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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도 비껴간 노보살님 모정

딸 위한 40년 촛불기도 눈길
자식사랑은 흔해도 늘 고귀
가족 소중함 아는 게 ‘지혜’

불교에서는 부모자식 관계를 가장 깊은 인연으로 본다. 누군가는 전생에 아주 절친했거나 원수였던 인연이 현생에 부모자식으로 만난다고 말한다. 요즘 언론에서 부모가 어린 자식을 모질게 학대해 살해했다거나 거꾸로 자식이 늙은 부모에게 패륜을 저지른 보도를 접할 때면 정말 그런가 싶기도 하다.

한국일보(3월16일자)에 보도된 ‘총경 딸 키운 40년 촛불기도’ 기사는 그래서 더 눈길이 간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지극한 사랑이 보편적임을 새삼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기사에 따르면 며칠 전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단독주택에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출동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곳은 손바닥만 한 뜰이 있는 작은 집으로 80대 중반의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소방관들이 도착했을 때 불길은 뜰의 탁자에서 집 안으로 옮겨붙고 있었다. 조금만 지체하더라도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소방관들이 어렵게 안에 진입한 뒤에야 불은 완전히 꺼졌고 사건 내막도 드러났다.

할머니는 딸과 단둘이 살았다. 할머니는 딸을 위해 40년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뜰에 불단을 마련하고 기도를 드렸다. 그런 딸이 장성해 순경이 되고 지난 1월에는 총경으로 승진했다. 딸은 총경 교육을 받기 위해 집을 비워야 했다. 기도를 마칠 때마다 촛불을 꺼주던 딸은 혼자 계실 땐 절대 초를 켜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노모의 마음은 달랐다. 40년간 매일 그랬듯 이날도 소중한 딸을 위해 촛불을 켰다.

기도를 마친 할머니는 방에 들어와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런데 촛불 끄는 일을 잊었다. 불꽃은 소원을 적은 종이로 옮겨갔다. 그 불이 다시 탁자를 태운 뒤 창문을 타고 방안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타는 냄새에 잠을 깬 할머니가 양동이로 불을 끌 때 소방관들이 들어왔던 것이다. 신문기사는 할머니가 가족에게 연락하려는 소방관들을 극구 말렸으며, ‘검게 그을린 벽과 마당을 쓸면서도 “기도하러 절에 가야 하는데 공양미가 젖었다”며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일반적으로 흔치 않은 일이라야 기삿거리가 된다. 하나 부모의 자식 사랑은 흔하디흔한 일이다. 자식 과외비 벌려고 종일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도, 아내와 아이를 외국으로 떠나보낸 기러기 아빠도, 나이 든 백수아들 뒷바라지하는 노인도 모두 자식사랑에서 비롯됐음은 분명하다. 그것이 바람직하냐 아니냐에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자식에 대한 애틋함은 촛불 켜고 기도드리는 그 노모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불경에서도 부모의 사랑을 찬탄하는 사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부모은중경’에서 부처님은 “여인이 아이를 출산하려면 서 말이나 되는 피를 흘리고 여덟 섬 네 말이나 되는 젖을 먹여 키운다. 여인의 뼈가 가볍고 검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씀한다. 초기경전인 ‘앙굿따라니까야’에도 “평생 한쪽 어깨에 어머니를 태우고 다른 한쪽 어깨에 아버지를 태워드리며 봉양하더라도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다”고 단언했으며, ‘대승본생심지관경’에서 부처님은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다.

▲ 이재형 국장
“어머니가 계시는 것을 부자라 하고, 어머니가 계시지 아니한 것을 가난하다고 하며, 어머니가 계실 때를 한낮이라 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때를 어두운 밤이라고 한다.”

행복은 특별한 데 있지 않다. 어쩌면 지금 내 가족의 인연이 얼마나 지중한지를 깨닫는 것, 그것이 참다운 지혜이자 행복의 시작은 아닐까.

이재형 mitra@beopbo.com

[1336호 / 2016년 3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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