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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무슬림은 테러범이 아니다

기자명 이중남
  • 법보시론
  • 입력 2016.02.02 13:26
  • 수정 2016.02.02 14:36
  • 댓글 1

지난해 11월13일 파리에서 자행된 이슬람 극단주의 IS(Islamic State)의 동시다발적인 테러 사건은 전 세계를 공포와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금요일 밤, 극장과 음식점에서 여가를 즐기는 무고한 시민들에게 무차별로 총을 쏘고 폭발물을 터뜨리는 테러를 계획한 사람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분노한 프랑스 정부가 전폭기를 띄워 시리아의 IS 거점 지역을 맹폭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다만 분노를 표현하는 것 외에 그 폭격으로 어떤 실효를 거두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21세기로 들어선 첫 해에 9·11테러를 당한 미국은 즉각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해 그 배후로 지목한 탈레반을 몰아냈다. 그리고 대량살상 무기를 개발한다는 혐의를 씌워 우리나라를 포함한 몇몇 우방의 군사력을 동원, 이라크를 공격해 사담 후세인 정권과 알카에다를 무너뜨렸다. 전쟁이 끝나고 아무리 뒤져도 대량살상 무기는 없었지만, 미국이 사과하거나 배상했다는 소식은 들은 바 없다. 이것이 탈레반이나 알카에다보다 더 무자비한 전술을 구사하는 IS가 탄생하게 된 일련의 사태 전개다.

IS와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을 볼 때, 그것이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교의에서 필연적으로 파생한 부산물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우리는 과거 미국에 개신교 목사들이 주도한 백인우월주의 테러조직 KKK(쿠 클럭스 클랜)가 있었다고 해서 그 조직이 기독교의 교리에서 필연적으로 파생했다거나, 모든 기독교도는 잠재적인 KKK 단원이라고 추론하지 않는다. 정도의 차는 있지만, 오늘날 세계 종교의 반열에 오른 종교들 대부분은 종교적 교의를 내세워 세속적인 야욕을 채운 그늘진 전과가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는 서구와 근동·중동 간의 기나긴 적대의 역사, 근대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 그리고 전후 냉전체제와 미국을 정점으로 한 자본주의 세계질서의 그늘에서 다양한 유형으로 배양되어 왔다. 이 조직들은 종교가 아닌 정치의 소산, 냉혹한 국제정치의 소산이다. 오늘날 이슬람은 세계 인구의 22%에 달하는 17억 인구가 신봉하는 인류 제2의 종교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IS를 지지한다면 세계는 벌써 지옥이 되고도 남았다. ‘무슬림’과 ‘테러범’은 동의어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인구의 절반가량이 종교를 갖지 않은 세속주의자들의 나라다. 자생적인 무슬림은 없다. 그러니 수니파와 시아파가 뭔지, 아랍과 중동이 같은지 다른지조차 모르는 것이 우리 잘못은 아니다. 그렇지만 의외로 많은 무슬림 이주민이 한국에 와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30만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무슬림들이 우리 사회의 평온을 위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중매체의 국제 면에 무슬림이 등장하는 경우란 십중팔구 아랍의 산유가격, 중동 분쟁, 테러와 관련해서다. 그러니 이슬람에 관한 우리의 시각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편향되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현대사 기간 중 무슬림이 우리에게 직접 해악을 가한 적은 없고, 오히려 우리가 전후(戰後) 복구재건의 이익을 노리고 전쟁에 가담한 일이 여러 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파리 테러가 발생한 직후, 정부와 여당은 한국도 테러에서 예외일 수 없다며 ‘테러방지법’ 국회 통과에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와 때를 같이 해, 경찰은 11월18일 체류자격 없는 인도네시아 출신 무슬림 한 명을 테러조직 추종 혐의로 체포하면서 그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주요 일간지들은 이튿날 이 사건을 ‘대한민국 활보하는 IS 추종자들’ 같은 협박성 제목으로 대서특필함으로써 공명했다.

피의자 혐의사실 공표는 그 자체가 범죄지만, 그 혐의가 근거가 없다면 더욱 나쁜 짓이다. 많은 무슬림들이 이 사건을 접하고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다행히도 지난해 12월 검찰이 그 용의자를 기소한 내용에는 테러혐의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혐의를 입증할 근거가 없었던 것이다. 국민들이 갖는 막연한 공포감에 편승해, 정치권이 무슬림 한 명을 희생양 삼아 모종의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는 께름칙한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이중남 젊은부처들 정책실장 dogak@daum.net

[1330호 / 2016년 2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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