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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미래 불교는 다원주의에 입각하여

기자명 김정빈

종교, 근본주의·다원주의 입장 있어

종교에는 근본주의 종교와 다원주의 종교가 있다. 근본주의는 내재적인 면에 전적으로 몰입하여 외재적인 면을 배격하는 종교이고, 다원주의는 내재적인 면의 중심부를 지키는 것을 전제로 외재적인 면을 수용하는 종교이다.

남방불교, 근본주의를 견지
대승불교, 다원주의서 출발
외적 변화에 적극 대응해온
제2 대승불교 운동 일어나야

먼저 기독교를 살펴보자. 기독교의 양대 세력은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이며, 가톨릭은 다원주의 경향이 약간 있고(많지는 않음), 개신교는 근본주의 경향이 강하다(일부 다원주의 경향도 약간 있음).

개신교 역사를 연 루터와 칼뱅은 “오직 성경만으로”를 대원칙으로 삼았다. 그 결과 이신칭의(以信稱義), 즉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입장이 정립되었고, 그 입장에서 개신교는 성경에 없는 연옥과 림보(연옥은 죽은 뒤에 선하지 않는 신자의 영혼을 씻어내는 곳이고, 림보는 선했지만 이교도였던 사람들을 수용하는, 행복도 고통도 없는 특별한 지옥)를 만들어낸 데다가 믿음만큼이나 의례(미사)를 중시하는 변질된 종교라고 로마 가톨릭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변질이니 무어니 하는 것은 내재적인 입장에서 하는 말일 뿐 외재적인 입장에서 볼 때는 다르다. 밖에서 보면 개신교는 세속과 갈등하는 고집스런 종교로, 로마 가톨릭은 세속과 조화를 이루는 유연한 종교로 비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불교의 경우, 남방불교(테라와다)는 근본주의 입장에 서 있고(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방불교는 세속과 갈등하지 않는데, 그것은 불교가 인간 중심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대승불교는 다원주의 입장에서 출발했다. 다만 같은 다원주의라고 해도 기독교의 다원주의에 비해 대승불교의 다원주의는 보다 적극적이었다. 전자는 경전 자체에는 손대지 않았는데, 후자는 경전을 창작했던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종교인 이슬람교는 기독교의 개신교보다도 더 철저한 근본주의 입장에 서 있다. 문제는 그것도 모자라 더욱더 근본주의 방향으로 나아간 극단적인 종파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테러를 자행하는 등 수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근본주의와 다원주의를 정치에 대입할 경우 근본주의는 보수(①지금까지의 가치를 지킴, ②변화를 수용함)가 되고, 다원주의는 진보(변화에 중점을 둠)가 된다. 정치에서 보수와 진보 가운데 어느 편이 옳은 것은 아니다. 둘 다 옳은 면이 있다는, 가치에는 양면성이 있고, 따라서 사회는 두 면을 조화, 또는 왕래하면 발전·성장해간다는 의미이다.

 여기까지 논의한 다음 미래 불교 문제로 돌아가자. 먼저, 미래 불교가 다원주의 입장에서, 즉 대승불교의 연장선상에서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 불교를 설계함에 있어서 ①불교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근본 요소가 무엇인지, ②대승불교가 어떻게 발흥·발전하였는지, ③그렇게 발전해온 대승불교(한국불교)가 오늘날 왜 힘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①은 불교의 기본을 충실히 지키기 위해서이고, ②는 사회 변화를 잘 수용하기 위해서이며, ③은 미래 불교를 완벽하게 설계하기 위해서이다.

①이 연기중도법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를 전제로 ②를 검토해보면 대승불교는 외적으로는 힌두교라는 강력한 경쟁자에 대항하기 위해서, 내적으로는 전 시대에 비해 신자가 늘었고, 그 때문에 지식인(높은 계급인) 중심이던 불교 공동체가 감성적인 사람들(낮은 계급인) 중심으로 바뀐 현상을 반영한 결과로 탄생하였다.


그리고 지금, 대승불교(한국불교)는 신자의 수가 나날이 줄고, 신심 또한 약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는 한국불교가 보수 쪽으로 회귀하거나(테라와다 불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진보 쪽으로 나아가거나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상황에서 필자는 근본주의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다원주의의 입장, 즉 불멸 후 500년 경에 일어난 대승불교 정신을 오늘에 이어받은 제2의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나야만 한다는 입장에서 논의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김정빈 밝은불교신행원장 jeongbin22@hanmail.net


[1329호 / 2016년 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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