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대승불교의 주인공들 ①
10. 대승불교의 주인공들 ①
  • 김정빈
  • 승인 2016.03.0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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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불교’ 향한 비판적 시선 등장

학자들은 부처님께서 살아 계셨던 당시의 불교와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 백 년 경까지의 불교를 근본불교(원시불교) 시대로, 그 이후 400 년 동안 불교 교단이 20개 교파로 나뉜 시기를 부파불교 시대로 분류한다. 대승불교는 부파불교를 비판하면서 출현하여 초기, 중기, 후기에 걸쳐 800여년 동안 세 번째 시기를 이루었다.

초기불교 수혜·증혜 중시 
부파에선 사혜가  중심되며 
직관적 통찰이 지혜 대신해
깨달음서 멀어지는 부작용


부처님께서 살아 계시던 당시 불교인들은 부처님을 직접 뵙고 신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높은 경지를 성취할 수 있었다. 또한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 100년 동안에도 부처님께서 살아 계시던 때에 준하는 수행 성과를 올릴 수 있었는데, 그것은 그때까지는 부처님을 직접 뵙고 수행 지도를 받은 비구(비구니)들이 부처님의 역할을 대신했기 때문이었다.

부파불교 시대에 접어들자 승려들의 지혜 수행(혜학)은 사변적인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불교는 지혜를 문혜(聞慧: 들어서 얻는 지혜), 사혜(思慧: 생각으로써 얻는 지혜), 수혜(修慧: 닦아서 얻는 지혜), 증혜(證慧: 깨달음으로써 얻는 지혜)로 분별한다. 이 점에서 초기불교 시대의 승려들이 수혜와 증혜에 중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고, 부파불교 시대의 승려들은 사혜를 중심으로 신행했다고 할 수 있다.

사혜는 곧 철학적인 지혜인데, 불교는 본래부터 철학적인 요소가 강한 종교이므로 부파불교 승려들이 철학에 몰두했다는 그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다만 근본불교 시대의 불교철학으로서의 사혜는 수혜를 위한 기초로서의 사혜라는 측면이 강했는데 그것이 부파불교 시대로 접어들면서 그 자체가 중요한 사혜로, 사혜가 증혜를 대신하는 면이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달랐고, 그 점에서 문제가 있었다.

불교가 말하는 증혜는 알음알이로써의 지혜(사혜)가 아니다. 그것은 머리를 굴려서 얻어지는 좌뇌적인 지혜가 아니라 깊은 선정 속에서 직관적으로 통찰된 지혜인 것이다. 바로 이 지혜가 근본불교 시대에는 풍부했었다. 부파불교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 면이 약화하였고, 그러자 승려들은 그 면을 사혜, 즉 철학적 사색으로 메꾸었던 것이다.

물론 어느 종교에든 철학이 있고, 또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만 종교에 있어서 철학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종교에서 철학은 2차적인 수단이고 1차적인 목적은 불교로 말하면 해탈(열반), 기독교로 말하면 구원(천국)인 것이다. 근본불교 시대는 이 종교적인 목적이 생동했었다. 그렇지만 부파불교 시대에 접어들면서 목적보다 수단이 강조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고 볼 수 있는 면이 있다. 교조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교조의 감화력이 감퇴하고 그럼으로써 종교 분위기가 변한다는 점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이다. 기독교 또한 그러했다. 그들에게도 예수 생존 시와 사후 시기는 달랐고, 그 결과 자신들의 믿음을 철학적으로 설명하는 시기, 즉 아우구스티누스 등 이른바 교부들이 등장해야만 했던 시기가 있었다.

이렇듯 불교를 철학적으로 이끌어간 부파불교는 한편으로는 부정적인 면을 갖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면을 갖고 있다. 긍정적인 면에서 부파불교는 부처님·업·윤회·수행법 등의 개념을 정밀하게 분석, 정의함으로써 신자들의 불교를 발전시켰고, 부정적인 면에서는 불교를 자신의 본질인 깨달음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이끌어갔다. 이중 부정적인 면이 불교인의 수가 많아진 현상에 의해 증폭되었다. 신자의 수가 는다는 것은 지적 능력이 적은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지적인 능력이 적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감성적인 능력이 풍부한 경우가 많다.

감성적인 신자들은 철학적인 사변으로 기울어진 불교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불교를 부처님 당시의 불교로 되돌리고 싶어했다. 그 요청은 날이 갈수록 뜨거워졌고, 약간의 변화로서의 개선이 아닌 결정적인 변화로서의 개혁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개혁을 위해서는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했다. 전국으로 퍼져나가 도시마다 시내 한복판에 있었던 불사리탑, 그 탑에서 신행하던 이들이 개혁 불교의 지도자로 등장하였다.

김정빈 밝은불교신행원장 jeongbin22@hanmail.net
 

[1334호 / 2016년 3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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