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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사라진 국보119호, 12시간의 비밀

 
‘문화재관리국 국장님께 직접 알려라. 오늘 밤 12시까지 돌려주겠다고. 이는 세계 신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다. 얕은 수작을 부리다 죽은 자식 XX 만지는 격 되지 말고. 이따 11시경에 국장께 알리겠다. 지문감정은 의뢰할 필요 없다.’

덕수궁박물관서 훔친 뒤
돌려주겠다는 쪽지 남겨
한강철교 모래밭에 묻어놔
지금까지 범인 찾지 못해

1967년 10월24일 오전 10시30분, 덕수궁미술관. 순찰을 돌던 경비원이 제3전시실 문 밖에서 내부를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무언가를 목격한 경비원은 온몸이 순식간에 땀으로 젖어버릴 만큼 오싹함을 느꼈다. 진열장 가운데 하나가 뒤로 밀려나 있고, 내부는 텅 비어있었던 것이다. 진열장 앞으로 한달음에 달려갔지만 전시물 대신 푸른색 볼펜으로 휘갈겨 쓴 쪽지 한 장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국보 119호이자 가장 오래된 기년명(紀年銘, 제작 연대를 밝힌 명문) 금동불인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경비원은 즉시 미술관과 대한문을 폐쇄하도록 조치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때가 오전 10시43분. 그 시각 미술관에는 120여명이 관람객이 있었다. 게다가 도난이 발생한 제3전시실에만 12~13명이 관람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어떻게, 무슨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서성이던 미술관 한복판에서 이처럼 대담한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경찰은 국보의 해외 반출을 막고자 국제공항과 국제항만을 봉쇄하고 철저한 검색을 실시했다. 그리고 11시경 국장에게 알리겠다는 범인의 말대로 연락을 기다렸다. 오전 11시30분, 한 통의 전화가 문화재관리국(현재 문화재청) 하모 국장 집에 걸려왔다. 차분하고 지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목소리, 나이는 기껏해야 30대에 불과한 남성이었다. “내가 범인이오. 미안하오. 약속대로 돌려주겠소.”

범인은 오후 3시에 또다시 전화를 걸어 유네스코회관 태궁다방에 쪽지를 남겼다는 사실을 알렸다. 쪽지에는 ‘생활이 곤란해 일시적으로 했다. 돌려보내겠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범인은 오후 6시에도 전화를 걸었다. 총 세 차례의 전화에서 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분명했다. 돌려주겠다는 것. 그때마다 하 국장은 “당신이 가져간 것은 국보다. 팔 수 있는 게 아니다. 더욱이 그것은 금도 아니다”라고 타일렀다. 과연 범인은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국보 119호는 사진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도난문화재로 기록될 것인가.

밤 11시5분, 하 국장 집의 전화벨이 울렸다. 부인이 받아 남편에게 수화기를 넘겼다. 범인은 “순금인 줄 알았는데 아니고, 세상도 떠들썩하니 양심의 가책을 느껴 견디기 힘들다. 이제는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줄 테니 잘 듣기 바란다. 한강철교 제3교각 16번과 17번 받침대 사이 모래밭.”

하 국장은 운전사를 깨워 부인과 함께 범인이 지시한 장소로 향했다. 세 사람은 한강철교 제3교각 밑 모래밭을 손으로 뒤지기 시작했다. 20분이 흘렀을 때, 하 국장은 모래 속 20㎝ 부근에서 비닐봉지에 쌓인 채 번쩍이는 작은 물체를 발견했다. 비닐봉지에서 꺼내 확인해보니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이 확실했다. 도난당한 국보 119호를 12시간 만에 되찾은 것이다.

이 드라마틱한 사건의 범인은 아직까지도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가 남기고 싶었다는 ‘세계 신기록’이란 무엇인지, 관람객들 사이에서 과연 어떻게 불상을 훔쳤는지, 그리고 그것을 굳이 돌려준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온갖 추측만이 나돌고 있을 뿐이다. 그날의 기억을 간직한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미술관 조각실에 전시돼 있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28호 / 2016년 1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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