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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주세죽의 삶 복원

  • 불서
  • 입력 2016.02.22 17:13
  • 수정 2016.02.2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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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예바의 눈물’ / 손석춘 지음 / 동하

▲ ‘코레예바의 눈물’
일제강점기 한국사회주의 계열의 항일 여성독립운동가 주세죽(1901~1953). 조선공산당 창립을 주도하고 고려공산청년동맹 책임비서를 역임한 박헌영의 아내였던 그녀의 삶은 그동안 베일에 가려 있었다. 1919년 3·1운동과 1926년 6·10만세운동을 주도했으며 ‘조선여성동우회’ ‘조선여성해방동맹’을 조직해 진보적 여성운동을 펼친 혁명가였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언제나 남편 박헌영의 조연에 불과했다. 해방 이후에도 공산주의 노선을 택했고, 박헌영의 아내였다는 이유로 남과 북, 어느 곳에서도 그의 이야기는 감추어졌다.

한겨레신문과 법보신문 논설위원을 역임한 손석춘 건국대 교수가 최근 여성혁명가 주세죽의 삶을 소설로 엮어냈다. ‘코레예바의 눈물’은 지난 2013년 박헌영과 그의 아들 원경 스님의 이야기(‘박헌영 트라우마’)에 이은 박헌영의 또 다른 비극적 가족사이기도 하다.

책은 저자가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를 여행하던 중 고려인 집에서 주세죽이 남긴 기록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그 기록은 주씨가 1946년 1월, 13년 전 죽은 줄 알았던 박헌영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딸 박영에게 아버지와 자신의 삶을 전해주기 위해 남긴 것이었다.

1901년 함흥에서 태어난 주세죽은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고, 중국 상하이에서 박헌영과 결혼하면서 혁명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고려공산청년동맹(고려공청)을 결성했고, 소식지 ‘올타’를 발간하며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조선독립의 꿈은 박헌영이 1933년 7월 상하이에서 일경에 체포되면서 무산됐다. 다행히 그녀는 박헌영의 절친한 친구이자 오랜 동지였던 김단야의 도움으로 체포망에서 벗어났지만, 평생 도반이었던 박헌영과의 엇갈린 운명은 피할 수 없었다. 남편이 죽은줄 알고 자신을 연모한 김단야와 결혼했지만 훗날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접한다. 그러나 어긋난 운명을 되돌리기에는 너무나 멀리와 있었다. 박헌영 역시 재혼해 아들(원경 스님)까지 둔 상태였다. 주세죽은 남편 박헌영과 함께 꿈꿨던 조선독립운동의 지난한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박헌영에게도 마지막 당부의 편지를 남겼지만, 직접 전하지 못한 채 비운의 삶을 마감하고 만다.

‘코레예바의 눈물’은 소설로 이름 붙여졌지만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한민족이 겪었던 비극을 외면하지 않고 민중해방운동을 전개했던 주세죽의 치열했던 삶을 되짚은 역사기록에 가깝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332호 / 2016년 2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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