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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와 화성인

기자명 함돈균

한국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불리던 신영복 선생과 세기의 대중음악가로 평가되던 영국인 데이빗 보위가 각각 지난 1월15일과 1월10일, 일주일 간격으로 작고했다. 경상남도 밀양 출신 신영복 선생은 1941년생이니 76세고, 런던에서 태어난 보위는 1947년생이니 한국 나이로 70세다. 평균 수명이 대폭 늘어난 시절을 생각하고, 여전한 활동력으로 세상에 미치고 있는 그들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아쉬운 나이가 아닐 수 없다. 왕성한 활동력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신영복 선생은 ‘담론’이라는 책을 작고하기 한 해 전에 출간했고, 보위는 생애 25번째 스튜디오 LP ‘블랙스타(Blacstar)’라는 앨범을 사망 이틀 전에 발매했다.

그들의 죽음을 주요 신문들은 일제히 톱기사로 다뤘고, 세상은 세대와 계층과 지식의 정도와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그들을 깊이 애도했다. 사회 갈등이 심해서 최소한의 사회적 통합성도 발휘하기 쉽지 않은 오늘의 세태에 두 죽음에 대한 세상의 뜨겁고 광범위한 애도는 주목할 만하다. 때로 어떤 종류의 죽음은 오히려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내가 눈 여겨 보는 것은 신영복 선생과 데이빗 보위의 표면적 차이에도 그들 간에 엿보이는 어떤 공통점이다. 선비적 풍모를 풍기는 신영복은 우리 사회의 비판적 지식인이었다. 그를 시민들에게 알린 유명한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혹자는 현대판 유배문학의 걸작이라고도 하지만, 이 책이 사람들에게 주었던 감동은 실은 ‘날카로운 지성’의 산물이라서라기보다는 어떤 인문적 순결성이 도달한 공감 능력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이 책의 문장 중에는 “소년을 보살피는 일은 ‘천체 망원경의 렌즈를 닦는’ 일처럼 별과 우주의 미래를 바라보는 일이라 생각됩니다”라는 문장이 있다. 이 문장은 ‘소년’을 통해 내일의 역사를 기약하자는 지성인다운 다짐으로도 읽히지만, ‘소년다움’에 담긴 순결함, 즉각적으로 실용화되지 않는 가치에 꿈을 걸 줄 아는 감성이 인간의 미래이자 최초의 원형이라는 생각을 함께 품고 있다. 언제나 별을 발견하는 것은 소년이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일이라는 문장은 또 어떠한가. 각자인 인간의 시간에서 공감이 발생하는 일은 일종에 예외적 상황이라고 해야 한다. 이 예외적 사건은 어떤 해결책의 제시 이전에, 존재 곁에 머무름으로써 같은 시간 안에 그와 함께 ‘사는’ 일을 통해 이뤄진다. 인간에게는 현자가 아니라 내 말을 들어주는 한 명의 순진한 친구가 구원인 경우가 있다.

오드 아이(odd-eye)로 유명했던 데이빗 보위는 ‘화성인’으로 불렸다. 그의 대표적인 노래 ‘스타맨(Starman)’은 다음과 같은 가사로 채워져 있다.

“하늘에서 기다리는 ‘스타맨’이 있어. 그는 여기로 와서 우릴 만나고 싶어 해. 하지만 그는 우리 마음을 다치게 할 거라고 생각하지. 그는 우리에게 그걸 얘기하지 말라고 했지. 이 모든 게 가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지. 아이들이 그걸 잃어버리게 놔둬. 아이들이 그걸 쓰게 놔둬. 모든 아이들이 신나게 춤을 추게 해줘…. 창문을 주시해, 그의 빛을 볼 수 있으니까. 우리가 힘을 낸다면 그가 오늘밤에 올 수도 있어. 아빠에게는 얘기하지 마. 그는 무서워서 우리를 가둬버릴 거야.”

보위의 ‘스타맨’은 지혜로운 현자도 실용의 아이콘도 돈 많은 부자도 아니다. 다만 그는 아이들의 대변자다. 아이들의 해방자다. 아니, 그 자신이 아이다. 보위는 이 세계에서 유용하게 취급되는 것을 잃는 걸 두려워 말고, 무용한 것에 몰두하는 아이의 순진한 놀이가 삶을 해방시킬 수 있고, 그것이 곧 인류의 희망, 새로운 시간을 출현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생텍쥐베리 ‘어린왕자’의 아이인 ‘나’가 어른들은 보지 못하는 ‘보아뱀 뱃속의 코끼리’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선비’에게도 ‘화성인’에게도 ‘순진한 아이’가 깃들지 않으면 감동은 없다.

함돈균 문학평론가 husaing@naver.com

[1332호 / 2016년 2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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