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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사바의 극치를 보여주는 현실 앞에서

기자명 성원 스님

사바는 대통령, 사찰은 주지가 최고랍니다

▲ 일러스트=강병호

산사라는 말이 출가한 당사자인 본인에게도 낯설 때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세상의 일들이 어떠한 여과 과정도 없이 전해지는 시대에서 산사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되씹어 보곤 합니다. 세상 소식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실시간 전해지다 보니 산사에 살면서도 늘 사바에 살아가는 것같이 되어 버리기 일쑤입니다.

선거 앞두고 소란한 세상 보며
삼권분립 존재하는가 의구심

주지 중심 사찰 운영 형태도
민주적인 구조와는 거리 멀어
모순 지우는 길은 멀기만 한듯

은해사에 가면 산내암자 기기암이 있습니다. 이름이 좀 특이한데 뜻은 정말 매혹적입니다. 신기사바 심기극락(身寄娑婆 心寄極樂). ‘몸은 사바세계에 머물러도 마음은 극락세계에 머문다’는 뜻에서 기기암(寄寄庵)이라 이름 지었다하니 옛 공부하던 스님들도 세속의 사바를 피하기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나 봅니다.

이렇게 세속일로 시간 보내는 일이 잦을 때면 자꾸 먼 훗날 설령 이 몸이 극락에 들어간다 해도 마음은 사바에 머무는 ‘신기극락 심기사바(身寄極樂 心寄娑婆)’의 사태가 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됩니다. 옛적 참선하는 스님네들이 힘겨운 사바에 몸을 뉘이고 있다가도 기기암에 들르면 마음은 벌써 극락정토에 머무는 듯 초연히 해탈을 꿈꾸고 있었나 봅니다.

근일에 선거문제로 온 국민들의 귀와 눈이 집중된 일을 접하면서 내 맘에 풀리지 않는 사바의 모순이 또 하나 생긴 것 같습니다. 예전 학창시절 우리나라는 삼권분립이 실현된 민주공화국이라 배웠는데 어찌된 일인지 국회의원 선거하는 현장의 뉴스를 보노라니 특히, 경상도 지역은 국회의원을 선거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수반이 임명하는 것 같아 보여 정말 어리둥절해집니다. 임명하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임명하고 있더군요. 제 고향이 몸은 사바에 머물러도 마음은 극락이라는 기기암이 있는 영천인데 고향사람들이 가끔 전해주는 그곳 분위기는 국회의원은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아니 좌지우지하는 행정수반이 결정하면 투표하는 일은 요식행위일 뿐이라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며 말하고 행동하고 있으니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답니다. 내가 사바에 너무 깊이 들어와 있어서 이 깊은 모순을 풀어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정말 우리나라는 몽테스키가 주창한 삼권이 분립된 나라인 게 맞는지 아니면 삼권분립을 포기했는지…. 산에 들어온 지 오래라 그런지 자꾸 알기 어렵고 이런 당혹한 일들을 모순에 모순을 더해 살아가는 사바의 일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민감한 사건의 법원 판결을 기다릴 때였습니다. 궁금해 했다가 어느 법조계 인사를 만났더니 사법부 판결도 우리나라에서는 행정수반의 의중이 결정되면 거의 그리된다고 한탄하는 것을 보고 설마 했습니다. 정말 그런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번 국회의원 선거의 진행 상황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능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일은 세속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현재 사찰의 운영에 관한 문제도 이와 비슷한 문제에 봉착되어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하고 있답니다. 사찰의 주지로 임명되면 인사, 재정, 운영권 모두를 일시에 가져버리게 되는 구조라서 신임주지의 가치관과 의지에 따라 내재된 사찰의 전통성이 하루아침에 바뀌게 되고 그러한 상황에서 많은 신도들이 우왕좌왕 하기도 하고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이번 선거를 중심으로 우리 절집일을 살펴보아도 문제는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사회는 삼권 분리한다는 명시적 법이 있어도 현재 나라의 운영이 전혀 그렇지 않는데 사찰은 아예 그런 조항조차도 없습니다. 인사, 재정, 운영을 주지스님이 통괄하다보니 문제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며칠전 종무원을 구하고자 이력서를 받아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다른 사찰에서 근무했던 기록이 있었는데 그 사찰에서 나오게 된 이유에 대해 ‘새 주지스님 옴’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정말 엄청 충격을 받았습니다. 주지가 바뀌었다고 사찰업무를 보는 종무원들이 그만두어야 하는 이유를 어떻게 객관성 있게 제시하겠습니까? 그들도 자신들이 그만 두는 사정에 대해 본인의 귀책사유가 아니라는 억울한 마음이 있어서 그렇게 기입하지 않았을까요?

이러한 구조적 모순은 누구 한사람의 잘잘못이 아니라 우리들이 지혜를 모아 반드시 풀고 가야 할 구조적 문제일 것입니다.

얼마 전 모 사찰의 신도가 이제 그 사찰에 못 다니겠다고 하면서 하소연하였는데, 이유는 새 주지스님이 와서 기존에 하던 기도염불은 열심히 하지 않으시고 참선을 해야 한다면서 참선만 가르치니 도무지 자기와는 맞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조계종은 통불교를 지향하고 있으니 사찰의 운영기조를 염불을 중심으로 하든, 참선을 중심으로 하든, 교학과 사회활동을 중심으로 하든 그 신임 주지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사찰의 전통성과 주지로 임명된 스님이 주창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를 검증하는 일이 우선 되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현실이 이러니 세속에서는 누구나 삼권을 무소불위로 통솔하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고, 절 집안에서는 주지에 그토록 집착하는 모습인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한 스님이 농담으로 늘 ‘조계종의 꽃은 누가 뭐라 해도 주지야!’라고 해서 모두들 웃었는데 오늘 다시 생각해보니 입가에 또 다른 씁쓰레한 미소가 지어지는 것 같습니다.

끊임없는 모순의 세상에서 괴로워하는 것도 알고 보면 자신이 가진 또 다른 모순의 한 갈래이겠지요. 모순의 사바세계를 편하게 사는 길은 두 길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순 모두를 바꾸어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모순이 없는 세상을 만들거나 아니면 자신의 마음속에 모순으로 그려지는 허상을 지우는 길뿐인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 세상을 모두 뜯어고치기를 그만 두고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어 사바세계에서 벗어나고자 나선 길이 오늘은 스스로에게도 자꾸 낯설게 느껴집니다.

아! 세존께서는 어찌 사바에 몸을 나투시고도 열반의 미소를 지으셨을까?

아스라한 별빛처럼 멀게만 느껴지는 당신의 미소가 망상 깊어진 이 밤 자꾸 그리워집니다. 사바의 모순된 세상을 인정하시고 그곳에서 열심히 생을 엮어 가시는 작가님은 이 밤 편안하신가요?

사바세계 깊은 밤에 열반을 꿈꾸는 사문 성원 보냅니다.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338호 / 2016년 4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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