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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협력자 징벌 성사시킨[br]프랑스의 험난한 청산 과정

기자명 이병두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 / 이용우 지음 / 역사비평사

▲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
해방 70년이 지났는데도 ‘친일 잔재가 청산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런 현실을 염려하고 각성을 촉구할 적마다 우리는 흔히 프랑스를 과거사 청산의 모범 사례로 들곤 한다.

우리의 경우 “무장 세력이 전혀 개입하지 못한 상태에서 해방을 맞이한 반면, 프랑스는 자국 레지스탕스가 해방 전투에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기여를” 하였으며, 우리는 해방 뒤 “미군정의 실시와 이후 친일파에 기반을 둔 이승만 정권”을 맞이한 반면 프랑스는 해방과 동시에 드골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그 정부에 의한 대독협력자 숙청이 가능했기에 프랑스가 우리보다 이 문제에 있어서 유리하였다. 게다가 “청산해야 할 과거”가 우리는 1905년 을사늑약 전후에서부터 1945년에 이르는 40년인 데에 비하여 프랑스는 독일강점기였던 1940~1944년의 4년으로 우리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도 다르다.

1944년 해방 뒤 “첫 번째 형태의 ‘응징’은 숲 속이나 거리에서 벌어졌다. 부역자 숙청의 가장 핵심적인 형태가 재판을 통한 ‘사법적’ 숙청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러한 숙청에 앞서 먼저 ‘초법적’ 숙청이 전국 규모로 벌어졌다. 정식재판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처형하는 행위인 ‘약식처형’과 여성 부역자들의 머리를 깎는 ‘삭발식’이 바로 이러한 초법적 숙청의 대표적인 형태라 하겠다.”

초기의 이런 과정을 거쳐 합법적 부역자 처벌이 이루어졌지만 문제가 적지 않았다. 부역의 증거가 문서로 확실히 남아 있는 언론인과 문인들은 최우선 처벌 대상이 되어 곧바로 처벌을 받았고 처형된 사람도 많았지만, 공무원과 기업가들은 이들에 비해 훨씬 관대한 처벌”을 받았다.

기업가들과 고위공직자들은 재판을 거친 뒤에도 갖가지 이유로 사면되거나 석방된 일이 많았다. 비시 정부 고위 공직자로 재판에 회부된 108명 중 “무죄를 선고받은 이는 3명에 불과했지만”, “실제 형이 집행된 이는 108명 가운데 32명뿐”이었던 것이 이를 분명하게 입증해준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검찰과 사법부 등에 고위 공직과 경제계 출신 부역자들을 비호하는 세력이 존재하며 끈질기게 기소와 사법처리를 방해하였지만, 어쨌든 해방 전후의 숙청이 프랑스 역사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역할을 하였고, “독일강점기 동안 억눌려 왔던 분노를 배출하게 해줌으로써 더 큰 폭력을 막는 역할을 했다.”

우리가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을 모범 사례로 받아들이게 된 데에는 해방 전후의 숙청 작업보다는, 해방 수십 년 뒤에 새롭게 ‘반인륜범죄’ 혐의로 거물급 부역자들을 법정에 세운 사실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반인륜범죄’를 입법화하고 실제로 사법처리 하기까지에는 험난한 과정이 있었다. 게슈타포 간부와 비시 정부 경찰 책임자 등 고위급 부역자들은 미국 CIA의 도움을 받아 남미로 도피해 그곳에서 우익 군사정권을 지원하거나 심지어 해방 뒤 승승장구하여 장관에까지 오른 사람도 있었다.

이들을 비호하는 세력은 미국, 프랑스 검찰과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나치 강점기 말 이들에게 잠시 도움을 받았던 레지스탕스 대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전 민병대 간부로 악명이 높았던 폴 투비에의 경우에는 1944년 해방부터 1989년 체포되기까지 가톨릭 성직자들이 수도원에 숨겨주었을 뿐 아니라 사면을 탄원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범죄자의 기소와 재판 과정이 매우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갖가지 장애에도 불구하고 해방 40~54년이 지난 뒤에도 고위급 부역자들이 ‘역사의 심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유대인 희생자 후손들의 끈질긴 추적과 언론의 폭로, 그리고 이에 뒤이은 들끓는 여론의 힘’ 덕분이었다. ‘과거사 청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주는 모범사례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이병두 전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1332호 / 2016년 2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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