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불교 이야기’는 그만그만한 불화해설서가 아니다. 불화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문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지닌 책이다. 불화해설서는 시중에도 적지 않다. 그러나 예술성에 초점을 맞추거나, 현학적인 학문적 이해에 몰두하면서 불화는 소수 전문가들만의 영역이 돼버린 측면이 있다. 이 책은 이런 불화를 둘러싼 불편한 감정을 시원하게 해소하고 있다. 불화가 지닌 예술성은 물론 그 속에 담긴 가르침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해설서와는 눈높이를 달리하고 있다.
책은 2000년 출간됐다. 최근 새롭게 발간된 책은 기존의 책을 다시 보완하고 수정한 개정판이다. 이 책은 15년이 다 된 지금까지 불교와 불교미술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에게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십여 년 간 간송미술관 수석연구원을 지낸 뒤 1991년부터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오랜 세월 불교 미술사를 연구한 저자의 신심과 학문적 깊이가 엿보이는 책이다.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화를 중심으로 불교의 세계와 가르침을 섬세하게 풀어낸 점이 장수 비결이다.
책은 불화를 통한 불교입문이라는 일반인들의 기호와 교리 이해를 통한 심도 있는 불화공부를 원하는 이들의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킨 보기 드문 역작이다. 그러나 저자의 입장에서 15년의 세월은 그냥 흐르지 않았다. 연륜이 깊어갈수록 축적되는 학문적 성과를 반영하고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기술을 첨가해 더욱 풍성하고 뛰어난 화질의 불화를 소개하고자 하는 욕구가 개정판 탄생의 인연이 됐다.
책 속에는 영산회상도, 팔상도, 화엄탱, 극락회상도, 나한도 등 전각에 걸린 거의 대부분의 불화가 등장한다. 저자는 불화를 통해 부처님의 탄생과 출가, 보리수 아래에서의 깨달음, 부처님의 제자,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와 지옥의 세계, 가람을 지키는 각종 신들, 불화의 배경이 된 각 경전에 대한 설명을 조근하게 풀어놓는다. 불화를 통해 불교의 근본 가르침을 느끼게 하려는 저자의 배려가 놀랍다.
불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에 대해 자세한 소개도 일품이지만 조선시대 대표 화가였던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의 불화까지 살뜰히 찾아 내 당시의 신앙과 수행의 모습을 드러낸 것 또한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특히 불화 속에 함께 있지만 주목받지 못한 인물들을 불러내는 솜씨는 대단하다. 부처님께서 발길 닿는 곳마다 설법을 했지만 가장 즐겨 설법한 곳이 영취산이다. 그 영취산에서의 설법 장면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이 영산회상도다. 부처님의 설법이 직접 이뤄지는 장면이기 때문에 장엄과 감동이 충만하다.
그래서 불화에는 부처님과 십대 제자, 무수하게 많은 보살과 신들, 수많은 청중이 등장한다. 그러나 화려한 보관을 쓴 보살과 신들, 제왕들 대신 파르라니 깎은 뒷머리의 비장한 스님과 대중들 속 보일 듯 말 듯 다소곳한 공양인들을 발견하는 안목을 선사하는 것도 저자가 독자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불화는 사찰에 홀로 있지 않다. 이 책과 더불어 지금 우리 곁에 있다. 2만8000원.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328호 / 2016년 1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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