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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표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미래 불교의 역할-중"

불교는 서양의 이원적 문명론 한계 극복할 선구적 사상

▲ 김용표 교수는 “경계를 넘어서는 테두리 없이 열린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점에서 포스트모던 사상은 불교 사상과 유사한 사유구조를 지니고 있다”며 “불교는 미래사회에 인간과 자연의 조화, 일원주의와 다원주의의 조화, 직관과 이성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던 사상의 한계점도 극복해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구적 의식은 여러 문화와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해서 더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현대는 분리에서 통합에로의 전이라고 하는 종교사적 변화의 장입니다. 그러나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 간의 충돌’ 이론은 새로운 시대가 이질적인 종교를 그 핵으로 삼는 종교문명 간의 충돌과 경쟁으로만 본다는 점에서 코우신스의 제2의 축의 시대론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헌팅턴은 서구의 기독교 문명에 대한 도전의식을 지니고 있는 이슬람 문명권과 유교적 중화문명권간의 대충돌 가능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원주의 강조
불교와 유사한 사유구조 나타내

포스트모더니즘 반이성과 달리
불교는 이성을 통해 이성 초월

직관·이성 조화 추구하는 불교
포스트모던 사상 한계 극복 대안

문명 중 유일하게 서구는 다른 모든 문명에게 대대적인, 때로는 파괴적인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따라서 서구의 힘과 문화, 다른 문명들의 힘과 문화의 관계는 문명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인 특성으로 나타납니다. 다른 문명들의 상대적 힘이 증가하면서 서구 문화의 매력은 반감되며 비서구인들은 점점 자신들의 고유문화에 애착과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서구와 비서구의 관계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문제는 서구 문화의 보편성을 관철하려는 서구인들의 제국주의적 태도와 현실적 능력 사이에서 생겨나는 부조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역사의 종말과 마지막 인간’에서 기독교의 종말론이 세속의 역사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실현되었으므로, 미래의 역사는 상극과 갈등보다는 완성의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 진행 중인 문화와 경제의 지구화(globalization)의 물결도 이러한 큰 인류사의 맥락에서 다시 접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는 단순한 정치·경제논리와 배타적 근본주의자들의 경쟁본능적 이원론보다는 야스퍼스나 코우신스와 같은 거시적인 인류문명사 이론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사회는 문명 간의 만남을 통한 화해와 회통의 시대가 되어야 합니다.

에베르트 코우신스의 ‘제2의 축의 시대’ 이론은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세계관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운동도 넓게는 제2의 축의 시대 이념을 담은 문화운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래 포스트모더니즘은 1960년대 유럽의 학생혁명과 전위 예술운동과 함께 전개되었습니다. 포스트모던 사조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서구문명에 대한 비판주의, 또는 근대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새로운 어떤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반문화운동입니다. 그 핵심적인 동기는 근원적 자유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욕구와 ‘경계를 넘어서고 간격을 메우자(cross the border, close the gap)’는 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선구자는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였습니다. 그는 헤겔의 절대정신 철학에 반대하여 의지의 형이상학과 실존철학적 비합리주의를 주창하였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실존주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해체주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니체, 프로이트, 키에르케고르, 베르그송, 비트겐슈타인, 데리다 등 이른바 반형이상학적 계열의 사상가들은 모두 그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일원주의에서 다원주의, 보편주의로부터 특수성 존중, 동일성보다 차이를 강조합니다. 철학적으로는 서구정신사의 주류를 이루어 오던 실체론적 신학과 형이상학 전통의 허구성과 폐쇄성을 비판하면서 근대주의(moder nism)의 중심 사고 체계인 이성주의를 해체하고자 합니다. 이성의 절대화가 인간의 자유정신을 가로막는다는 인식에서 모든 고정된 이념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연스럽게 다양성을 존중하고 개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다원주의적 성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절대 이념의 해체는 새로운 종교적 영성운동을 촉발시켜, 뉴 에이지 운동을 비롯한 새로운 사회, 문화, 예술운동으로 전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후기 현대의 시대정신과 함께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문화 패러다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포스트모던 운동은 기독교 중심의 서구문명에 대한 비판과 재편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서구의 새 불교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서구의 형이상학과 종교문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이념이었으므로, 이에 대한 기독교의 반응은 당연히 비판적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초월적 절대자나 고정된 실체를 해체하고자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새로운 형태의 무신론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일부 개혁적인 신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신학을 접목한 포스트모던 신학이나 종교신학(theology of religions)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불교는 그 성격상 포스트모더니즘 사조에 그리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성향이 본래 불교가 주장해 온 기본 입장과 유사한 사유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념적으로는 불교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적인 사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불교와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방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교는 본래 실체론적 세계관을 비판하면서 생긴 종교이므로, 그 시원이 현대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 발흥 배경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서구 문명사의 흐름 속에서 보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불교도들이 이해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에도 현격한 맥락적 차이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적 배경이 되고 있는 해체주의(deconstructionism)는 어떤 견해를 만들고 고정시키려는 학문적 의도 자체를 본질적으로 문제시합니다. 기존의 이성 중심주의는 새로운 이론을 체계화시키려는 학문 방법으로서 ‘모순의 보편화’를 추구합니다. 그 결과 하나의 입장이나 견해를 만들게 되고, 이 관점에서 모든 사물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철학 체계는 이러한 견해(dr·s·t·i)를 세우려고 하는데 대승불교의 공(空)사상은 견해를 갖는 것이 곧 문제의 씨앗이 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반야공의 가르침은 새로운 철학이나 견해를 구축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철학 체계를 해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기존의 세계관에 대한 인식 방법의 대전환이 이뤄졌습니다. ‘실체론적인 사유방식(substantial way of thinking)’에서 ‘관계론적인 사유방식(relational way of thinking)’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서양 철학사에서는 플라톤에서부터 내려오는 모든 실체론적인 사유 구조를 형이상학이라고 한다면, 니체로부터 시작된 해체주의 전통은 그런 실체론적인 사유를 파괴하려는 해체주의로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유구조도 불교의 연기론적인 사유구조와 같은 관계론적 사유의 한 패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구의 이러한 새로운 관계적 사유방식은 불교적 사유방식과 상당히 통하는 점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불교 입장에서 보면, 2500년 전 붓다가 설한 연기사상에 포스트모던 사상이 접근해오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서구 사상이나 종교는 기존의 전통을 해체하며 불교적 세계관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고도 이해합니다. 결과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서구사상이 불교에 접근하는 데 용이하도록 도와주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는 모든 포스트모던적 사고와 조류를 환영하며 이를 오히려 불교의 세계화를 위한 디딤돌로 삼을 수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강조하는 이성 중심주의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히려 초기 불교의 붓다의 설법 방법은 매우 합리적인 이성주의에 기초하고 있었습니다. 붓다는 경험에 의해 확증되지 않은 사실을 맹목적으로 믿으려는 태도를 비판했습니다. ‘전통이나 권위 때문에 어떤 교설에 이끌리지 말고, 다만 스스로 유익하고 온전하며 선한 것일 때 받아들이고 그것을 따르도록 하라’는 붓다의 조언은 이성적 비판 정신으로 독단론의 도그마에 빠질 오류를 방지해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반이성, 반철학, 반과학주의를 내세우는 반면, 불교는 이성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이성을 초월한 무분별심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불교는 ‘불이적 이원론(不二的 二元論; non-dualistic dualism)’이라는 논리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생사와 열반, 성과 속, 중생과 부처는 본래 둘이 아닌 진공(眞空)으로 체득하면서도 구체적인 현실 세계에서는 이원적인 묘용(妙用)을 나투는 것입니다. 불교의 공사상은 하나와 여럿, 동일함과 차이점을 동시에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지 둘이 아님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서 이성을 초월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특히 반야사상은 경전언어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언어와 경전을 통하지 않으면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면서 언어의 효용성을 말합니다. 그렇기에 무조건 이성을 부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의 제 문제는 이성과 지성의 본질적인 결함에 의해서만 파생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이성의 판단에서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판단을 부정하는 바른 이성의 힘은 항상 필요한 것입니다. ‘이성에 의해 이성을 비판한다’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고는 불교의 언어관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불교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 논리를 다 수용하지 않습니다. 특히 불교가 이성의 효용성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불교는 근본적인 차이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조와 새로운 종교 문화는 다원성과 열린 정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진리의 절대화를 거부합니다. 그러므로 기존 종교의 권위와 이데올로기를 부정하는 전통 해체주의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교운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불교는 이른바 탈현대주의로 대변되고 있는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 이론과 이에 상응하여 일어나고 있는 서양의 낭만주의, 생명주의(vita lism), 생태주의, 비트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 뉴에이지 운동, 녹색운동 등과 같이 생명과 자연주의 문명을 선호하는 그룹과 기본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계를 넘어서는 테두리 없이 열린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점에서, 포스트모던 사상은 불교 사상과 유사한 사유구조를 지니고 있다 할 것입니다. 불교 사상은 서양의 로고스(logos) 중심주의의 이원적 문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불교는 미래사회에 인간과 자연의 조화, 일원주의와 다원주의의 조화, 직관과 이성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던 사상의 한계점도 극복해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정리=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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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2015년 12월14일 동국대 다향관 세미나실에서 개최된 ‘수월 김용표 교수 정년퇴임 회향강연회’를 요약한 것입니다.

[1327호 / 2016년 1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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