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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기자명 성화 스님

혜민 스님이 쓴 에세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종교와 관계없이 무한경쟁에 지친 전 국민들에게 큰 위안이 됐던 책이다. 이 때문에 국민들이 사랑하는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04~2015년 12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되기도 했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이 책이 한창 인기 있던 시기에 지체장애를 가진 지인이 권해 주면서 읽게 됐다. 자신이 힘들고 어려울 때 혜민 스님의 글을 읽고 큰 용기와 힘을 얻었다며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좋은 글이라는 느낌은 있었지만 책 제목의 의미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올해 우연히 그 책을 다시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사실 나 역시 출가한 이래 20년 이상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운영하고, 복지관 관장과 사찰주지 소임을 맡으며 바쁜 일상을 살아왔다.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지난날의 삶을 반조(反照)해 보고자 여러 소임을 놓고 입춘 정초기도를 봉행했다. 절에서 늘 해오던 기도였지만 재발심하
고 심출가하여 기도하니 지난 시간이 하나하나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는 출가사문으로서 유의미한 성과가 많아 특별한 해로 여기며 행복해 했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지난 20년을 함께 고생한 이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고 또한 값진 희생도 있었다. 박봉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청결한 복지관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더러운 쓰레기를 치워주었던 청소보살님, 추우나 더우나 정성이 담긴 공양을 날마다 1000여명에게 만들어준 조리사, 하루 3000명이 이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설이지만 서로에게 배려하며 불평불만 없이 이용해주신 어르신들,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마음과 재물을 보시하신 후원자와 봉사자들, 그들이 내 곁에 함께 했기에 이뤄질 수 있었던 일들이었다. 그 때가 참 행복했음을 소임을 떠난 뒤 비로소 그것이 있었음을 확인하니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진정한 의미를 알 것 같다.

돌이켜보면 출가 이래 늘 새벽기도를 하며 부처님 전에 무릎 꿇고 무시이래 지우금일까지 몸과 말과 생각으로 다겁생에 쌓은 악업소멸을 발원하며 계·정·혜 삼학을 닦아 부처님께서 가신 그 길을 가고자 발원했다. 원력이란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사회복지 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했다. 그래서 얻은 것은 내 것이 아닌 인연지어 온 모든 분들의 노력과 땀방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비록 직접적인 인연은 닿지 않았지만 자기 위치에서 타인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분의 삶이 내게 크나큰 행복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 분 한 분이 모두 고귀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아마 부처님이 말씀하신 상의 상관 인연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일 것이다.

주지가 된 이래 매년 정초기도를 하며 무엇을 이루고자하는 원력으로 기도했고 불보살님의 명훈가피력으로 성과도 있었지만, 올해의 기도는 성취하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내 삶이 누군가에게 희망과 선지식이 되고 행복을 주는 삶으로 변화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앞으로의 삶은 무엇이 되고 무엇을 얻는 것보다는 어디에 있던 그 자리에서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최선의 노력으로 누군가에게 행복의 향기가 되기를 발원한다. ‘행선축원’에 나오는 ‘문아명자면삼도(聞我名者免三度) 견아형자득해탈(見我形者得解脫)’처럼 나를 생각하면 어려움이 없어지고 나를 만나면 기쁨이 솟기를 발원한다. 또 얻고자 하는 삶에서 주고자 하는 삶으로 변화하고자 기도한다. 물론 그간의 기도를 통해 탐, 진, 치 삼독심을 버리고자 숱한 노력을 했지만 욕심은 원력으로, 분심은 열정으로, 치심은 배우는 과정으로 미화되어 시간이 흐르고 역할이 커질수록 삼독심이 치성했음을 발로 참회한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바로 보기를 새삼 다짐한다. 

성화 스님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wing7020@hanmail.net
 

[1333호 / 2016년 3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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