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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초상화 기법으로 정신까지 담아내다

  • 불서
  • 입력 2016.04.04 18:02
  • 수정 2016.04.0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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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벽은 문이다’ / 김호석 지음 / 선

▲ ‘모든 벽은 문이다’
1998년 서울 인사동 동산방 화랑에서는 이색적인 전시회가 열렸다. 세로 365.5cm, 가로 160cm의 대형 작품 단 한 점이 전시장에 걸렸다. ‘그날의 화엄’이라는 이 그림 앞에 사람들은 연신 탄성을 자아냈다. 성철 스님의 다비식 광경을 묘사한 이 그림에는 다비식의 전 과정이 서사적인 구조를 이루며 거대한 만다라를 이루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제각각 엄숙함과 아쉬움, 슬픔과 기대가 배어있었다. 일감 스님은 당시 이 그림을 보고 “피로 혈서를 쓰듯 손끝을 갈아 피로 쓴 화엄경 변상도”라고 찬탄하기도 했다. 국내 인물 초상화 분야의 권위자였기에 가능한 대작이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전통 초상화 기법을 연구해 현대적으로 계승한 저자가 그린 큰스님들의 모습과 인연 이야기들이 담겼다. 인물화는 그 사람의 외형뿐 아니라 정신세계, 그리고 학문적 성과와 인품까지 그려야 한다. 이 책은 세상에 빛을 던진 선지식들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려는 저자의 고민과 작업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애초 저자는 현장에 바탕을 둔 수묵운동에 참여해 역사화, 농촌풍경화, 가족화, 군중화, 동물화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확장시켜왔다. 그가 스님들의 초상화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1994년 여름이었다. 해인사 백련암 원택 스님이 성철 스님의 진영을 그려달라고 요청했고 저자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성철 스님이 수행 공간으로 삼았던 모든 장소를 답사하며 스님의 체취를 느껴보고자 애썼다. 그리고 스님이 영향을 받았거나 말했던 글들을 찾아 꼼꼼히 읽어나가며 스님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저자가 그토록 시간을 쏟은 것은 단순한 외형 묘사를 넘어 고매한 정신세계가 스며있는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서였다. 스님에 대한 생각이 정리될 즈음 외형 너머의 의미까지 다가왔고 그때서야 저자는 붓을 들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그는 성철 스님의 일상의 모습을 30여점 그렸고, 동시에 초상화 작업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 성철 스님의 형상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시대의 선화(禪畵)로 작업을 확장시켜 새로운 장르를 여는 계기가 됐다.

▲ 저자가 그린 큰스님들의 뒷모습. 왼쪽부터 성철 스님, 관응 스님, 지관 스님.

저자는 성철 스님을 비롯해 관응, 법정, 일타, 광덕, 지관, 지효, 전강, 송담, 통광, 청화, 명성 스님의 얼굴도 화폭에 담아냈다. 초의 스님과 만해 스님의 초상화도 그렸다. 그림들 모두 큰스님들과 마주하고 있는 듯 사실적이면서도 각 스님들의 특정 요소가 선명히 드러난다. 특히 저자가 그린 스님들의 뒷모습도 인상적이다. 뒷모습엔 연민과 그리움이 묻어나며 그늘도 있다. 또 스님들이 바라보고 있을 무량의 세계도 상상하게 한다. 저자에 대한 찬사도 대단하다.

“김호석, 그가 앞으로 얼마만 한 크기의 예술을 완성할 수 있는가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 화단의 한 바로미터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섬세하고 예민한 눈, 따뜻한 인간애로 작품에 생기를 불어 넣고 세상과 소통하고자 꿈꾸는 그는 순수성이 돋보이는 프로”(변영섭 고려대 교수)
이 책은 사람에 대한 외경심을 지닌 구도자적 화가와 만나도록 한다. 2만3000원.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338호 / 2016년 4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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