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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폭력에 대항하여 꿋꿋하게 살리라”

기자명 강용주

유럽으로 여행간 지인이 가는 곳마다 사진으로 소식을 전해줍니다. 특히 독일 뮌헨에서 보내준 사진에 눈길이 오래 머뭅니다. 뮌헨대학 백장미단 기념실, 숄 기념광장 바닥의 백장미단 유인물 조각, 조피숄 두상…. 그 기념물은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이름만큼은 너무나 친숙했고, 이내 옛 기억 속으로 이끌었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1982년 대학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세미나에서 읽은 책 제목입니다. 세미나를 했던 동아리는 의과대학 동아리인데, 그 흔한 이름도 없이 ‘팀’이라 불렀답니다. 첫 세미나 교재가 된 그 책은 독일 뮌헨대학 학생들의 저항 조직 ‘백장미단’의 활동과 슬픈 최후를 담고 있었습니다. 한스와 죠피 남매의 누이 잉에 숄이 그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가며 쓴 글이지요. 그들은 모두가 ‘아니요’라고 말할 용기를 잃었을 때, 히틀러 체제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뿌립니다. 바로 ‘백장미의 편지’입니다.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말하고 쓴 것 그것은 바로 많은 독일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에요. 단지 그들은 입 밖에 내서 말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랍니다.” 히틀러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뿌렸다는 이유로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된 죠피 숄은 재판에서 말합니다. 죠피 숄과 백장미단은 1943년 처형됩니다. 짧고 슬픈 생을 마감할 때 그들은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었고 그중 한스, 프롭스트. 슈모렐은 의과대학 학생이었습니다.

그들은 ‘히틀러 유겐트’의 아이였습니다. 전체주의 히틀러식으로 평범하게 자라난 대학생이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히틀러에 반대하여 싸웁니다. “그들은 단순하고 소박한 것을 위해 싸웠다는 것을…인간의 권리를 위해, 그리고 자유를 위해 싸웠다는 것을…그들은 결코 엄청난 목표를 추구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바라던 것은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었다”고 누이 잉에 숄은 말합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우리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제 또래 평범한 친구들이었습니다. 전체주의 시대 독재자에 반대하는 우리의 미래였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 살아남은 자가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고통 속에서 읽어 내려가는 ‘의대생’들의 이야기였습니다.

‘팀’의 세미나에 참가한 우리들은 1970년대 유신시대에 초중고를 다녀 “박정희 키즈”로 자랐지요. 고등학교 3학년 때 광주에서 1980년 5월을 겪었습니다. 종이를 복사해 대학 캠퍼스에 뿌리는 일. 지금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입니다만, 그 때만해도 끌려가기를 각오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백장미단이 유인물 등사기를 돌릴 때, 히틀러에 저항하는 글귀를 대학 이곳저곳에 적을 때, 그들이 얼마나 두려웠을지 우리는 똑같이 느꼈습니다. 동아리 이름도 갖지 못한 채 남몰래 세미나를 해야 했던 우리였으니까요. 제 또래 뮌헨 의대생들은 그 일을 하다가 사형장으로 끌려갑니다. 사형당하는 날 아침, 한스는 흰 감방 벽에 이렇게 씁니다. “모든 폭력에 대항하여 꿋꿋하게 살리라”

1947년에 만들어진 이 책을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 수업교재로 쓴다고 합니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가르치기 위해서겠지요. 독일의 끊임없는 과거사 청산과 반성 그리고 기억이 ‘그만해’라는 우리의 현실과 슬프게 겹쳐집니다. 작지만 알차게 역사를 통해 뭘 배울 건지, 무엇을 어떻게 남길 것인지 성찰하는 뮌헨대학 ‘숄 기념실’은 진실을 밝히려는 정부와 시민사회 노력의 차이가 그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나가게 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보잘 것 없는 많은 곳에서 보잘 것 없는 많은 사람들이 보잘 것 없는 많은 일을 해서 세상의 모습을 바꿨다’고 합니다. 뮌헨대학 ‘숄 기념실’에는 세계 각국에서 출간된 백장미단에 관한 책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나온 것만 없다지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책 한권 담아 독일로 가야할까 봅니다. 내 젊은 날의 슬픔을 마중물 삼아 고통 속에서 더 커나가는 미래를 꿈꾸러요.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hurights62@hanmail.net
 

[1339호 / 2016년 4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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