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 깊은 불자의 갑작스런 죽음
신심 깊은 불자의 갑작스런 죽음
  • 이재형 기자
  • 승인 2016.02.29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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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윤회의 한 과정
그 자체가 고통 아니라
무명 휩싸인 끝이 비극

흔히 무병장수는 최고의 복 중 하나로 여겨진다. 불자들도 절에 가서 병 없이 오래 살게 해달라는 기도를 자주한다. 불보살의 가피가 아니더라도 불교를 믿고 잘 실천하면 건강하게 장수할 가능성이 크다. 분노와 탐욕을 다스리면 스트레스가 적고, 욕심내지 않으며 적당량을 먹기에 각종 성인병과 암에 걸릴 확률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과학적으로도 운동 효과가 입증된 108배까지 꾸준히 하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스님들이 장수했던 사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수덕사 초대방장을 지낸 혜암 스님이 101세, 칠보사 조실이었던 석주 스님이 94세까지 생존했던 것을 비롯해 중국의 조주선사와 허운 스님도 120세까지 사셨다. 6세기 문헌인 ‘고승전’에는 160세까지 살았던 승요(僧要) 스님도 언급된다.

하지만 불교를 믿었지만 비운의 죽음을 맞는 경우도 적지 않다. 초기경전인 ‘맛지마니까야’에는 어처구니없는 죽음이 나타난다. 마가다국의 라자가하에서 있었던 일이다. 부처님이 홀로 유행을 하던 중 옹기장이의 작업장에서 하룻밤을 머무르게 됐다. 그곳에는 젊은 푹쿠사티가 먼저 와 있었다. 그는 유명한 가문의 아들로 부처님 제자로 살겠다고 다짐한 젊은이였다.

부처님은 푹쿠사티에게 하룻밤 같이 머물러도 괜찮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부처님인 줄 몰랐지만 푹쿠사티는 흔쾌히 승낙했다. 새벽녘, 부처님은 작업장 한쪽에 밤새도록 가부좌를 틀고 있는 푹쿠사티를 바라보며 그를 위해 법을 설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후 괴로움의 원인과 과정, 없애는 방법에 대해 자상히 들려주었다.

설법이 끝나갈 무렵 푹쿠사티는 자기 앞에 있는 분이 그토록 뵙기 원했던 부처님임을 직감했다. 환희에 겨운 그는 부처님께 구족계를 받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을 말했다. 부처님이 발우와 가사가 있어야 구족계를 받을 수 있다고 하자 푹쿠사티는 얼른 구해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뜻밖의 사고가 벌어졌다. 발우를 구하려 마을을 돌아다니던 그를 황소가 들이받아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제자들은 부처님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푹쿠사티의 운명에 대해 물었다. 푹쿠사티가 부처님 법문을 듣지 않았더라면, 출가자로 살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다면 살았을 텐데 되레 발심해서 죽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었다. 이때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다.

“수행승들이여, 푹쿠사티는 현명한 자로서 법에 따라 법답게 실천하고 법을 이해했다.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결박을 부수었으므로 천상세계에 태어나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 것이다.”

불교에서 죽음은 그 자체로 고통도 슬픔도 아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생사윤회의 과정일 뿐이다. 다만 무명과 탐욕에 휩싸여 죽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요, 깨침과 공덕을 쌓고 생을 마치면 축하할 일이다. 그렇기에 깊은 안목으로 보면 호화로운 죽음이 비극일 수 있고, 불행해 보이는 죽음도 비극이 아닐 수 있다.

▲ 이재형 국장
최근 한국 불자들이 라오스에서 순례를 하다 생명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깨닫지 못한 우리 안목으로 이 죽음이 어찌 비통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더라도 꼭 불행이라고만 단정 짓지는 말일이다. 푹쿠사티가 천상에 태어나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든다던 부처님의 말씀을 애써 기억하며 이번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간절히 기원해본다.

이재형 국장 mitra@beopbo.com


 

[1333호 / 2016년 3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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