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에 땅 뺏기고 종단은 비난 몰매

  • 교계
  • 입력 2016.03.22 11:36
  • 수정 2016.03.22 11:38
  • 댓글 0

[탐사보도]1970년 봉은사 토지매각 사건 전말-3. 불교계 반발과 저항

▲ 1970년 7월 조계종 중앙종회에 제출된 봉은사 토지 매각 반대 청원서.

봉은사 토지매각 사건으로 조계종은 불교계 안팎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극심한 홍역을 치러야 했다. 유서 깊은 전통사찰의 삼보정재가 종단 집행부의 서투른 결정으로 대부분 유실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매매 계약이 은밀히 진행됐고, 정부권력의 강압은 법적 절차 뒤에 가려지면서 종단 집행부를 향한 오해와 불신만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됐다. 사실상 봉은사 토지 매각은 국가권력에 의해 추진됐지만, 이에 따른 반발과 책임은 모두 종단으로 떠넘겨졌다.

삼보정재 유실에 파장 확산
정부강압은 베일에 가려지고
집행부 향한 오해·불신 증폭
봉은사 토지 부당매각 규명은
한국불교 역사바로잡기 초석

봉은사 토지 매각에 대한 문제제기는 ‘무소유’ 법정 스님의 기고문에서 처음 비롯됐다. 법정 스님은 조계종과 윤태진(가명, 정부 대리인)이 1970년 1월18일 봉은사 토지 매매 계약을 체결한 것과 관련, 그해 2월8일자 대한불교신문에 ‘침묵은 범죄다’라는 기고문을 게재했다. 스님은 기고문에서 봉은사 토지 매각의 성급함, 그리고 그 필요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던졌다. 특히 “(굳이 봉은사 토지를 팔아야 한다면) 제6한강교가 준공된 후 처분하면 지금의 몇 곱을 받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더욱 적절한 불교회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눈앞 일만 생각하고 쫓기듯이 바삐 서두르는 걸 보면 무언가 석연치 않다”고 꼬집었다.

이는 당시 매각 사태를 바라보는 불교계의 보편적 시각이기도 했다. 봉은사 토지 매각의 목적이 불교회관 건립에 있다면 매각 시기를 조율하거나 다른 유휴지를 물색하는 등 더 나은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조계종은 봉은사에 비해 역사적 가치나 지리적 여건이 현저히 떨어지는 건물을 매입하기 위해 ‘쫓기듯’ 매각을 서둘러 의혹을 키웠다.

이런 가운데 봉은사 주지 서운 스님을 비롯한 사찰 대중들의 반발도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졌다. 1970년 1월22일 봉은사 대중 강우일 스님 등 9명은 문공부에 진정서를 냈고, 이어 2월11일 주지 서운 스님은 본인 명의의 토지매각 위임장이 ‘무효’라고 주장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그럼에도 매각 계획이 철회되지 않자 스님은 3월6일 문공부 등에 진정서를 내고 “총무원의 몇몇 몰지각한 스님들이 봉은사 토지 약 10만평을 공무원연수원 매입 명목으로 문공부 장관의 허가도 없이 모 특정인에게 팔려고 하고 있다”며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청했다. 3월7일 봉은사 신도 200여명도 박정희 대통령 앞으로 매각 저지를 위한 탄원서를, 30일 문공부 장관에 같은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매도인을 ‘모 특정인’이라고 지칭한 것은 당시 조계종과 계약을 체결한 매도인 윤태진(가명)이 서울도시개발과장이며 정부의 대리인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런 까닭에 봉은사 대중의 반발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더욱이 문공부는 4월6일 조계종 종정과 총무원장에 해당 문서를 첨부한 공문을 발송해 ‘향후 유사한 일이 야기되지 않도록 조치하라’고 통보한다. 이 시기는 봉은사 매각에 대한 문공부의 승인이 나기 이전이었다. 법적으로 문공부 허가 전 매매 계약을 체결한 것은 명백한 불법임에도 문공부는 이에 대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셈이다.

거듭된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불교계는 더욱 거세게 반발했다. 1970년 7월15~17일 제23회 조계종 임시중앙종회를 앞두고 전국젊은승려회가 출범해 봉은사 토지 매매에 대한 건의문을 발표하고 50여명의 스님이 이를 저지하기 위한 시위에 나섰다. 또 종단 원로 지효 스님 등이 수행을 중단하고 청원서를 발표하는 등 불교계 반발은 들불처럼 번졌다. 당시 경향신문을 비롯한 주요 언론들은 봉은사 매각 사건과 관련한 중앙종회 사태를 주요뉴스로 보도했다. 결국 이날 종회에서 총무원장 월산 스님은 봉은사 매각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으며 후임으로 원로의원 청담 스님이 사태 수습을 위해 다시 총무원장으로 선임됐다. 8월10일에는 조계종 원로이자 감찰원장이었던 김상호 스님이 “봉은사 임야 매각 문제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며 사퇴를 선언해 파장이 확산됐다.

이처럼 빗발치던 불교계 반발은 9월 이후 조계종이 윤태진 개인이 아닌 상공부와 정식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크게 위축됐다. 이는 당시 국가권력이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의혹과 불신이 해소된 것은 아니어서, 종단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갈등이 지속됐다. 종회마다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이에 따른 조사와 감사가 수차례 반복됐다. 애초 봉은사 매각 사건 당시 불교계가 반발한 대표적인 이유는 유서 깊은 전통사찰의 매각이 급박한 시일에 불합리한 방식과 과정으로 진행됐기 때문이었다. 특히 종단이 봉은사를 배제한 채 헐값으로 봉은사를 매각하는 불리한 계약을 서둘러 체결한 데는 매각을 주도한 몇몇 스님들의 부정이 있었을 것이란 의혹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지속된 종단 차원의 조사·감사를 통해 확인된 것은 계약 성사를 위한 서류 조작 및 계약 자체의 부당성 등의 하자였다. 의혹이 난무했던 금전적·정치적 부정은 이후에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봉은사 토지 매각으로 종단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고 매각에 관련된 스님들의 명예도 심각히 훼손되는 등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이후 봉은사는 무너진 사세를 복구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소모하는 등 숱한 고난을 겪어야 했다. 최근 조계종이 당시 봉은사 매각 사건에 대해 “사실상 국가권력에 의한 강제수용”이라고 규정하고 환수위원회를 꾸려 대대적인 환수 절차에 돌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환수위는 “종단 차원에서 당시 봉은사 토지 매각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과거의 잘못을 되돌려 이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고 사찰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위함”이라며 “국가권력이 전통사찰의 토지를 강제 수용하고 이용한 지난날의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야 말로 한국불교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1336호 / 2016년 3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