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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논쟁 신중히 접근해야

기자명 이기화

“내가 여기 기(旗)를 세우면 그 기는 또한 나를 세운다.” (학원(學園)문학상의 ‘기’에서)

필자가 중고등학생 시절 애독하던 잡지로 ‘학원’이 있었다. 아마 그 시절 유일한 청소년 교양지였다고 생각한다. 많은 시간이 흘러 ‘학원’에서 읽은 것들을 거의 다 잊어 버렸지만 모두에 인용한 ‘기’의 이 구절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기’는 학원문학상의 수상작이었다. 유감스럽게 저자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로 사제지간을 들 수 있다. 언젠가 제자들과의 모임에서 이 문제에 언급하면서 학원문학상의 ‘기’를 인용한 적이 있다. 만약 제자들이 스승을 깃발로 들어올릴 때 그 깃발이 그들을 높이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그 깃발을 짓밟으면 그들도 짓밟히게 된다고 했다. 믿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이것이 우주와 마음의 진리이다.

스승은 부모에 버금가는 은혜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스승은 직업인으로서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전문지식을 전수한다. 뿐만 아니라 길고 험한 인생의 여정에서 지침이 되는 바른 인생관을 가르치기도 한다. 이것이 스승의 책무이다. 때로 매스컴에 예외적인 경우가 보도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스승들은 그 책무를 다하려고 노력한다.  신이 아닌 인간인지라 스승에게도 인격적인 결함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은 스승의 은혜이고 그 은혜를 깃발로 세울 때 그들도 세워진다.

제2차 세계대전에 관련된 가장 유명한 사진의 하나가 소위 ‘아버지의 깃발(Raising the flag on Iojma)’이다. 대전의 말기인 1945년 2월과 3월에 일본 남쪽의 오가사와라(小笠原)제도의 이오지마(硫黃島)에서 사상자가 4만 8000명에 이르는 치열한 전투가 일어났다. 전투는 이 섬의 산 정상에 미국 해병대들이 성조기를 세우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그 감동적인 장면의 사진이 바로 ’아버지의 깃발‘이다.

국기는 국가의 상징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여 모두가 그 안에서 행복을 추구하며 살게 한다. 가족에서 아버지의 위치는 국민의 경우 국가가 된다. 이런 까닭으로 이오지마에서 미 해병대가 세운 기를 ‘아버지의 깃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이승만 국부론’이 제기되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북한에는 국부 김일성이 있다. 그의 존재는 신격화되었으며 도처에 그와 그 자식인 김정일의 거대한 동상들이 세워졌다. 전력사정이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그 동상들은 24시간 밝게 조명되고 있다. 현재 북한의 통치자는 김일성의 손자인 김정은이다. 북한의 인권 사정은 세계최악의 수준이고 경제규모도 대한민국의 수 %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는 온 국민이 깃발로 세워 추앙하는 국부가 있다.

1945년 일제의 통치를 벗어난 이후 극도로 혼란한 국내외 여건과 북한의 남침을 겪고도 대한민국은 반세기만에 전 세계인이 기적으로 경탄하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했다. 세계 167개국의 민주화 지수는 대한민국이 20위이고 북한은 최하위인 167위이다.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에 이르고 있다. 이 기적은 오직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의 국가에서 가능했다. 그렇다면 누가 이 기적의 국가를 건설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는가? 그 사람이 국부로 추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완전한 정치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등소평이 중국인민공화국을 세운 모택동의 공이 7이고 과가 3이라고 평가했지만 모택동은 국부로 추앙되고 있다. 이승만 박사도 역시 공과 과가 있다. 그를 국부로 추대하는 문제는 이 공과 과에 대한 신중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 국민적인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국부는 다가올 시련과 영광의 세월에 우리가 세워야 할 깃발이기 때문이다.

이기화 서울대 명예교수 kleepl@naver.com
 

[1331호 / 2016년 2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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