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 대승불교의 성립 배경

기자명 김정빈

불탑 중심으로 ‘믿음 운동’ 발생

대승불교는 부처님의 불사리탑 주변에서 활동하던 불교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입멸하신 후 엄청난 양의 사리를 남기셨는데, 당시 인도인들은 성자가 남긴 사리를 모시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 때문에 부처님 사리를 누가 모셔갈 것인지를 두고 여덟 개 종족 간에 다툼이 일어났고, 도나라는 브라만이 이를 화해시켜 동등하게 분배가 이루어졌다.

부처님 입멸 후 불사리 분배
아소카 의해 전역으로 퍼져
믿음 중시하는 재가자 중심
대승은 꿈·열정·의지 결합체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간 종족들은 자신들이 사는 도시 한가운데에 탑을 세우고 불사리를 봉안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소카 대왕에 의해 불교가 인도 전역으로 널리 퍼짐에 따라 사리(불탑)는 각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육신을 보고 환희심을 내는 박칼리 비구에게 “마침내 썩어질 몸을 보아서 무엇하겠다는 것이냐? 법을 보는 자가 나를 보느니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또 부처님께서 입멸 직전 당신의 장례 문제는 재가신자들에게 맡기고 출가자들은 수행에만 매진하라는 유훈도 남기셨다.

불법의 입장에서 육신은 사대로 구성된 무상한 것에 불과하다. 그에 비해 법은 부처님이 오시기 이전부터 존재했고, 부처님께서 가신 뒤에도 존재하는 지고한 진실이다. 이런 기조에 따라 당시의 출가자들은 부처님의 몸으로부터 나온 사리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재가 신자의 입장은 달랐다.

불교는 계정혜(戒定慧) 삼학으로 구성된 수행법 체계를 갖고 있다. 필자는 이를 3층으로 된 탑에 비유하곤 하는데, 여기에 탑을 받치는 기단을 믿음(信)으로 보면 불교 수행은 ①기단: 믿음의 단계, ②1층: 계의 단계, ③2층: 정의 단계, ④3층: 혜의 단계 등 모두 4단계로 이루어지며, 그 결과가 ⑤허공(초월): 깨달음·해탈·열반이다.

수행의 네 단계 중 세속 생활을 하면서 불교 수행을 병행하는 재가신자들은 앞의 두 단계를 중심으로 수행할 수밖에 없는데, ②에서 ④까지는 자립적인 정신에 따라 지성을 바탕으로 행해지는 수행이지만 ①은 의존적인 마음이 있는 상태에서 믿음, 즉 감성적인 마음을 내는 수행이다. 그리고 재가신자에게는 출가자에게 있어서보다 상대적으로 ①이 중요했고, 또 지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인 자신들의 성격에도 맞았다.
종교적 믿음은 봉헌의 마음이다. 믿음은 어떤 지고한 대상에게 자신의 자아를 봉헌함으로써 불교적으로는 ‘무아’, 기독교적으로는 ‘자기 부인’에 이르게 하는 마음인이며, 자아(자기)가 부정(부인)되어야 하는 이유는 삶의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자아라는 기초 위에 얹혀 있기 때문이다.

‘나(자아)’가 없어지지 않는 한 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 돈(경제)·권력·명예 등을 가지면 문제를 일부 해결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문제를 전부 해결하려면 ‘나’를 부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목표로 하는 종교는 ‘나’를 없애는 방법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데 불교는 ③정학을 통해 나 없음을 나아가고, 기독교는 신 앞에 자신을 바치는 방식으로 나 없음을 향해 나아간다.

중요한 차이점은 기독교에서는 ①이 중요할 뿐 ② 이하는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들도 불교의 ②에 해당하는 이웃 사랑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이웃 사랑을 많이 했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것은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다. 이 점에서 불교 재가신자의 입장은 기독교도들의 입장과 비슷한 점이 있다. 즉, 불교 재가신자는 기독교도만큼은 아니지만 출가자보다 ①믿음이 매우 중요하다.

믿음은 본질상 모르는 것을 대상으로 한다. 종교적 믿음은 앎으로써 밝혀낼 수 없는 앎의 주제― 즉, 세계는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가 라든가, 우리는 왜 태어나며 어디로 가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라는 등의 질문에 대해 “그것은 이러할 것이다” “그것은 이래야만 한다”라고 선택, 결심하는 마음이다.

불멸 후 500년 경부터 불탑 주변에서 그런 믿음 운동이 시작되었다. 종교가 사회를 이끄는 시대 정신을 캔버스 삼아 높은 이상으로 구상을 잡고, 믿음, 즉 부처님과 불법에 대한 감성과 열성을 물감으로 사용하여 800여 년간 그려진 위대한 정신적 회화(그림)를 우리는 대승불교라 부른다.

김정빈 밝은불교신행원장 jeongbin22@hanmail.net

[1333호 / 2016년 3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