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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

기자명 김형중

연탄재처럼 뜨겁게 살라는 선사의 취모검 닮은 일갈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불과 세 행의 짧은 시이다. 폐부를 찌르는 선사의 취모검 같은 일갈(一喝), 이것이 시인의 언어이다. 시는 언어의 결정체이다. 언어를 나열하여 길게 설명하면 시가 아니라 산문이다. 고수는 한 칼에 끝낸다. 두 번 세 번 칼을 휘두르면 상대방의 칼에 맞아 죽는다. 시의 언어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선사의 언어도 그렇다.

모든 생명체 인생은 일회적
연탄처럼 살아야 잘 산 인생
보편적 소재로 큰 깨침 전달

원호문(元好問)은 “시는 선객에게 비단꽃을 덮어주었고, 선은 시인에게 좋은 칼을 다듬어 주었다.”라고 시선일여(詩禪一如)를 주장하였다. 엄우(嚴羽)는 ‘창랑시화’에서 “시 배우기를 참선을 배우는 것과 같이 하라”고 하였다.

좋은 생각을 해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시인이 아프면 시를 읽는 독자의 마음이 아프고, 시인이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넘치면 그 시를 읽는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시인은 독자들에게 연탄재처럼 뜨겁게 살라고 말한다. 미적미적 살지 말고 화근하게 활활 타오르는 연탄불처럼 살아라. 연탄불은 자신은 끝까지 타면서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해 주고, 술꾼들의 안주로 고기를 익혀준다. ‘너에게 묻는다’의 시는 ‘나는 진정으로 이웃을 위하여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본 적이 있나? 남을 위하여 사회를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해 본 적이 있냐?’고 독자에게 묻는다.

세상을 사는 일이 간단하지가 않다. 누구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우리나라가 그 동안 초고속 성장을 해오면서, 어느 누구 할 것이 없이 상처받지 않고 산 사람과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이제 밥 먹고 살아가니 반성도 하고 후회도 하면서 지난날 삶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부끄러운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참회하고 싶다. 오늘을 사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는 우리의 마음을 찔리게 하는 경책시이다.

이 시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깨달음을 게시해 준다. 화가 난다고 쓰레기통 옆에 버려져 있는 연탄재를 발로 차버리고,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돌에 개구리의 머리가 깨져 죽는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 뜨거운 연탄처럼 이웃을 위해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에 이익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불교의 요익중생(饒益衆生) 사상이다.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과도 일맥상통한다. 고통 속의 중생을 구제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대승보살이다.

연탄은 한 번 불이 붙으면 화끈하게 끝까지 타오른다. 결코 중간에 멈추었다가 다시 타지 않는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모든 생명체의 인생이 일회적인 일기인생(一期人生)이다. 두 번 세상을 사는 생명은 없다. 살다가 잠시 죽어서 쉬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 번 왔다가 가는 인생 뜨겁게 살아야 한다. 자신의 몸을 연탄처럼 온전히 불살라서 투철하게 살아야 잘 산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생명의 가치가 고귀하고 절대적인 것이다.

모든 인간, 모든 생명이 귀천이 없이 하나하나의 삶이 소중하고 절대적이다. 한 사람의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기 위하여 억겁의 세월과 기적적인 인연이 있었다. 장미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온갖 잡초 야생화가 아름다운 것이다. 함부로 꺾고 짓밟으면 안 된다. 모든 중생에게 이익을 주고, 뭇 생명체를 사랑하면서 세상과 함께 살아야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너에게 묻는다’는 ‘연탄 한 장’과 함께 안도현의 대표작 ‘연탄시 2’ 이다. 안도현은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교단에서 파직되는 아픔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잃지 않았다. 우리 삶 주변에 함께 하는 보편적인 소재를 통하여 삶의 아픔을 시로써 승화시켜 사람들에게 큰 깨우침을 주고 있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29호 / 2016년 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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