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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양변을 오가는 세속의 모순

기자명 성원 스님

좋은 날씨란 도대체 어떤 날씨일까요

▲ 일러스트=강병호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립니다. 3월인데 올해 날씨는 종잡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만날때다 지구 온난화 걱정을 이야기 했는데, 오늘은 빙하기라도 걱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개성공단 폐쇄로 힘든 지인
힘없는 백성만 고통 받는데
잘했다며 박수치는 사람도
무슨 주장이든 내 입장일 뿐

변덕스럽기는 날씨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내 맘도 날씨에 버금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한 번 글쓰기를 딱 멈춘 적이 있었습니다. 써놓은 글을 보니, 그때 심정으로 8할 이상이 못난 내자랑, 내주장이었습니다. 순간 어찌나 부끄럽던지…. 뿐만 아니었습니다. 글에는 막상 내가 그토록 담고 싶었던 삶의 모습은 흔적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러고 글을 쓰다니….

뭐 거창한 문장가는 아니었지만 혼자 절필했습니다. 당시 막 강원공부를 마치고 안거 때마다 참선하겠다며 선원으로 쫓아다니던 때였습니다. 그 당시 나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던 것은 바로 금강석보다 단단해 조금도 부숴지지 않는 내 마음, 소위 아상의 군상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때는 나 자신을 뽐내거나 자아에 대한 조그마한 생각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완전히 부숴내야 할 것이 자아’라고 여기며 ‘자아에 대한 집착은 석고보다 더 빨리 내 맘에 굳어져 간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몇 년 안 가서 또 쓰기 시작했네요. 뭐, 나 자신이 대단한 것도 아닌데. 요사이 말로 굳이 하자면 ‘재능기부’ 차원에서 필요한 곳에 글을 써주게 되었답니다. 이제 다시 맘 비우고 지난 글들을 바라보니, 부끄러운 내 모습 아니 담긴 곳 없고, 그토록 드러내고자 했던 내 주장은 자랑에 묻혀 힘을 잃어있더군요.

참으로 좋은 글이란 어떤 글일까요?
좋은 날씨가 어떤 날의 날씨입니까?

추운날씨를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봄 좋다고 날 잡아 나서는 상춘객이 있는가 하면, 나른한 봄날을 짜증내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옛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개성공단에 작은 공장을 운영하던 친구는 크게 한숨을 쉬면서 “세상 도무지 더럽고 힘들어 못살겠다”며 괴로워했습니다. 몇 년 전 북측에서 일방적으로 폐쇄하는 바람에 엄청난 피해를 봤었답니다. 다행이 남북 양측의 협의가 잘되어 ‘다시는 공단 문 닫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합의를 했었답니다. ‘이제는 어떻게 되겠구나.’ 잔뜩 희망을 품고, 아픔을 딛고 일어나 보려 했는데. 이번에는 우리 측에서 공단을 폐쇄하겠다고 하니 힘없는 백성들만 그 아픔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이런다고 하니 뭘 어쩌겠습니까. 그런데 몇몇 관점이 다른 사람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공단 폐쇄를 칭찬하고 있네요. 북쪽을 길들일 마지막 기회라 하면서요. 한쪽에서는 애간장을 끊어내는 듯한 아픔으로 몸부림치고 있는데 말입니다. 정말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곳이 모순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바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사바라는 말 속에는 모순이라는 말과 감인(堪忍)의 의미가 중첩되었다고 하지만 어찌 보면 한 가지 뜻인 것 같습니다. 모순이니 참고 견뎌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쯤 되면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그 아픔을 달래셨는지, 각자의 입장에서 주장하는 사람들을 기분 상하지 않게 말리셨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혜가 충만하지 못한 우리 중생들은 누군가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또 다른 내 주장에 불과하겠지요?

문수보살의 이야기는 언제 봐도 참으로 맘에 와 닿습니다. 한문으로 된 예식문을 우리말로 바꾸고자 자꾸 다듬어보는데 우리말로 바꾸어 놓고 보면 그 애절함이 절절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가톨릭의 교리나 사상적 측면을 떠나 성직자들의 전유물 같이 여겨졌던 성경이 일반 대중들이 사용하는 모국어로 번역되고, 예식문이 자국어로 번역된 것이 프로테스탄트 출현의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도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불자들이 불교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 신라인들 같은 애절한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는 이유를 저는 예식문이 우리말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 확신합니다. 신라 원효 스님이 쓰신 ‘발심수행장’을 읽다보면 원효 스님과 저와 그리고 독자 사이에 엄연히 존재해야 하는 1200년의 세월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원수애납수!
원수애납수!
원수자비애납수!

이렇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말로 매일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불자들에게 깊고 간절한 마음이 얼마나 우러나겠습니까?

원하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저희들의 공양을 받아주시옵소서!
원하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저희들의 공양을 받아주시옵소서!
원하오니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주시옵소서!

우리들에게 우주의 실상을 이야기하시고자 일상에 바쁜 우리들을 모여라, 앉아라, 졸지 말라고 하시지 않으시고, 그저 저희들 곁에 오시어 따스한 눈길로 저희들을 물끄러미 지켜봐 주시는 문수보살과 여래(如來) 응공(應供) 부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찌 현대인이라고 다보탑, 석가탑을 쌓아 불국토를 장엄하던 저 계림사람들 같이 진실로 간절한 마음이 아니 일어나겠습니까.

오늘도 수많은 견해들이 난무하고 그 양변을 오가며 괴로워하고 힘겨워하는 저희 사바세계 중생들에게 용서할 원수마저 두지를 말라 가르쳐주신, 양변을 여의시고 중도의 대 자유를 얻으신 부처님께 언제나 귀의 합니다.

어제는 지난 1년 동안 준비한 저희 리틀붇다 어린이 합창단의 여섯 번째 공연이 있었습니다. 스토리가 있는 합창 ‘헌공다례-부처님께 감로차를 올리나이다’를 주제로 펼쳐진 공연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하시어 어린부처님들이 아름다운 합창으로 부처님께 봄이 오는 남도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저희들의 공연에는 특별히 제주 중국 총영사부부께서 끝까지 관람해 주시기도 하셨답니다. 멀리 지리산 서암정사의 함양 상림어린이합창단원들도 와서 무대에 올라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저희 리틀붇다합창단의 활동을 보고 창단한 합창단이라 더 의미가 깊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2월에 제2의 리틀붇다를 꿈꾸며 창단한 부산 영도 대원성재합창단원들도 직접 와서 관람하며 불교 중흥의 꿈을 어린불자들에게 심어주었답니다. 내년에는 꼭 자리를 함께하도록 준비해 두겠습니다.

늘 부처님과 함께하는 봄 되세요.
행복한 사문 성원 드림.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334호 / 2016년 3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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