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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낮은 지식인들에 풍자이자[br]믿음을 상실한 난세 모범답안

기자명 이병두

‘난세에 답하다-사마천의 인간 탐구’ / 김영수 지음 / 알마

▲ ‘난세에 답하다-사마천의 인간 탐구’
사마천(司馬遷)의 ‘사기’는 52만6500자에 이르는 방대한 책으로, 고대에서부터 역사가 자신의 시대에까지 기술한 세계 최초의 통사일 것이다. ‘난세에 답하다’는 수십 년째 사마천과 ‘사기’에 푹 빠져서 연구하고, 강의하고, 그 현장을 찾아다니는 데에 모든 것을 바쳐온 저자가 ‘김영수의 사기와 21세기’라는 제목으로 실시한 방송 특강을 정리한 내용이다.

저자에 따르면 “사마천은 보통 사람은 자기보다 열배의 부자에 대해서는 욕을 하고, 백배가 되면 무서워하고, 천배가 되면 그 사람 일을 해주고, 만배가 되면 그 사람의 노예가 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사마천은 그들과 달랐다. 그는 황제의 눈치도 잘 보고 분위기도 잘 맞추는 아주 약삭빠른 사람으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던 공손홍에 대해서 ‘발몽진락(發蒙振洛)’, “몸에 앉은 먼지를 털 듯 낙엽을 털 듯 떨어버릴 만한 아주 보잘것없고 천박한 존재”라고 비웃었던 것이다.

“‘사기’에는 민심과 관련된 격언이나 명언이 적지 않다. 정치가나 사회 지도층이 민심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백성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간파하지 못한 채 정쟁과 사리사욕 추구에만 빠져있을 때 민심은 폭발한다.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삶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들의 행적을 남긴 사마천은 민심의 동향에 크게 주목했고 ‘사기’ 곳곳에 민심과 관계된 유명한 고사 성어를 많이 배치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고사 성어가 ‘방민지구, 심어방수(防民之口, 甚於防水)’다. 백성의 입을 막기란 물을 막기보다 힘들다는 말이다. 한 번 민심을 잃으면 홍수보다도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뜻한다.” 지도층을 자처하는 이들에게, 사마천의 입을 빌어 저자가 보내는 경고이다.

저자에 따르면, “사마천은 세상에 아부하는 지식인을 가장 증오했다. 배운 사람들이 정도를 걷지 않고 배움에 자부심을 갖지 않고 권력자에게 빌붙어 아부하거나 권력을 추구하거나 명예를 탐내는 것에 대해 가차 없이 비판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빗대어 ‘곡학아세(曲學阿世)’ ‘과렴선치(寡廉鮮恥)’ ‘구합취용(苟合取容)’이라고 풍자하기도 하였다.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저자도 사악한 지식인들에 대한 질타를 잊지 않는다. “지식인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가장 전형적인 수법이 글을 교묘하게 꾸며 무고한 사람을 죄에 빠뜨리는 일이다. 가장 흔한 예가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다. 교묘하게 법을 갖다 붙여 무고한 이를 큰 죄인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 이는 오늘날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것을 고사성어로 ‘무문왕법(舞文枉法)’이라고 한다. (…) 고의로 문자를 농락하고 법령을 교묘하게 이용해 사사로운 이익을 꾀하는 질 낮은 배운 자들에 대한 풍자이자 비난이다.” 현재도 국무총리를 비롯하여 판검사 출신들이 국정의 주요 자리를 맡아서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이들이 ‘무문왕법’하지 않는다고 볼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

저자는 “옳은 길이기 때문에 과감하게 실시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반대하는 사람들의 반발 심리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서두르다 충돌을 일으키곤 하는 것”이 “개혁을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고, 따라서 “개혁을 추진하며 화해와 설득을 아울러 돌아봤던 (전국시대 조(趙)나라) 무령왕의 개혁 마인드는 오늘날에도 충분히 본받을 만한 예”라고 말한다. 구체적인 정책 수립과 실천보다도 그의 개혁 마인드를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우리가 지금 다른 무엇보다도 “꿈과 희망과 이상의 기반인 믿음을 상실한” 난세를 살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이 난세에 ‘사기’가 “정답은 아니라도 모범 답안은 충분히 제시하리라 확신”한다. “가장 못난 정치가는 백성과 다투는 자다.” 저자는 에필로그 마지막 문장을 ‘화식열전’의 이 대목으로 마무리한다. 그 의미가 깊다.

전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1328호 / 2016년 1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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