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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선문 선사들의 치열한 삶의 흔적

  • 불서
  • 입력 2016.02.29 17:11
  • 수정 2016.02.2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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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개의 산문이 열리다’ / 이일야 지음 / 조계종출판사

 ▲ '아홉 개의 산문이 열리다'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한번에 생사를 뛰어넘어 깨달음에 이른다는 이 말은 선종(禪宗)이 추구하는 지향점이다. 경전을 익히며 인고의 세월을 수행해야 해탈할 수 있다는 교종(敎宗)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부인한다. 이런 이유로 당나라 말기 중국 전역을 휩쓴 전란으로 삶이 피폐해진 민초들은 선종(禪宗)에서 한 줄기 빛을 봤다. 지금 이 자리에서 고통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가르침은 삶의 고해에서 신음하는 민초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현학적인 교종은 귀족들만의 지적유희였다. 그들에게 불교는 당장의 깨달음이 아닌 다시 태어나더라도 지금의 풍요로움을 유지할 수 있는 보험 같은 것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계속되는 전쟁으로 나라들이 일어섰다 지기를 반복하면서 귀족들 또한 내일을 기약하기 없게 됐다. 선종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던 이유였다.

혼란 속에서 중국의 선종이 새롭게 일어나는 시기, 한반도의 통일신라 또한 극심한 혼돈을 겪었다. 중앙에서는 귀족들의 다툼으로 수시로 왕이 바뀌고 골품제라는 억압된 신분제에 대한 불만이 각 지방 호족의 독립으로 이어졌다. 귀족과 호족의 수탈, 계속되는 기근과 역병으로 민초들의 고통은 끝이 없었다. 이런 정치적 격변에 불교 또한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신라의 귀족불교는 귀족들의 타락과 함께 타락해 갔다. 이때 혜성처럼 새로운 불교가 등장했다. 선종이었다. 중국 선진불교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입당했던 유학승들은 당 무종의 폐불 정책으로 고향인 신라로 돌아와야 했다. 그 유학승들에 의해 한반도에 선종이 들어왔다. 변방에서 일어나기가 무섭게 교학 중심의 중앙 귀족불교를 빠르게 잠식했다. 그 선종의 중심에 구산선문(九山禪門)이 있다.

책은 황해도 해주에서 장흥까지 9개 지역에 문을 열었던 구산선문의 답사기다. 수미산문인 황해도 해주 광조사지는 북한에 있는 관계로 직접 가지 못했지만, 나머지 지역은 발로 답사해 그곳에 담긴 인물과 유물, 역사 속 향기까지도 꼼꼼히 담아냈다. 1300여년 세월의 부침 속에 창건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 있는가 하면 흔적으로 옛 영화를 반추하는 곳도 있었다. 책은 사찰과 사지, 문화재를 화려한 도판 50컷에 담았다. 글 말미 답사노트에 절과 스님 관련 문화재, 사찰사지에 대한 정보 등 폭넓은 자료를 수록했다. 전형적인 답사기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 구산선문의 하나인 양양 진전사지삼층석탑.

그러나 답사기로만 보기에는 깊이가 남다르다. 책은 선(禪)에 담긴 인문정신을 말한다. 구산선문의 정신은 고통받는 민초들의 삶과 맞닿아 있다. 구산선문을 개창했던 선사들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만큼이나 민초들의 삶을 억압했던 골품제를 타파하고 불성에는 귀천이 없음을 설파했다. 누구나 지금 이 자리에서 깨달을 수 있다는 가르침은 이방인이었던 민초들을 세상의 중심으로 불러들였다.

책은 나말여초를 살았던 선사들의 흔적을 통해 불안한 이 시대에 지혜의 불빛을 드리우고자 한다. 무전유죄, 흙수저와 헬조선이라 불리는 암울한 이 시대를 향해 구산선문을 개창했던 선사들은 어떤 메시지를 남겼는지 끊임없이 반문하는 이유다. 선사들의 치열했던 삶의 흔적과 시대정신을 찾으려는 노력이 격조 있는 인문서적을 읽는 듯하다. 1만6000원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333호 / 2016년 3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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