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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구법승 4명, 중국선종 법맥 이었다”

 
중국에서 기라성 같은 대선사들이 일시에 출현했던 이른바 ‘선의 황금시대’를 맞아 당나라로 건너간 해동구법승들의 현지 행적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이 배우고 깨닫고 주석했던 곳은 물론 중국선사들과의 교유를 통해 쌓아올린 법계 등은 오직 ‘구법승’이라는 이름에 가려 조명 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 강서지역으로 건너가 활동했던 해동구법승 43명의 행적을 분석한 논문이 발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백장회해(百丈懷海) 선사가 개창했던 백장사(鄕尊庵)에 2명의 해동구법승에 주지로 있었다는 사실과, 4명의 해동구법승이 대선사의 지위에 올라 중국선종의 법맥을 잇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조명돼 눈길을 끈다.

‘의춘선종’ 논문 변인석 교수
해동구법승 현지 행적 조명
신라스님 2명, 백장사 주지
대종사로서 중국제자 배출도
‘불교지리학’ 국내 소개 눈길

이러한 내용은 변인석〈사진〉 아주대 명예교수가 ‘한국고대사탐구’ 21집에 게재한 ‘강서선맥의 이른바 동류지설(東流之設)·서학지구론(西學之求論)에서 본 의춘선종(宜春禪宗) 안에 머문 해동구법승의 불교지리적 분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변 교수는 여든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중국 강서지역으로 건너가 해동구법승들의 행각을 되짚는 헌신적 여정을 14번이나 펼친 끝에 이 논문을 완성시켰다.

논문에서 가장 먼저 주목되는 것은 해동구법승 안(安)선사와 초(超)선사가 백장사 주지를 역임했다는 사실이다. 변 교수는 백장사 답사 과정에서 분석한 ‘역대백장사주지표’를 통해 이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백장사는 마조도일 선사의 입실제자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선장(禪匠)으로 추앙받는 백장회해 선사가 개창한 사찰이다. 백장청규(百丈淸規)의 발상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 선종사에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백장사에서 안·초, 두 선사가 주지로 활동했다는 점은 당시 해동구법승들과 신라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마조도일 선사가 깨달은 바를 처음 설한 중국 성적사. 마조도일 선사는 홍주에서 강서종을 창시했다. 해동구법승 홍직·대증·혜청·안선사는 강서종을 배웠고 대선사가 됐다.

이와 함께 변 교수는 홍직·대증·혜청·안선사가 강서지역에 들어가 선을 배운 뒤 현지 학인들에게 선을 가르쳐 선종의 법맥을 이어준 선종사법(禪宗嗣法) 즉, 대선사의 지위에 올랐음을 규명했다. 해동구법승이 홍주종(洪州宗), 강서종(江西宗)을 배워 다시 중국의 학인, 학도, 대중들에게 스승으로 다가가 제자까지 배출시킨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선종 법맥을 이었던 해동구법승들의 이러한 공로는 선어(禪語)에 나오는 ‘호지(胡地)’ ‘호인(胡人)’이라는 비하적 표현이 ‘신라’ ‘신라인’으로 대체되는 변화까지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변 교수는 이처럼 해동구법승들의 현지 행적을 조명하는 한편, 이를 통해 신라의 삼국통일이 시대적 상황의 귀결이었음을 밝혀내고 있다. 해동구법승들의 활약으로 신라와 당나라는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동반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으며, 신라는 당나라와의 동반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통일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나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반관계는 신라로 하여금 영토분계선을 남북이 아닌 서해로 대변되는 횡적인 구조로 이해하게 했고, 환경적 제약을 최대한 끌어올린 결과 삼국통일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변 교수의 연구는 국내 불교학계에서는 생소한 ‘불교지리학’을 활용한 결과라는 점에서 더욱 큰 가치가 있다. 불교지리는 20세기 중반 대만에서 처음 사용됐고 현재는 중국학계에서도 널리 쓰이는 연구방법이다. 변 교수는 해동구법승들의 연구에 불교지리학을 접목시켜 △구법승의 숫자 △개오주석처 △종주·사부 △선종법계도 △수학처·주석처 등을 규명하고 도표로 정리했다. 해동구법승들의 분포를 한 눈에 파악해 제시한 변 교수의 작업은 학계가 향후 연구 방향·과제를 모색하고 설정하는 데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변 교수는 불교지리를 통해 일본 고마자와대학에서 편찬한 ‘선종법계보’의 오류 5곳을 찾아내고 미비했던 3곳을 보완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변 교수는 “이번 논문을 포함한 그간의 작업들은 중국의 중화사상과 일본의 식민사관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이었다”며 “역사학자의 책무는 민족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것이다. 논문을 통해 중국선종사에 빼어난 업적을 남겼던 우리의 해동구법승들이 재조명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32호 / 2016년 2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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