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자녀 살해 사건의 보도를 보게 됐다. 정말로 상세하게, 자식을 죽인 부모의 심리상태와 주변 정황, 기타 등등을 보도하고 있었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너무도 역겨운 느낌이 들었다. 그 사건에 대한 역겨움이 아니었다. TV 보도에 대한 것이었다. ‘왜 저 TV에서는 저 사건을 저리도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목적일까?’ 하는 의구심에 따라오는 역겨움이었다.
언론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 측면을 지닌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그 가운데 사실을 알린다는 것은 언론의 역할 가운데서도 가장 큰 일에 해당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하는 것이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지금의 언론은 사실보도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사실은 선정성을 극도로 추구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어느 측면에서는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우선 자녀 살해사건이라는 것은 그 사실이 갖는 선정성으로 말미암아 언론이 아주 매력적으로 생각할 자료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매력에 취하여 그것을 그토록 자세하게 보도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그렇게 자세하게 보도하는 것이 과연 형평성에 맞는 일인가를 생각해 보자. 그 사건이 갖는 선정성만큼이나 그 사건이 무게를 지니는 것인가? 선정성과 중요도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그 선정성을 중심으로 하여 자세하게 보도하는 것 자체가 왜곡일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사생활을 선정성에 중심을 두고 자세히, 정말 상세하게 보도한다고 생각해 보자. 시청자의 흥밋거리로야 얼마든지 저울추가 기울 수 있지만, 그것이 과연 그렇게 저울추가 기울어야 할 만큼 중요한 문제인가와는 별개의 것이다. 그리고 자녀 살해사건의 경우도 그런 예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한다.
정말 특별한, 정말 이상한, 정말 정신병적인 증후를 보이는 특수한 사례일 것이 누가 보아도 분명한 일이다. 그것을 사건 진행 가운데 치킨을 시켜 먹었다는 것까지 들추면서 보도한다고, 그 정말로 이상한 사건에 더 무엇을 더할 것인가? 그 정말로 이상한 부모가 그토록 상세하게 조명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상한 사건이 마치 이 시대를 상징하는 사건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만일 정말 이 시대를 상징하는 사건이요, 그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 전체를 되돌아보아야 할 사건이라면, 그런 사건이라는 것을 말해주기 위한 신중하고도 사려 깊은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그 보도에는 전혀 그러한 신중함과 사려 깊음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필요한 부분에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의견을 선정적으로 포장하여 보여 줄 뿐이었다.
언론은 참으로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얼마만큼 보도하느냐가 사실보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의식과 사명감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저 사실에 충실하다는 말로 선정성에 휘둘리는 언론의 행태를 변명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나의 극단적인 사례를 그토록 자세히 보도한다는 것 자체가 그 사건을 일반화하는 것이 될 것이요, 그렇게 일반화하는 것이 다시 대중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그 엄청난 영향이 어떤 사실이 갖는 실제적인 무게를 넘어선다면 그것은 왜곡이요, 대중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언론의 오만이다.
지금의 언론들은 자신들이 이러한 오만에 빠져있는지 한번 반성해야 할 것이다. 선정성에 휩쓸려 진정한 역할과 사명을 팽개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기를 촉구한다. 자녀살해에 대한 보도에서 느끼는 역겨움은 단지 그 보도 자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것, 이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핵심이 되는 문제들에 대하여는 애써 눈 돌리고 있거나 왜곡을 일삼고 있다는 의구심이 있기 때문에 이런 역겨움을 느끼는 것이다. 선정성을 내세운 인기몰이에 취해 시민대중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상실한 것 같은 언론의 행태는 엄한 질책을 받아 마땅하다.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tysung@hanmail.net
[1329호 / 2016년 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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