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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공의 미학

‘중생을 이롭게 하는 보배의 비가 온 허공에 가득히 내리고 중생이 그 그릇 따라 이익을 본다 (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법성게)

20여년 전 대학에 있을 때다. 경영대 근처를 지나는데 조훈현 국수 초청 바둑지도가 있다는 공고가 있었다. 들어가 보았더니 이창호 9단이 학생들과 다면기를 두고 있었다. 또 교수 휴게실에는 조훈현 국수가 부총장과 바둑을 두고 김인 국수가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부총장이 몇 점을 놓고 두는 것 같은데 그가 돌을 놓으면 조 국수가 매번 더 좋은 수를 가르쳐주었다.

그 후 대학신문에 부총장이 이겼다고 보도되었는데 조 국수가 코치한 결과라고 짐작했었다.

경영대학 교수가 나에게 천재일우의 기회이니 김인 국수와 대국하라고 권했다. 실력이 안 된다고 고사했는데 자꾸 권해서 9급이라고 했더니 김 국수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내 실력이 2~3급만 되었으면 무료했던 김 국수가 대국에 응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릇이 못 되어 천하의 김인 국수와 거저 대국하는 황금 같은 기회가 날아간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에서 열린 인공지능 알파고와 바둑천재 이세돌 9단과의 대결이 온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결과는 4대 1의 스코어로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다. 이 대결은 앞으로 가공할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이 인간의 세계를 지배하게 되리라는 깊은 우려를 인류에게 던져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게 되고 사악한 인공지능에 의해 인류문명이 종말을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대표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파고의 승리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인지와 판단 그리고 추리의 지적 영역에서도 무수한 데이터와 연산이 요구되는 경우 인공지능이 급속도로 인간을 추월하게 되리라는 점을 인류에게 각성시켰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류는 초지능의 기계 앞에 한 없이 왜소해지는 모습으로 추락할 것인가?

바둑은 19×19점들의 반상에서 흑과 백의 돌들을 번갈아 놓은 후 최후에 누구 집이 더 많은가에 의해 승패가 가려진다. 이 과정에서 집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한 무수한 가능성이 제기되고 여기에 엄청난 연산능력이 요구된다. 이번 알파고의 승리는 수많은 기보의 데이터와 연산의 양을 줄이는 적절한 알고리즘과 수백 개의 컴퓨터를 동원한 가공할 연산능력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알파고의 능력이 개선되기 때문에 결국 인간이 알파고를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이것으로 인류가 초능력의 인공지성 앞에 위축되어야만 하는가?

바둑은 누가 발명했는가? 알파고의 인공지성은 누구의 작품인가? 바둑을 떠나보자.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고전음악은 차치하고라도 20세기의 아름다운 팝송 ‘고엽’이나 ‘쉘부르의 우산’은 인공지능의 작품인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슈레딩거의 파동방정식을 인공지성이 유도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초능력의 인공지성이 아닌 오직 인간의 마음만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구체적으로 인간의 의식이 공의 차원에 접촉했을 때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불교는 모든 것의 실상이 공이라고 가르친다. ‘화엄경’을 요약한 법성게는 우리의 마음이 지극히 순수해져 사고와 논리를 초월한 공에 접할 때 온 우주에 가득히 쏟아지는 보배의 비를 맞게 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중생이 그 그릇에 따라 혜택을 입는다고 가르친다.

인공지능은 인류를 생존을 위한 번잡스러운 노역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시대를 불러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인류는 더 많은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만약 이 여유를 영성, 즉 불성인 공의 개발에 투자한다면 우리는 더욱 존엄한 존재로서 더 아름다운 세계에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직업의 실종이나 인류의 멸망 같은 우려는 티끌처럼 사라지게 되리라.

이기화 서울대 명예교수 kleepl@naver.com
 

[1339호 / 2016년 4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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