연이 맞닿는 순간 누구든 직면할 수 있는 항구적으로 존재하는 시간인 것이다.

불자라면 올 한해 직접 성지를 찾아 깨달음의 길을 걸었던 옛 선지식들의 숨결을 느껴보는 일도 좋다. 동시에 우리 내면에 있는 부처님과 보살님들과 친견하기 위한 정진도 게을리 해선 안 될 일이다.

mitra@beopbo.com

[1327호 / 2016년 1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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