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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성락 스님과 대흥사 시래깃국

사찰음식은 노 스님 입맛서 나와…때 아닐 때 먹지 않는 것 중요

▲ 일러스트=강병호 작가

정읍 운주암 주지 성락 스님은 1976년 대흥사로 출가했다. 스님이 출가할 당시, 대흥사는 주지 기산 스님과 운기 노스님을 비롯해 대중스님과 강원 학인 등 40여명이 생활했다. 대흥사는 땅이 많아 곡식은 넉넉한 편이었지만 계행을 중시한 기산 스님의 방침에 따라 모두 부족하게 생활해야 했다. 행자가 다섯이나 됐는데 행자복은 달랑 2벌뿐이어서 스님이나 재가자들이 입었던 헌옷을 꿰매고 수선해 행자복으로 대신했다. 절 생활은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 가르침 그대로였다. 일을 하지 않으면 공양할 수 없었고, 노동과 배고픔을 견디는 자체를 수행으로 삼아야 했다.

공양 준비하는 행위 자체가
큰 수행이자 복 짓는 불사

기억 남는 음식은 시래깃국
콩가루 넣어 끓이면 더 맛나

큰 행사 때는 ‘솔차’가 별미
갈증해소하고 속 열도 내려

배추와 무 소금에 그냥 절여
된장에 무쳐 먹으면 맛 일품

사찰음식, 진짜 한국식 식단
소식은 욕심 제어하는 수단

대흥사 공양간은 다른 사찰에 비해 큰 편이다. 두륜산과 대흥사의 아름다운 비경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밥 짓고, 국 끓이고, 반찬 만드는 공양간 일은 강원 학인들 몫이었다. 대중을 위해 공양을 준비하는 자체가 수행의 일환이자 복을 짓는 불사이기에 학인들에게는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소임이었다. 이런 이유로 음식을 만드는 일을 원주스님이나 후원보살이 아닌 학인스님들에게 배웠다.


대흥사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규율이 있었다. 절에서 생활하는 스님과 행자는 물론 절 일을 돕는 거사들까지 모두 발우공양을 해야 했다. 공양방식은 다른 곳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검소함을 강조한 주지스님 덕분에 끼니때마다 밥풀 하나 남는 법이 없었다.

더욱 독특한 것은 일반 신도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방식이었다. 어른스님들은 재가자들에게 공양을 가져다 줄 때마다 절을 하라고 시켰다. 당시는 멀리서 온 손님들은 절에서 하루나 이틀 이상 묵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끼니도 절에서 해결했다. 이때 행자는 일일이 상을 들고 손님들 방까지 갖다 준 다음 “맛있게 드십시오” 하면서 절을 해야 했다. 공양을 마칠 즈음 숭늉을 갖다 드리고 나서도 절을 하고, 상을 들고 나오면서도 손님들에게 절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이 방 저 방에 손님이 많을 때는 상을 들이고 내면서 수도 없이 절을 해야만 했다.

“이미 속세를 떠나 승가의 일원이 되었는데 재가자에게 왜 절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손님들 중에는 어리고 젊은 사람들도 있었고, 그 중에는 여자들도 많았어요. 절에서는 보통 신도들이 스님들께 절을 올리는 것이 법도입니다. 그럼에도 하루에 수십 번씩 재가자에게 절을 하는 것이 정말 곤혹스러웠어요. 한참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출가자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기산 스님의 가르침이라는 것을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기산 스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식문화를 통해 진정한 불교정신을 교육시킨 것이었습니다.”

어른스님의 그 가르침을 이해하고부터는 진심으로 ‘손님들이 공양을 맛있게 들고 부처님 법문 잘 듣고 갔으면’ 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또한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진심으로 복을 빌며 공손하게 절을 하게 되었고, 그들이 누구든 나와 다르지 않으며 불성(佛性)을 가진 존재로 여겨지게 됐다.

당시 기억에 남는 음식을 꼽는다면 단연 시래깃국이다. 시래깃국을 맛있게 끓이는 방법은 도마에 시래기를 얹어놓고 칼등으로 잘 두드린다. 그래야 시래기가 부드러워진다. 잘 두드린 시래기를 간장과 된장을 넣어 버무린 다음 식용유를 넣어 볶다가 쌀뜨물을 넣고 푹 끓인다. 거의 다 끓었을 즈음 콩가루를 넣고 조금 더 끓이면 맛있는 시래깃국이 된다. 이때 고춧가루는 미리 넣지 말고 불끄기 5분 전쯤에 넣어야 맛이 깨끗하고 좋다.

또 다른 별식은 ‘솔차’다. 대흥사는 부처님오신날이나 낙성식과 같이 큰 행사를 할 때나 손님이 많이 올 때에는 꼭 솔차를 대접했다. 솔차 만드는 법은 먼저 보드라운 솔잎을 따서 깨끗이 씻은 후 항아리에 넣고 찬물을 붓는다. 그리고 여름에는 4일, 겨울에는 7일을 삭힌다. 그 뒤 물만 따라내 설탕을 넣고 다려먹는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식혀서 먹으면 갈증에도 그만이고, 속 열도 가시기 때문에 아주 그만이다. 또 대흥사는 배추나 무를 소금에 절였다 그냥 먹었다. 김장김치도 마찬가지였다. 김치면서도 장아찌 같이 절인 무는 된장에 무쳐 먹곤 했는데 특히 겨울 반찬으로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나마도 마음껏 먹지 못했다. 그래서 그 시절을 떠올릴 때면 유독 배고픈 기억이 많다.

스님은 사찰음식문화에 대해 “때 아닐 때 먹지 말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즘처럼 많이 먹어 병이 되는 세상에서는 특히 사찰음식에 깃든 정신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식하고 절식하며 때에 맞춰 먹는 습관은 우리의 욕심을 제어하는 수행에 다름 아니다.

“아이들 입맛에 맞는 인스턴트 음식이나 달고 기름진 음식은 건강에 해로울 뿐 아니라 정신을 혼미하게 만듭니다. 어릴 때부터 소박한 한국식 밥맛에 익숙해지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일부 사찰에서도 행사 때 뷔페요리사를 부르는 경우를 봅니다. 큰 문제입니다.”

사찰부터 편리함을 좇기보다 부족하고 힘이 들어도 대중이 함께 운력해 만들어야 한다고 스님은 강조했다. 또 진짜 사찰음식은 ‘노스님, 어른스님의 입맛’에서 나온다는 것도 명심하기를 당부했다. 

정리=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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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락 스님은

1976년 해남 대흥사에서 하성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대흥사 강원을 졸업하고 제방선원에서 정진해오다 1983년부터 정읍 운주암 주지로 주석하고 있다.

 

 

[1338호 / 2016년 4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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