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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 살아난 설악산의 교훈

기자명 법상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6.04.12 14:00
  • 수정 2016.04.12 14:01
  • 댓글 0

몇 년 전 인도와 히말라야로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어서, 가기 전에 워밍업처럼 자주 산에도 다니고, 체력관리를 하던 중이었다. 강원도 양구에 살 때다 보니, 가까운 설악산을 다녀오려고 월요일 아침에 가벼운 마음으로, 큰 준비 없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설악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별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 탈이었다. 7월 말 무더위가 극심할 때임을 잊고, 500밀리 생수 하나, 빵 하나, 비스킷 하나만 슈퍼에서 사들고는 장장 10시간 정도가 걸리는 서북능선을 타기 시작했다.

별 준비 없이 시작한 산행
탈진으로 쓰러져 생사기로
간신히 생명은 건졌지만
안일한 삶 반성케 한 계기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아직 길은 시작에 불과한데, 물이 별로 없다는 것이 심각하게 느껴졌다. 그때 판단을 잘 해야 했는데, 이 정도면 가벼운 코스이니 빨리 산행을 끝내자는 안이한 마음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햇살은 유난히 강했고, 땀은 비 오듯 쏟아졌으며, 물이 없으니 빠른 속도로 지치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산행객들도 한 명 만날 수가 없었다. 물을 얻어먹을 수도 없는 상황. 시간이 흐르면서 무더위에 탈진해서 그런지 몸살 기운까지 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아직 반도 오지 않았는데 최악의 상황을 맞은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한가로운 오후에, 평화로운 세상을 살다가, 별생각 없이 올랐던 산속에서 어이없이 허망하게 죽을 수도 있구나!’ 정말 그랬다.

결국 탈진한 지친 몸을 이끌고 버티고 버티며 걷고 또 걸었지만, 늦은 오후가 되어 걷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 동안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절한 건지 나도 모르는 시간이 얼마쯤 지나갔고, 아마도 난 그대로 죽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누군지 모를, 무언지 모를 어떤 힘이 나를 불러 깨웠다. 스스로도 깜짝 놀라 말 그대로 벌떡 일어나 젖 먹던 힘까지 사력을 다해 다시 걸었다. 그저 우주법계가 나를 살려주었구나 싶은 마음에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연신 내뱉으며 걷기 시작했는데, 이게 무슨 반갑고 당황스러운 일인가. 그토록 걸으며 찾고 또 찾았던 내리막길 이정표가 내가 쓰려졌던 곳에서 바로 모퉁이를 도니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한 20여 분 내려가는데, 멀리 계곡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나는 생명의 계곡물을 만났다! 죽지 않고 살아 내려 온 것이다.

이 일은 이후 히말라야와 인도 성지를 다닐 때 두고두고 귀한 가르침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어떤 가벼운 상황일지라도 안일한 마음일 수는 없었다. 히말라야 갈 때에도 보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산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설산의 여신에게 감사와 가호의 기도를 올렸다. 그 이후로는 무엇을 하든, 그것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나는 부처님, 신중님, 그리고 그 일과 연기적으로 연관된 일체 모든 존재, 비존재에게 진심어린 공경심으로 찬탄과 공양, 감사의 기도를 올리곤 하는 습관 같은 것이 생겼다.

▲ 법상 스님
목탁소리 지도법사
이것이야말로, 그 설악산의 수업이 나에게 알려준 고맙고 감사한 깨달음이었다. 내가 대단한 존재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저 물 한 모금만 없어도 그대로 쓰러져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약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내가 잘나서 잘 살아왔다고 자부하며 살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의 삶은 매 순간순간 일체 모든 이들의 무한한 도움 속에서 감사하게도 자비롭게 돌보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작고 미천할지라도 그 앞에 공손히 나를 낮추고 일체 모든 존재를 귀하게 여길 줄 알며, 공경, 예배, 찬탄할 때 비로소 나라는 존재 또한 귀한 공경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아침, 새삼스럽지만 오랜 세월 세심청심의 졸고를 읽어주시고 사랑해주신 독자분들께도 성스러운 공경심으로 감사와 사랑을 보낸다.

[1339호 / 2016년 4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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