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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없다 진리 아닌 것은 없다

기자명 법상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6.02.29 13:27
  • 수정 2016.02.29 13:28
  • 댓글 1

붓다 입멸 후 500여년 경 나가르주나는 진리는 말로 설해질 수 없음을 세속제와 승의제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우리가 진리라고 말하며, 절에서 가르칠 수 있는 진리는 그저 세속제, 즉 방편의 진리밖에 없음을 역설했다. 즉 진리는 말로 설해질 수 없음을 설한 것이다. 말이란 의미가 담긴 언어이고, 사람들은 특정한 말에 자기만의 특정한 의미를 개입시킨다. 보편적인 의미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만의 특정한 의미와 개념이 담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진리를 말로 설하게 되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진리 그 자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인식한 바의 상대 진리가 될 수밖에 없다.

‘불성’이니 하는 등 말은
진리 드러내기 위한 방편
방편에 집착해 분별하면
참 진리는 드러나지 않아

예를 들어 불성이나 법성, 참나, 마음, 법, 혹은 본래면목이라고 불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언어를 찾을 수 있을까? 찾을 수 없다. 만약에 불성이나 본래면목이 어떤 인식의 대상이거나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어떤 물건이라면 모양이나 의미,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불성은 우리의 의식이 분별해서 알아들을 수 있는 경계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불성이란 개념, 법이란 개념은 정해진 어떤 법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다. 본래무일물이다. ‘금강경’에서도 ‘이 법은 진실함도 없고 헛됨도 없다’고 했고, ‘반야심경’에서는 ‘얻을 바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법을 설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불성이나 법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방편의 진리, 즉 언어라는 세속제를 통해 설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방편은 어디까지나 방편일 뿐, 거기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본래면목이나 불성이라는 말을 듣고, 초기불교의 무아와 다르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언어라는 방편의 쓰임에 사로잡힌 것일 뿐이다. 불성이라는 것이 없는 것을 일러 불성이라고 표현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낙서금지’라고 벽에 씀으로써 낙서를 금지할 수 있는 방편은 될 수 있지만, 낙서금지라는 그 말 자체가 이미 낙서가 될 수밖에 없다. 낙서금지라는 말을 방편으로 받아들일지언정, 그 말을 따라 너도나도 벽에다 ‘낙서금지’라고 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쩌면 지금까지 역사가 해 온 일, 종교와 사상가와 진리라고 들어온 모든 가르침이 해 온 일이 ‘낙서금지’라는 말의 덧칠에 불과했다. 만약 방편의 진리라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통해 달 그 자체를 보려거든, 이제 낙서금지라는 그 말을 분석하고, 따라 쓸 것을 생각하지 말고, 그저 그 텅 빈 벽에 어떤 낙서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매 순간에 존재하고 있을 뿐, 어떤 방편의 글씨도 쓰려고 하지 말라.

법은, 진리는 매 순간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이것’이다. 아무런 말이나 언어적 설명을 해야 하지 않는, 의식의 헤아림을 필요치 않는 바로 ‘그것’이다. 법은 이렇게 매 순간 내 눈앞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떠들지 마!’라고 소리치지만, 사실은 그 말 자체도 소음에 불과하다. 이제 그런 말도 따라하지 말고, 그저 침묵으로 존재하라.

▲ 법상 스님
그 어떤 말도 진리 그 자체일 수는 없다. 소음일 뿐, 진리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진리는 없다. 진리가 없다는 것은 곧 모든 것이 진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진리는 없지만, 그렇기에 ‘금강경’의 말처럼 ‘일체법이 모두 불법’이다. 그러니 두두물물 진리의 나툼 아닌 것이 없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진리다. 산과 들과 꽃 한 송이와 당신과 나를 빼고 별도의 신이나 진리가 있다고 여기지 말라.

지금까지 살아오며 거쳐 간 수없이 많은 각종의 학교에서 가르쳐 온 그 모든 것을 넘어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라. 그저 지금 이대로 온전한 진리인 자기 자신을 확인하라. 당신이 무엇을 하든, 당신의 삶은 하나의 숭고한 진리이다.

[1333호 / 2016년 3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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