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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의 희생자 양무제

양무제 속 좁은 인물로 폄하
달마와 문답은 잘못된 역사
양무제 복권이 불교사 정립

올해 11월17일 시행되는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한국사가 절대평가 방식의 필수과목으로 지정된다.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고구려와 발해를 자국의 역사에 포함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지역을 지배했다는 주장에 맞서 우리의 역사관을 새롭게 다지자는 취지가 강하다.

사실 역사왜곡이 꼭 외부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 불교계도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 중 양무제(464~549)에 대한 왜곡과 폄하는 지나치다. 최근 출간되는 선 관련 책들에서도 양무제에 대한 얘기들은 천편일률적이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양무제가 자신의 업적을 자화자찬하며 달마에게 그 공덕을 묻자 “없다[無]”라고 대답했다. 달마는 양무제가 근기가 낮음을 알고 떠났으며, 모멸감을 느낀 무제가 달마를 죽이려 자객을 보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양무제는 자신이 이룬 불사에 탐착하고, 지혜가 얕으며, 속 좁은 인물로 기억된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전혀 다르다.

5~6세기 때 인물인 달마는 ‘낙양가람기’(547년)와 ‘속고승전’(645년)에 등장한다. 달마의 생존 시기와 가장 가까운 이들 문헌에 두 사람이 만났다는 기록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그러면 달마가 양무제를 만났다는 기록은 언제부터 나올까. 8세기말 선종 계열 문헌인 ‘역대법보기’에 잠깐 언급된 뒤 송나라 때 문헌인 ‘경덕전등록’은 양무제와 달마가 527년 10월1일 만났다며 날짜까지 명시해 기정사실화 했다. 이어 ‘벽암록’에서는 지공대사를 등장시켜 무제를 눈 뜬 장님 취급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수백 년간 없던 양무제와 달마의 얘기가 선종 문헌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흔히 역사학계에서 달마와 양무제가 만나지 않았다고 간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 양무제는 어떤 인물일까. ‘보살황제’ ‘불심천자’라고 불렸던 그는 동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숭불 황제로 꼽힌다. 수많은 사찰을 건립하고 수백 권의 경전을 직접 풀이해 배포함으로써 불교의 기반을 다졌다. 출가자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동아시아불교 전통도 그의 ‘단주육문(斷酒肉文)’에서 비롯됐으며, 그 스스로도 음욕을 삼가고 평생 하루 한 끼 식사를 했다. 또 무차별 살생을 금지시켰으며, 불교 비판 세력들에 맞서 이론적인 체계를 세웠다. 백제 법왕과 신라 법흥왕을 비롯한 많은 숭불 임금들이 양무제를 본받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양무제의 마지막은 비극적이었다. ‘금강경’을 32장으로 분류한  그의 큰 아들이자 희대의 천재 소명태자가 일찍 죽었으며, 자신도 부하의 반란으로 유폐돼 굶주림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때문에 어떤 이는 “양무제의 공덕은, 진짜 없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죽음의 양상만 놓고 한 사람의 공덕 유무를 단정 짓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랜 세월 부처님을 도왔던 빔비사라왕은 자식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이교도의 폭행으로 죽은 목건련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달마의 제자 혜가도 죽음의 형태로만 보면 사뭇 비극적이다.
 

▲ 이재형 국장

선어록의 찬술자들이 양무제를 등장시킨 것은 선종 초조인 달마의 사상과 행적을 신성시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또한 ‘무루법’과 ‘무주상보시’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목적을 위해 누군가를 짓밟는 것은 비불교적이다. 그것을 오늘날까지 답습할 이유가 없다.

왜곡된 역사는 또 다른 현실의 왜곡을 초래한다. 이제라도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다’는 부처님 가르침이 양무제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일평생 불교를 위해 헌신했던 양무제에 대한 복권 노력은 우리 불교의 역사관을 바로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338호 / 2016년 4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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