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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가루다(Garuḍa) 또는 금시조(金翅鳥)

힌두 신화 속 상상의 새가 구원자인 보살 상징물로 묘사

▲ 데오가르(Deogarh)의 비슈누 다샤바타라 사원. 6세기경. 코끼리 가젠드라 왕의 구원 장면을 담고 있는 벽감 조각의 세부. 비슈누가 가루다를 타고 뱀에 잡혀있는 코끼리를 구하기 위해 내려오고 있다.

가루다 또는 가루라(迦樓羅)는 잘 알려졌다시피 팔부신중 가운데 하나다. 금시조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는 독립적인 신장으로서 가끔 한국의 석조상이나 신중탱 속에서 나타나지만, 때론 불교 건축물이나 탑의 장식적 요소로 쓰일 때도 있다. 그러나 이 신의 기원과 의미에 대한 논의와 연구는 매우 희소하며 대체로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다. 한국과 달리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이 신은 매우 흔하여 불교나 힌두 유적지라면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이 신은 대체로 새의 형상으로, 또는 반인반조(半人半鳥)의 모습으로 등장하므로 지붕이나 처마 끝 또는 건축물의 모서리 부분을 장식하기에 적당한 동물로 빈번히 사용되었다. 일반적인 부조나 환조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반인반조 모습으로 나타나
지붕이나 처마끝 등에 장식

불교에서 가루다의 등장은
알렉산더 이후 그리스 영향
혹은 고유 베다 유산의 계승
어느 것인지 아직도 불확실
보살상 터번·입상 형태 조성

가루다는 불교로 수용되기 이전에 본래 고대 힌두 신화 속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였다. 다른 불교의 여러 신중이 그러하듯이, 이 상상의 새와 결합된 신화의 주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된 인도-유럽피언 공동의 신화적 주제를 담고 있다. 그 주제들은 ‘리그베다’ 문헌에서 단편적으로 보이기 시작해 ‘마하바라타’에 잘 묘사되어 나타나 있다. 그 신화적 주제들 가운데는 대표적으로 신들이 생산해낸 불사(不死)의 감로수를 탈취하는 내용이거나, 또는 뱀(혹은 용)과 어떻게 적대적 관계를 맺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내용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신화들은 흥미롭게도 죽음과 영생, 태양과 비, 데바와 아수라, 선악의 대립 등 극단적인 신화적 짝패(counterpart)를 숨겨놓고 있다.

각설하고, 만일 불교 속에서 이 가루다가 단지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 아니라 최소한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것이 갖는 도상적 특성을 묻고자 한다면 이들 신화를 천천히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불경 속에서 묘사되는 가루다의 모습은 초기 힌두 신화의 번안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힌두신화에서 가루다의 탄생은 저 유명한 아므리타만타나(amṛtamanthana), 소위 우유의 바다 휘젓기 신화와 연결되어 있다.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를 보면 이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 네팔 파탄(Patan) 물 촉(Mul Chok) 내부의 출입문 토라나 세부. 17세기경. 가루다가 양쪽 손으로 각각 나가와 나기를 붙잡고 있다. 가운데에 아래쪽에는 아마도 두르가 여신이 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데바와 아수라들이 협력하여 불사의 감로수를 만들어 냈을 때 그 창조의 장면을 멀리서 두 여인이 지켜보고 있었다. 비나타(Vinatā)와 카드루(Kadrū)가 그들이었는데, 이들은 그 감로수 창조과정에서 만들어진 말(馬)의 색깔을 놓고 내기를 하는 중이었다. 본래 현자 카샤파의 부인들이었던 이 두 자매는 카샤파가 고행을 위해 이들과 떨어지기 전에 자신들에게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그 결과로 카드루는 수천 개의 알을, 비나타는 두 개의 알을 낳는다. 카드루의 알이 일찍 부화해 수많은 뱀의 자식들이 태어난 것과는 반대로 비나타의 알은 수천 년 동안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 조바심에 참을 수 없었던 비나타는 먼저 자기가 낳은 알을 하나 깨뜨려보았다. 거기서 신체가 반쯤 만들어진 아들이 태어났다. 불구로 태어난 아루나(Aruṇa)는 자신의 신체상태가 어머니의 조급증에 의한 것임을 깨닫고 비나타를 저주하며 떠나버린다. 평생 노예상태로 살아갈 것이라는 저주였다. 아직 비나타의 알 하나는 깨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비나타와 카드루는 데바와 아수라들의 감로수 창조과정을 지켜보면서 내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드루의 속임수로 색깔 알아맞추기에 실패한 비나타는 결국 자신의 동생 카드루와 그의 자식들인 뱀들의 노예가 된다.

오랜 시간이 흘러 마침내 비나타의 마지막 알이 부화하고 거기서 태양과 같이 찬란한 황금색의 새가 탄생한다. 가루다의 탄생이다. 가루다를 보통 금시조(金翅鳥)라 부르는 이유는 여기서 기인한다. 황금 깃털을 가진 새라는 뜻이다. 가루다를 수파르나(suparṇa)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새라고 부르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어머니 비나타를 끔찍이 사랑한 가루다는 비나타가 노예상태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뱀들과 거래를 하게 된다. 철옹성과 같은 신들의 성에 숨겨져 있는 불사의 감로수를 훔쳐오면 어머니를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다. 결국 가루다는 지략과 용맹함으로 이 감로수를 얻어 어머니를 구속에서 벗어나게 한다.

힌두교에서 가루다는 흔히 최고의 신 비슈누가 타고 다니는 동물로 묘사되는데, 이 또한 이 신화 속에서 나타난다. 하늘에서 감로수를 훔쳐오는 도중에 가루다는 비슈누와 마주하게 되고 가루다의 용맹함과 효심을 알아챈 비슈누는 가루다와 거래를 한다. 가루다에게 불사를 약속하는 대신 영원토록 자신을 태워 다닐 것을 부탁한다. 비슈누의 승물(乘物 vahaṇa)로서 가루다는 조각상에서 반인반조나 온전한 새로 표현된다.

수많은 가루다의 형상 속에서 우리의 눈길을 잡는 것은 뱀을 물고 있거나 잡아채는 모습이다. 이는 앞의 신화 속에서 보듯이 긴 악연의 결과다. 가루다는 불사의 감로수를 뱀들에게 갖다 주고 어머니를 해방시켰지만, 뱀들이 그 감로수를 마시기 전에 인드라가 감로수를 다시 찾아갈 수 있도록 계략을 써서 도왔던 것이다. 가루다가 신들에게서 감로수를 훔쳤지만 그들의 협력자가 되고 뱀들을 자신의 먹이로 삼을 수 있도록 인드라로부터 허락을 얻는다.

▲ 브리티시 뮤지엄. 12세기경의 인도네시아 가루다 신상.

불과 태양을 상징하는 가루다와 물과 비를 상징하는 뱀(나가 Nāga)의 상반된 이미지는 이렇게 결합된다. 또한 불사의 감로수와 뱀의 테마는 확실히 길가메시 서사시를 연상시킨다. 이 테마가 지중해 연안에서 또는 아주 오래전 인도 땅에서 회자되었던 것만은 거의 확실하다. 가루다-뱀, 또는 새-뱀-감로수의 테마는 인도의 비슈누 신앙이나 불교 신앙이 존재하기 전부터 별도의 신화소로 유통되었을 가능성도 높으며 필요에 따라 각색되거나 적절히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문헌상의 내용이건 조각의 모티프이건, 불교 내에서 가루다-나가의 테마가 등장한 것이 알렉산더 이후 그리스의 영향이었는지 또는 고유의 베다적 유산을 계승한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마하바라타’ 등의 문헌적 단서들 외에 도상적 단서로서 우리는 기원후 2∼3세기경의 간다라 불교 조각상을 통해 이 주제를 확인할 수 있다. ‘본생담’이나 대승경전의 불확실한 상대적 성립시기를 고려한다면 이러한 유물은 비교적 가장 이르고 확실한 불교의 가루다 수용을 보여준다. 남자나 여자로 형상화된 나가(뱀)를 잡고 있는 가루다의 모습이 보살상의 터번에 장식되거나 독립 입상의 형태로 조성되기도 한다. 힌두교에서 유래한 다른 신중과 달리, 다소 낯선 가루다-나가의 테마가 불교 내에 들어온 것은 주목할 만하다. 아마도 국내에서 유일하게 이 주제를 다루었던 이주형 교수는 간다라 보살상 머리의 가루다 장식에 대해 논의하면서 이를 구원자로서의 보살이 가질 수 있는 일반적 상징물로 해석한 바 있다.

이 해석은 힌두교 내에서 우주적 율법자 비슈누(持法輪者)가 빈번히 구원자로 등장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예를 들어 가루다를 탄 비슈누가 악어(마카라)의 족쇄에 걸려 있는 코끼리 가젠드라(gajendra)를 이러한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해탈’시키는 사례와 같다. 이는 구원자를 염원하는 신자의 부름에 신속히 요청하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힌두 미술에서 이 주제는 많은 경우 가루다가 강조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불교에서 전법륜자(轉法輪者) 붓다나 그 경지에 가까운 보살을 가루다나 가루다-나가의 모티프를 통해 구원자로 묘사한다. 이것은 번뇌에 빠진 중생을 신속하고 강력하게 구원하고자 하는 구원자(해방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지도론’에도 마치 가루다가 뱀에 의해 속박되어 있는 중생을 구하듯, 삼계의 번뇌에 빠진 중생을 구하는 붓다의 위신력을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가루다는 구원자로서의 비슈누와 붓다를 대변하는 중요한 상징적 동물이다.

한편 이 가루다는 구원론적 종교의 상징물일 뿐 아니라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왕권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세속적 왕권은 비슈누나 붓다와 마찬가지로 율법을 행사하거나 대행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트리(Bhitr-l)에서 출토된 문장과 비문을 통해서 또는 굽타시대의 주화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그 이전 시대부터 이 가루다의 상징이 종교적 유적 속에서도 왕권이나 귀족의 신분을 암시하는 표징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루다의 형상은 비교적 동아시아에 잘 전달되었으나 왕권의 의미나 구원자의 의미로 사용된 바는 잘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네팔이나 캄보디아, 또는 인도네시아 등의 수많은 가루다-나가 모티프 속에서 그런 의미를 해석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지역은 가루다의 형상을 가장 널리 사용한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네팔과 캄보디아의 사원과 왕궁 출입문 상인방 위에 걸리는 토라나의 장식은 가루다-나가의 모티프가 가장 대표적이고 인상적이다. 이 경우에도 숭배대상의 바로 머리 위쪽으로 가루다가 나가(뱀)를 물고 있으며, 나가의 꽃다발 같은 긴 몸통은 마치 신상이나 불상을 감싸듯 드리우게 된다. 이 때 대부분은, 가운데 새겨진 신상이나 불상보다도 그 머리 위쪽의 가루다가 훨씬 크게 강조된다. 

심재관 상지대 교양과 외래교수 phaidrus@empas.com

[1335호 / 2016년 3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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