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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는 시한폭탄이다

기자명 최원형

왜 사냐고 묻는다면 태어났으니 산다고 어쩌면 좀 성의 없어 보이는 대답을 쉽게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이 대답은 생각보다 좀 복잡할 것 같다.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는 ‘행복’이다. 많은 사람들 역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할 거라 생각한다. 재밌는 것은 막상 행복이 뭐냐고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백이면 백가지 대답이 나온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낱말은 다분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어서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누구나 만족할 만큼 똑 떨어지는 답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행복하기를 원한다. 이런저런 상태에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거나, 누구는 행복해 보인다고 추측하는 정도를 우리는 암묵적으로 행복이라고 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유난히 ‘숫타니파타’를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행복’을 빌어주는 구절이 한몫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행복을 염원하다니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경전에 적혀있는 붓다의 이 말씀을 제대로 실천하며 살고 있을까? 아주 작은 미물의 행복마저 마치 외아들을 둔 어미의 심정으로 간절하게 바라는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는 걸까?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가 후쿠시마 일대를 강타했고 그로 인해 해안가에 있던 핵발전소 가운데 오래된 순서로 4개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금까지 지구에서 발생했던 그 어떤 핵관련 사고와는 비견할 수 없는 재앙이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그곳의 상황은 어떤가? 18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떠나온 집으로 되돌아가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다. 핵발전소 주변 땅은 방사능 고농도 오염지역으로 아마도 오랜 시간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될 것이다. 핵발전소 사고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피폭을 감수하며 일회용처럼 쓰이고 있다. 사고 난 뒤부터 후쿠시마에서는 날마다 300톤의 방사능 오염수가 태평양으로 흘러들고 있다. 태평양에 사는 해양생물들은 방사능 오염에서 빗겨갈 수 있을까? 태평양에서 나오는 해산물은 과연 인간에게 안전할까?

핵이 인류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이었다. 핵폭탄과 핵발전소, 이 두 가지는 결코 다르지 않다. 반응속도의 차이일 뿐이다. 오히려 핵발전소에 들어가는 우라늄의 양은 핵폭탄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많다. 그렇게 사용되고 재가 된 우라늄 쓰레기에서는 엄청난 방사능이 발생한다. 문제는 이 쓰레기를 안전하게 처리할 기술이 인류에겐 아직 없다. 적어도 10만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되어야할 핵폐기물은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고스란히 떠넘겨진다. 세대 내 형평의 문제와 더불어 세대 간 정의의 문제를 생각해봐야한다.

핵발전소는 그 자체가 하나의 시한폭탄이고 사고 없이 안전하게 돌아간다 해도 거기서 정기적으로 배출되는 폐기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데, 우리는 과연 행복을 논할 수 있을까?

핵발전소 사고 이후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사람들이 겪고 있는 불행을 보면서 그저 남의 불행이라 간과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땅에는 현재 25기의 핵발전소가 운영 중에 있고, 전기가 남아도는 상황임에도 앞으로 건설 계획인 핵발전소는 10기가 넘는다. 이 좁은 땅덩이 안에 말이다. 세계 최대의 핵발전소 밀집국이라는 ‘오명’도 그래서 얻게 되었다.

‘모모’로 유명한 작가 미하엘 엔데는 역사상 흔히 그래왔듯이 이성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지 않는 경우, 결국 재난이 일어난다고 했다. 인간이 야기한 재난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재난으로 우리의 자손들이 이 행성 위에서 살아가는 것을 어렵게 할 거라고 했다.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을 가로막는 것은 바로 ‘탐, 진, 치’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탐, 진, 치에서 괴로움의 싹은 쑥쑥 자랄 것이다. 필연적인 결과를 보기 전에 이성과 이해로 재난을 막을 수는 정말 없는걸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 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34호 / 2016년 3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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