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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에서의 단상

기자명 성화 스님

얼마 전 불자님들과 함께 고타마 싯다르타가 태어난 네팔의 룸비니, 태자시절 아시타선인 예언 때문에 그의 출가를 막으려고 각 계절에 살기 좋게 지은 삼시전 터, 유성출가하여 교진여 등 5비구와 수행했던 비하르의 둥게스와리 지역에 있는 전정각산 유영굴을 찾았다. 또 6년 고행으로 피폐해진 몸을 다스리기 위해 수자타 여인의 유여열반 공양을 받은 수자타 마을, 모든 마구니의 유혹을 물리치고 마침내 정각을 이룬 보리수나무가 있는 보드가야 마하보디사원, 초전법륜지 녹야원, ‘금강경’ 설법지 기원정사, ‘법화경’ 설법지 영축산 그리고 춘다의 무여열반 공양을 받으시고 열반에 드신 사라쌍수가 있는 쿠시나가라 등도 순례하였다.

출가 이래 부처님 생애에 대해 수없이 들었고 스스로 책을 보며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직접 부처님이 태어나고, 자라고 출가한 곳을 찾아가니 출가를 고민했던 젊은 날의 아픔이 다시 회상된다.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신 마하보디사원은 첫 눈에도 영지(靈地)임을 느끼게 했고,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수많은 순례자가 부처님을 친견한 듯 환희심으로 수행 정진하는 모습은 말이 필요 없는 성스러움이 가득했다. 마하보디사원을 이미 다녀갔거나 지금 있거나 미래에 올 순례자도 환희심과 성스러움 그리고 재발심하는 인연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성지순례에서는 이런 환희심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러 성지를 버스를 타고 장시간 다니면서 현장에서 만난 현지인의 삶은 너무 비참해 보였다. 허름한 집과 도로 곳곳에 쌓여있는 소똥, 그리고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초췌한 모습, 그들 모두가 불가촉천민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삶은 힘들어 보였다.

인도는 면적이 328만7263㎢로 세계에서 일곱 번 째로 넓은 나라이고, 인구도 12억3600만여명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고, GDP도 우리나라보다 앞선 세계 7위의 부유국이지만 인구의 15%가 이런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게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언론과 구전(口傳)을 통해 이미 접했던 사실이긴 했지만 막상 직접 목격하니 충격 그 자체였다. 성지에 도착할 때마다 차에서 내리는 관광객을 향해 달려드는 어린이와 간난아이를 안은 여인들. 서로 관광객이 내미는 돈을 차지하려고 싸우고 밀치고 하는 모습이 그들의 삶을 대변했다. 지구에 지옥이 있다면 그들의 삶이 지옥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중생의 고통을 함께 하지 못하는 마음에 가슴이 저미어왔다. 그들의 얼굴에서 문득 “대한민국은 행복하고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저들보다 물질적으로 풍족하다고 해서 과연 행복한걸까? 각종 대형사고가 난무하고, 돈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일이 매일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대한민국은 과연 저들보다 행복한 나라일까. 남북이 극심하게 대립하고, 정치권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연일 추잡한 싸움을 하고, 먹을 게 없어 굶어죽는 사람이 많은데 쌀이 남아 소·돼지 사료로 쓰고, 모든 국정의 가치를 돈버는 것에 초점에 맞추는 나라. 이 때문에 노동계와 극한 대립을 하는 대한민국도 지옥은 아니어도 아귀 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다. 새삼 그들에게 무연자비(無緣慈悲)가 아닌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본 내 생각이 잘못됐음을 깨닫고 참회를 했다.

부처님은 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잘 다스리라고 강조하셨다. ‘금강경’을 말씀하실 때에는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을 버리고 현삼공(現三空)하라”고 당부하셨다.

기원정사에서 ‘금강경’을 독송했다. 그럼에도 몸과 마음, 뼛속까지 가득한 자본주의 망령이 정견(正見)을 갖추지 못하고 겉만 본 내 아둔함을 참회했다.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 선입견을 버리고 마음속 부처님을 친견하고 신심을 증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이런 소중한 인연에 감사하고 스스로 거듭날 것을 다짐해 본다.

성화 스님 조계종중앙종회의원 wing7020@hanmail.net


[1337호 / 2016년 3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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