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 우리를 불행으로 이끄는 불안감

기자명 성원 스님

공양시간 제한 없애니 혼란도 사라졌다

▲ 일러스트=강병호

무엇이나 전조증세가 있다고 합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80% 정도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에게 죽음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아무도 그 비밀의 코드를 해독하지 못하고 만다는 것이죠.

단편적 정보로 사실 왜곡
나쁘게 보이는 행동도
다른이 위한 몸부림일 수
내 주장·주의 때문에
가슴 아픈 사람 없는지

말씀하셨듯이 지난 폭설로 마비가 되었던 제주공항 사태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좀 더 애정 어린 시선이 필요했습니다. 언론들은 자신이 접한 상황의 일부분을 소식으로 전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잠시 본 뉴스의 소식을 전부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기적인 우리들의 뇌는 자신이 평소 가고 싶은 쪽으로 사실을 왜곡시켜 각인시키기 일쑤이죠.

추위가 한풀 꺾이나싶었더니 짙은 안개와 돌풍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심술을 부리네요. 며칠 전 몹시 피로한 상태로 공항에 나갔는데 탑승구 앞에서 제가 타야 할 항공편이 무기한 연기되었다는 안내가 떴습니다. 갑자기 우리들 앞에 등장한 ‘윈드시어’라는 낯선 용어만 쏟아내면서 말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우리말이 더 어려운 듯도 하지만 이해는 되더군요. ‘풍속 수직 비틀림’이랍니다. 꼼짝없이 5시간을 (정말 바닥에 앉을 수도 없는 지경의 공항에서) 서서 버티었던 경험을 했습니다.

기다리면서 주변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상황을 이해하고 그 누구 한 사람 언성을 높이거나 서로에게 불쾌감을 자아내는 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어린아이의 짧은 울음소리, 계속되는 항공사 안내, 매점 앞에 길게 늘어선 줄에서 동행들에게 뭘 먹을지를 묻는 몇 마디 말소리가 고작이었습니다. 그토록 혼잡한 공항에서 말입니다. 바닥에 누운 노모에게 애써 옷가지를 덮어주는 사람들. 제주공항은 이러했고, 우리들은 이토록 성숙했습니다.

한 20년 전쯤인 것 같습니다. 약천사에서 큰 불사가 있어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참한 법회가 열렸습니다. 공양시간 너무나도 무질서해져 질서를 잡지 못하게 되자 안내 요원 한 분이 급기야는 몸둥이를 들고 휘두르는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그 상황을 망연자실 바라보면서 그야말로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습니다. 때마침 꽤나 교양 있어 보이는 불자 한 분이 그 혼란한 배식 줄 속에서 공양을 받기 위해 애를 쓰며 “밥 한 끼에 목숨 거네요”라고 자조적인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공양 배식 줄이 순식간에 무질서에 휩싸여 몸싸움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양이 끝난 후 다시 만난 그 불자님은 좀 겸연쩍었던지 “시어머니와 아이들이 함께 온 터라 무리를 해서라도 식사를 챙기지 않을 수 없었다”고 애써 변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날, 화두처럼 무질서를 생각하다가 알아차린 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참가대중들이 ‘밥을 먹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불안의 이유는 공양시간이 너무 짧은 데서 기인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날 밤 사중에서는 대책회의가 열렸습니다. 모두들 모여 앉았지만 도무지 해법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많은 이들이 ‘우리민족’과 ‘국민성’ 등을 입에 담으며 자조적인 한탄을 쏟아낼 뿐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큰소리를 쳤습니다. “내게 맡기면 내일은 공양질서를 혼자서 다 잡겠다”고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어이없어 했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기에 제게 소임이 맡겨졌습니다. 제가 갖고 있던 해법은 별것 아니었습니다. 다름 아닌 공양시간을 정해놓지 말고 24시간 개방하는 것이었습니다.

새벽예불 때부터 계속해서 안내를 했습니다. 하루 종일 아무 때나 공양을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정말 거짓말 같이 문제가 풀렸습니다. 아무런 문제나 혼란 없이, 심지어 줄 서는 이조차 없이 하루 종일 안정되게 공양간이 운영됐고 법회 또한 여법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 이후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문제에 있어 문제의 대상을 부정적인 견해로 인식하면 풀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누구나 개인의 이기를 위해 무질서한 개념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도 알고 보면 또 다른 문제의 해결을 위해 몸부림친다는 것입니다. 시어머니의 공양을 챙겨드려야 했던 교양 있는 며느님같이 말입니다.

가급적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살 때 스스로는 더욱 빨리 평안함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중요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신의 완전함을 믿으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최소한 스스로 완전하다는 신념들을 갖고 살 때 자신이 온전하듯 내 이웃 또한 나름 온전한 존재임을 믿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제주를 사랑합니다. 정말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완전에 가까운 제주의 풍경은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입니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 버스광고에 ‘아름다운 제주’라는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 글을 보는 순간 ‘이 제주를 나와 똑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고향같이 느껴졌습니다. 아직도 그 황홀한 아름다움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있답니다.

그렇다고 세상 어디나 다 그렇듯이 모두가 모순 없는 붓다처럼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 제2공항을 만든다는 성산에 갔다가 온 거리에 가득 나부끼는 현수막을 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우리 고향마을 위로는 절대 비행기가 날지 못한다.’
‘정든 내 고향 결사코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많은 현수막 중에서 마음 아팠던 글입니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 편히 자는 지붕위로 나는 항공기를 타고 자신의 일을 보면서 살아왔던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고향을 떠나는 마음은 누구나 아프겠지만 누군가 고향을 떠나게 하고 만들어진 공항을 이용하면서 저런 현수막을 걸 수 있을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일들과 충돌이 제주만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은 하지만 아름다운 제주에서도 가끔은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일어납니다. 자연현상만이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의 주장, 주의로 인해 마음 아프기도 하답니다.

그래도 내가 아름답게 긍정적으로 본다면 아름다워질 수 있고, 긍정될만한 일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일체는 이 마음이 지었느니라.

입춘대길(立春大吉). 마음이 지어내는 아름다운 봄을 만끽하도록 합시다.

아름다운 제주에서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사문 성원 드림.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332호 / 2016년 2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