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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법승 법현 스님의 노익장

환갑 무렵 인도로 구법행
15년 순례 뒤 경전 번역
서원과 원력의 삶 보여줘

유엔인구기금(UNFPA)이 최근 발간한 ‘2015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평균 기대수명은 남자 69세, 여자 74세(평균 71.5세)로 나타났다. 고대 로마인의 평균수명이 22세였고, 1900년 경 미국인의 평균수명이 47세 정도였다고 하니 바야흐로 장수의 시대라 할 수 있다.

한국인의 기대수명도 한해가 다르게 늘고 있다. 일제강점기 경성대학 의학부 미즈시마 하루오 교수가 조선총독부 인구 및 사망신고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한국 최초의 주민 생명표에 따르면 1926~30년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남자 32.4세, 여자 35.1세(평균 33.8세)였다. 그런데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현재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남자 79세, 여자 85.5세(평균 82.4세)였다. 90여년 사이에 한국인은 평균 48.6년이나 더 오래 살게 된 셈이다.

이러다 보니 환갑을 장수로 여기던 시절은 이제 오래된 이야기가 돼버렸다. 옛사람들이 흔히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 살았다는 의미의 고희(古稀)나 희수(稀壽)의 나이가 되더라도 경로당에 가면 막내 취급받기 십상이다.

많은 이들에게 노년은 여유롭다기보다 고달프다. 여건에 따라 빈곤, 질병, 고독, 역할상실 등을 겪어야 하는 고난의 시간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노년을 열정과 신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사례는 역사 속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괴테의 ‘파우스트’, 톨스토이의 ‘부활’ 등은 작가가 70대 이후에 완성한 역작들이다. 불교사에서도 일연 스님이 70대 후반에 시작해 84세로 입적할 때까지 집필에 전념해 ‘삼국유사’를 남겼으며, 세계 최초 금속활자로 유명한 ‘직지심체요절’도 백운 스님이 75세 때 쓴 저술이다.

이와 함께 노익장을 과시한 불교인으로 단연 중국 동진시대의 구법승 법현 스님을 꼽을 수 있다. 스님은 인간의 의지와 열정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피로써 칼을 씻는 난세에 태어난 스님은 율장을 가져와 불교계 폐단을 고치겠다고 결심하고 타클라마칸 사막과 파미르고원을 넘었다. 스님이 아프가니스탄, 카슈미르,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에 도착했을 때가 60살 무렵이었다. 훗날 자신의 저술 ‘불국기’에서 밝혔던 것처럼 ‘하늘에는 새도 없고, 땅에는 짐승이 없으며, 오직 앞서간 이들의 뼈와 해골이 이정표가 된 길’을 노구를 이끌고 갔던 것이다.

법현 스님은 그곳에서 산스크리트어를 새롭게 배우고 경전을 익혔다. 또 인도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인도를 횡단해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까지 순례했다.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15년 만에 중국으로 돌아온 스님은 이미 70대였다. 하지만 스님은 또다시 놀라운 투혼을 발휘한다. 7~8년 동안 역경사업을 진행해 ‘장아함경’ ‘마하승기율’ 등 6부63권, 100만여 자에 이르는 경전과 율장을 번역했으며, 불후의 명저 ‘불국기’를 집필했다. 환갑 무렵에 구법순례를 시작하고, 일흔에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고, 여든에 역경의 발원을 세우고 실천했던 것이다.

▲ 이재형 국장
이제 설이다.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으면 다시 한 살을 더 먹는다. 간화선을 주창한 대혜 스님은 ‘서장’에서 “선 것은 익게 하고, 익은 것은 설게 하라(生處放敎熟 熟處放敎生)”고 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올해는 모두들 익숙함과 편안함에서 벗어나 구법승 법현 스님처럼 삶의 순간순간을 열정과 새로움으로 살아가려 노력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재형 mitra@beopbo.com

 

[1331호 / 2016년 2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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