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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의 잘못 미화하지 않고[br]역사 바로 세우는 것이 효도

기자명 이병두

‘우먼 인 골드’ / 앤 마리 오코너 지음 / 조한나·이수진 옮김 / 영림카디널

▲ '우먼 인 골드'
2006년 1월 중순의 어느 일요일, 미국 LA에 거주하는 유대계의 젊은 변호사 랜돌 쇤베르크는 밤늦게 집에 돌아와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 중에 그의 ‘승소(勝訴)’를 전해온 오스트리아 정부의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비엔나의 후베르투스 체르닌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가족과 함께 쉰 살 생일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던 그는 이 승소 소식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기쁘게 했던가. 세상에 ‘황금 여인’으로 알려진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화 반환을 위한 오랜 소송 끝에 ‘이 그림은 원 소유자의 적법한 상속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결정이 났던 것이다.

나중에 이 초상화는 미국으로 와서 역대 최고가인 1억3500만 달러에 로우더 미술관으로 판매됐다. 이 금액은 그해 미국 연방예술기금의 예산과 같았다. 한때 외설스러운 작가로 낙인찍히고, 지나치게 파격적이라서 거부당한 클림트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의 창조자가 되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영화로 먼저 보았다. 여러가지 흥미진진한 내용 중에 영화의 원작 소설을 읽기로 마음먹기로 한 이유가 있었다. 이 사건의 기폭제가 되고, 의뢰인과 변호사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준 ‘후베르투스가 왜 그렇게 이 일에 매달리게 되었는지’ 전하는 그의 형 프란츠 요제프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후베르투스는 유엔사무총장을 지낸 발트하임이 나치당원으로 전쟁범죄자였던 사실을 밝혀냈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부인했던 발트하임이 ‘전쟁에 참여한 것은 인정하지만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다가 ‘알고 있었지만 참여한 적은 없다’, ‘학살을 막을 힘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나는 내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고 털어놓게 몰아갔던 기백 있고 정의감 넘치는 기자였다.

이런 폭로에도 불구하고 발트하임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취임한 뒤 후베르투스는 나치 점령하의 오스트리아가 여러 유대인 가문들에게서 의도적으로 방대한 미술 수집품을 빼앗았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이 중에는 세상에서 가장 잘 알려진 그림 중 하나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황금 초상화가 ‘기증’되었다는 것이 거짓임을 입증하는 증거도 있었다. 잘 나가는 기업가였던 아델레의 남편이 그림을 빼앗겼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 후 오스트리아는 증거를 감추고, 도난 예술품 반환을 거부했다. 후베르투스는 이를 ‘이중 범죄’라고 불렀다. 아무도 열고 싶어 하지 않았던, 아니 열기를 겁내고 있었던 판도라의 상자를 그가 열었던 것이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이자 소유자였던 아델레와 그의 남편 페르디난트의 이질녀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피해 네덜란드와 영국을 거쳐 미국에 정착해 살고 있던 80대의 마리아에게 후베르투스의 기사에 실린 소식을 비엔나의 친구가 전해주었고, 이렇게 해서 똑같이 나치 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왔던 유대계 후손의 젊은 변호사가 이 사건을 맡게 된 것이다.

그러면 후베르투스는 왜 발트하임의 나치 전력과 예술품에 관련된 오스트리아 정부의 책임을 물고 늘어졌을까. 그가 세상을 떠난 뒤 형이 털어놓은 어두운 가족사에 그 비밀이 있었다. 전쟁 중 벨기에를 차지했던 독일은행에서 일했던 그의 아버지는 매우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형제는 그 은행이 ‘유대인의 재산을 빼앗는 일, 예술 작품 강탈’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좋은 분’이라고 믿었던 아버지의 과거에서 ‘집단적 죄의식’을 느꼈고, 이에 대한 반성으로 주변의 비난을 무릅쓰고 ‘조국의 양심’을 찾는 일에 나섰던 것이다. 조상의 잘못을 미화하려고 하지 않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나서는 것, 참된 효도는 이런 것이다.

이병두 전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1338호 / 2016년 4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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