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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골동품상서 하루 만에 돌아온 국보

 
1974년 10월9일 오전 8시. 전매청 신탄진 연초제조창 직원들이 순천 송광사 종무소를 찾았다. 한글날 휴일을 맞아 사찰 구경을 하고 성보박물관도 관람할 요량이었다. 재무스님에게 열쇠를 받은 총무스님이 전매청 직원들을 안내해 성보박물관에 이르렀을 때였다. 문 앞에 선 일행은 순간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굳게 잠겨 있어야 할 바깥문이 활짝 열려 있고, 더구나 속문에 걸려 있던 주먹 크기만 한 자물쇠는 뜯긴 채 한쪽에 걸려있었던 것이다. 뭔가를 직감한 스님이 성보박물관 가장 깊숙한 곳으로 뛰어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금고 앞에 당도한 스님은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국보 제42호 목조삼존불감〈사진〉, 보물 제176호 금동요령, 지방문화재 제28호 고봉국사주자원불이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송광사서 쫓겨난 직원 A씨
성보박물관에서 불감 훔쳐
상점에 팔려다 범행 들통
38일 도피행각 끝에 붙잡혀

당시 송광사는 매일 오후 7시부터 새벽 5시까지 순번을 정해 30분 간격으로 성보박물관을 순찰하게 했다. 그렇다면 범인은 이러한 감시를 뚫을 정도로 신출귀몰했던 것일까. 혹시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의 소행은 아니었을까.

같은 날 오후 8시, 인천 남구 숭의동의 한 골동품상에 수상쩍은 사람이 들어왔다. 작은 키에 갸름한 얼굴, 전라도·경상도 사투리를 섞어 쓰는 30대 남자였다. 그는 다짜고짜 검정색 비닐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뒤 내용물을 펼쳐 보이며 100만원을 요구했다. 고봉국사주자원불이었다. 골동품상 주인의 반응이 좋지 않자 이번에는 작은 불감을 꺼냈다. 여닫이문을 열어본 골동품상 주인의 눈이 번쩍였다. 목조삼존불감이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주인이 출처를 묻자 “돈이 궁한 불자가 팔려고 해서 내가 대신 왔다”고 얼버무렸다. 의심이 든 주인은 휴일이어서 돈을 줄 수 없으니 내일 오면 100만원을 주겠다며 선금으로 5000원을 건넸다.

그는 “이 두 개 말고도 물건이 하나 더 있다”며 “금이 70%고 동이 30%다. 금을 빼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물었다. 보물 제176호 금동요령은 녹여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묘한 말을 남기고 골동품상을 떠났다. “100만원 가운데 10만원은 이 물건들을 준 스님에게 전달해야 한다.”

주인은 목조삼존불감과 고봉국사주자원불을 보관하고 있다 다음날인 10월10일 오전 7시30분 문화재관리국에 신고했다. 오전 9시 문화재관리국 국장이 인천으로 달려와 도난당한 국보임을 확인하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겼다. 경찰은 골동품상을 장물 처분 장소로 삼은 점으로 보아 전문적인 문화재 절도범의 소행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송광사 관계자들로 수사력을 집중했다. 그 결과 송광사에서 관광객 안내를 담당했던 A씨와 스님들과의 마찰로 송광사에서 쫓겨난 B스님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전국에 수배령을 내렸다. A씨 역시 송광사박물관과 해남 대흥사, 장성 백양사 등지에서 문화재를 훔친 혐의로 송광사에서 쫓겨난 후였다.

A씨는 광부로 위장해 강원도 탄광을 떠돌며 도피 행각을 이어갔다.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지기 시작하자 전남 진도군 지산면으로 도망쳤다가 면사무소 직원의 신고로 덜미를 잡혔다. 범행을 저지른 지 38일 만인 11월15일 오후 3시였다. 경찰은 그에게 금동요령의 행방을 추궁했다. 자포자기한 그는 강원도 삼척군 장성읍 문곡리 야산 인근 바위틈에 감췄다고 털어놨다. 국보와 보물, 지방문화재가 일시에 도난당한 희대의 사건은 그렇게 A씨의 자백으로 마무리됐다.

한편 조계종은 당시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문화재 보호 대책을 강구했다. 문화재 도난사고 발생 시 관계자를 징계하는 규정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 이를 보완하기로 했으며 문화재보호대책위원회 구성도 결정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교문화재 도난 사건은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29호 / 2016년 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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